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경영 실적’ 나빠도 ‘고액 연봉’ 받는 경영진들

처음으로 대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되었다. 상장기업은 5억원 이상 등기이사들의 연봉을 공개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은 미국의 고액 연봉 체계를 흉내 내면서도 ‘합리적 핵심’은 빠뜨리고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4년 04월 14일 월요일 제343호
댓글 0
풍문으로만 나돌던 대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되었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올해부터 상장기업들은 5억원 이상 연봉의 구체적 규모와 수령자를 공시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3월31일 대기업들은 고액 연봉 내역을 담은 사업보고서를 일제히 전자공시시스템(DART:dart.fss.or.kr)에 게시한 것이다.

공개된 사업보고서들에 따르면, 가장 높은 연봉을 받은 기업인들은 재벌 가문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산하 계열사 중 적게는 하나, 많게는 4~5개 기업의 등기이사로 등록해 30억원대에서 300억원대까지의 연봉을 수령했다. 재벌 가문 구성원들보다 수적으로 훨씬 적었지만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전문 경영인들도 나타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3년 1월31일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1월31일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법원에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대기업 등기이사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기업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SK(주), SK이노베이션, SK C&C, SK하이닉스 등 4개사로부터 301억599만원을 수령했다. 당초 ‘연봉 1위’를 차지했던 기업인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한화, 한화건설, 한화케미칼 등의 등기이사로 모두 331억2700만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김 회장은 2012년 말부터 배임 등의 혐의로 법원과 병원을 오갔고, 이 때문인지 200억원을 회사에 반납하면서 그의 연봉은 131억원에 그쳤다.

이사에는 등기이사와 비등기 이사가 있다. 비등기 이사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이에 비해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주요 경영 사항(대표이사 선임, 사업계획 수립 등)에 대한 의결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등기이사 역시 기업 내에서 사장·전무 등의 직함으로 실제 근무하는 ‘경영진’과 사외이사로 나뉜다. 사외이사는 기업 외부의 전문가들인데, 이들의 임무는 경영진의 일탈행위(경영자의 사익을 위한 기업자금 유용 등)를 감시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액 연봉을 받는 등기이사는 ‘기업 내부의 경영진’을 의미한다.

등기이사의 연봉은 경영 능력이라는 ‘희소한 재능’으로 해당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 대가로 받는 돈이다. 따라서 일반 직원의 수십 배를 받는다. 그런데 어떤 기업이 100억원의 수익을 올렸을 때 이 가운데 어느 정도가 ‘경영자의 재능’ 덕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뚜렷한 기준은 없다. 그러므로 경영자에 대한 초고액 연봉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기보다 해당 사회와 기업이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는, 일종의 암묵적 관행이다.

초고액 연봉 관행은 2000년대 중반에 시작

한국에서 이런 관행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로 보인다. 한 재벌 연구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대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은 2억~5억원에 그쳤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최고경영자들에게 초고액 연봉을 주는 관행이 형성되었다. 국내에서 이를 주도한 것은 삼성그룹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를 살피면서, 초고액 연봉의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영자의 연봉이 지나치게 높을 때 직접적으로 피해 보는 사람들은 주주다. 그만큼 배당금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초고액 연봉이 자리 잡은 명분은 ‘주주의 이익 보장’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이클 젠슨 하버드 대학 교수는 1970년대 말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라는 선언으로 이 나라의 기업 사회에 ‘조용하고 점진적인 혁명’을 주도했다. 이 선언이 1980년대 중반쯤에는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공리(公理)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주주가 ‘주인’이라면, 경영자는 주인을 대신해 기업을 운영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경영자는 기업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대단히 똑똑한 대리인이다. 얼마든지 주인(주주)을 배신할 수 있다. 경영자가 주주에게 ‘충성’하려면 주식가치(기업가치)를 높이고 많은 배당금을 줘야 한다.

그런데 경영자는 기업의 돈(주주의 돈)을 유용하거나 경영자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쓸데없이 기업 규모(투자)를 확대해서 회사 자금을 낭비할 수 있다.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답시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필요하지만 위험한 대규모 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임금을 올리거나 ‘불필요한 잉여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를 꺼릴 수도 있다. 그래서 젠슨은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경영자를 감시해서 기업 가치를 올리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시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주주가 이익을 볼 때 경영자도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즉, 주식 가치(기업 가치)를 올리는 것이 주주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유리하다면 경영진은 주주 가치를 올리는 데 헌신할 것이다. 그래서 당시 미국 기업들에 도입된 것이 스톡옵션 등의 ‘경영자 인센티브’다. 예컨대 현재 해당 기업 주가가 10만원이라면, 경영자가 3년 뒤에도 10만원으로 예컨대 1만 주를 살 수 있게 해준다. 만약 3년 뒤에 주가가 20만원으로 뛰어오른다면, 경영자는 주당 10만원에 1만 주를 매입(10억원)한 다음 곧바로 매각(주당 20만원이므로 모두 20억원)해서 10억원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경영자 인센티브’가 유행하면서 미국 주가가 급등하던 1990~2000년대에는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된 경영인이 속출한다. 이와 함께 경영자 보수가 전반적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의 ‘최고경영자 대 노동자 평균 연봉’은 1960년 40대1에서 1990년 100대1을 거쳐 2000년대에는 한때 500대1까지 벌어진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지나치게 높은 경영자 보수에 대해 거대한 사회적 반발이 일었지만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블룸버그>가 지난해 7월 미국의 ‘연봉 왕’ 15명을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중 하위권의 연봉도 4000만 달러(약 422억원)에 달한다. 상위권은 그 두 배 정도다. 1위를 차지한 오라클의 CEO 래리 앨리슨은 1년(2012년 6월~2013년 5월) 동안 9620만 달러(약 1017억원)를 챙겼다. 같은 기간 오라클 영업이익(146억8400만 달러)의 0.6% 정도다.

