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위원회는 이같은 인권 침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를 이루고자 만들어졌다. 초대위원장으로 임명된 캐나다 대법관 해리 라포메는 취임사에서 “미래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바르게 살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보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같은 날,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4월29일,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사 위원회를 정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감사원도 과거사 관련 13개 위원회는 설치 목적과 기능이 중복되므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원회)’ 하나로 통합해 운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같은 날 내놓았다. 지금이라도 과거사 위원회를 재정비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과거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에 공감한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기 위해 위원회들을 정비하겠다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위원회가 너무 많아 문제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기획위원회’와 ‘건국60주년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형성된 광복 이후의 현대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걷어내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겠다”라는 것이 청와대가 밝힌 미래기획위원회 등의 설립 취지다. 괜히 과거 치부를 드러내고 피해자를 보듬어 안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 과거에 잘한 일이나 부각하자는 것이다.
“주로 과거 정부에서 임명된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정비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로 볼 때,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를 정치와 이념의 문제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는 정쟁이나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쟁 중에 억울하게 학살된 양민들의 유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이 정치나 좌·우파의 문제일 수 없다. 억울하게 국가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본 이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은 사회 정의의 문제이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이다.
“짐승 같았던 과거를 직면하고, 과거에 볼모 잡히지 말자”
광복 이후 군사정권 아래에서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가 많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만 성장할 수 있다면 또다시 국민 인권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다.
라포메 대법관은 취임사 끝에 진실화해위원회가 가져다줄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모습에서 짐승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와 같은 대면을 통해 끔찍했던 과거를 받아들일 수 있었고, 더 이상 과거를 되새기며 과거에 볼모로 잡히는 일은 없게 되었다고.”
슬프고 부끄러운 과거사를 덮어둔다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과거를 직시하고 아픈 곳을 쓰다듬을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