이렇듯 미국식 초고액 보수 관행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경영자 보수는 원리적으로 ‘경영이라는 노동’의 대가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영 실적’, 즉 경영 성과와 연동해서 지급되어야 한다. 여기서 경영 실적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영업이익이 있다. 해당 기업이 ‘본업’에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렸는지 보여주는 지표이므로 경영 활동의 성과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주가를 얼마나 올렸는지’도 중요하다. 주주들이 자신의 주식으로 어느 정도의 금전적 이익을 볼 수 있었는지도 따져야 한다(주당 순이익). 또한 경영자 보수가 그 성과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방법으로 산정되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 미국 기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온 한국 기업 등기이사들의 연봉을 분석해보자. 한국의 대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 현대차, SK㈜, LG㈜ 등과 민간 기업이지만 ‘낙하산 인사’ 등으로 정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KT를 살펴봤다.

영업이익 줄고 경영 불가능한데도 ‘고액 연봉’


이 기업들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등기이사 연봉이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미국만큼 높지는 않다. 오라클의 CEO 래리 앨리슨은 영업이익의 0.6%를 연봉으로 받았다. 다른 경영진까지 합치면 등기이사 전체 연봉은 영업이익의 1%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그러나 사례로 든 국내 5대 대기업 경영진의 경우 연봉을 모두 합쳐도 영업이익 대비 오라클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KT가 0.66%로 높은 편이지만, 삼성전자는 0.07%에 불과하다. 또한 5대 기업에서 등기이사 평균 연봉은 직원들 평균 연봉의 20~64배이다. 이는 미국보다는 매우 낮지만, 유럽연합(EU)의 대기업들과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높은 수준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대기업 등기이사 중에는 재벌 가문 출신이 많다. 위는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정기 총회.  
ⓒ연합뉴스
대기업 등기이사 중에는 재벌 가문 출신이 많다. 위는 대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의 정기 총회.

그런데 앨리슨은 오라클 경영에 전념하는 전문 경영인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등기이사 중에는 재벌 가문 출신이 많다. 이들은 여러 기업의 등기이사로 등록해서 일일이 연봉을 챙긴다. SK㈜의 경우, 등기이사 두 명 중 한 명이 최태원 회장이고, 현대차에서도 등기이사 네 명 중 두 명이 정몽구·정의선 부자다. 삼성전자에서는 등기이사 4인이 모두 전문 경영인이다. 이건희·이재용 부자는 형식적으로는 등기이사가 아니며 ‘경영의 대가’를 받고 있지도 않다. 사실 재벌 가문의 주 수입은 계열사 지분을 통해 받는 배당금이지 경영 보수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등기이사들이 해당 기업의 경영에 어느 정도 기여해서 초고액 연봉을 받는지가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이외에는 영업이익과 주당 순이익(기업이 주식 한 주당 얼마나 수익을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 그 전해보다 줄었는데도 고액의 연봉이 경영 대가로 지급되었다. 등기이사 연봉 산정 기준에 성과급을 명시한 기업도 삼성전자(목표 인센티브, 성과 인센티브 등)와 SK㈜밖에 없었다. 여기서 성과급은, 경영을 잘해서 목표 사업이나 수익을 초과했을 때 주는 돈이다. 나머지 기업들은 급여와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으로 연봉 내역을 설명하는데, 이는 등기이사로 등록되어 있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SK㈜의 연봉 산정 기준은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될 필요가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해 SK㈜로부터 87억원의 경영 보수를 받았다. 이 중 성과급이 63억원이다. 그러나 최 회장은 지난해 초부터 법적 문제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인지 SK㈜의 사업보고서는 ‘산정 기준’에 ‘12년 말 기준의 경영 성과급’이라고 주를 달았다. 즉, 2012년의 경영 활동에 대해 지급하는 성과급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2012년 SK㈜의 경영 실적 역시 영업이익이 2011년에 비해 2조원 정도 감소했고, 기본주당이익(주당 순이익과 비슷한 개념)도 4만1308원에서 2만5881원으로 크게 하락했다.

이런 사정은 재벌 기업이 아니라 독립 기업인 KT 역시 마찬가지다. 2013년 KT의 영업이익은 2012년(1조2092억원)보다 4000억원가량 떨어졌다. 기본주당이익 역시 2012년 4296원에서 2013년에는 ‘마이너스 666원’으로 급락했다. 그런데도 2013년 당시 대표로 검찰 수사로 불명예 퇴직한 이석채씨는 29억7900만원(퇴직금 11억5300만원 포함)의 연봉을 지급받았다.

사실 미국의 초고액 연봉 체계에 대해서도 뜨거운 비판이 쏟아져왔다. 연봉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보이는 데다, 그 산정에도 확실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나마 ‘성과에 비례한 지급’이라는 원칙은 표명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미국의 고액 연봉 체계를 흉내 내면서도 ‘합리적 핵심(경영 성과에 비례)’은 빠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피(재벌 가문 출신 여부)와 직위(현직 고위 경영자)에 따라 엄청난 돈이 쏠리면서 사회적 비난을 사는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