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5월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공무원노조 관계자가 정운천 장관의 발언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촛불을 들고 나선 10대만이 아니다. 때리는 만큼 강해지는 사람들이 또 있다. 바로 공무원이다.

일찌감치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머슴’ ‘걸림돌’로 낙인 찍혔다. 이어진 중앙·지방 공무원 인력 감축과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 추진은 ‘생존’ 문제란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예고했다. 여기에 “공무원에게 미국산 쇠고기 꼬리곰탕과 내장을 먹이겠다”라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5월7일 국회 청문회장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머슴도 모자라 이젠 광우병 마루타냐!” 공무원 단체의 분노가 쏟아졌다.

안 잘리려고 미국산 쇠고기 먹는다?

심상치 않은 조짐은 수치상으로도 확인된다. 5월24일 ‘행정 공공성 사수 전 조합원 결의대회’를 준비 중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은 애초 참석 인원을 5000명 정도로 잡았으나 최근 1만5000명으로 긴급 수정했다. 정용천 전공노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급속히 커진 결과다”라고 설명한다.

이미 다른 전국 단위 공무원노조인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민공노)은 각각 4월26일과 5월3일 1만명 이상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를 갖고 ‘연금 개악과 강제 퇴출 저지’를 외쳤다. 이들 세 노조는 한발 더 나아가 오는 6월28일 교직원 단체와 함께 100만 공무원 노동자·40만 교원 총궐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조직세 확대 역시 놀랍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전체 공무원 노조원 수는 지난해 말 17만2400명에서 4월 초 현재 19만9600명으로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무려 2만7200명이 늘어났다. 공무원노조 측은 구조조정 등 신분상의 불안을 노조원 증가 요인으로 꼽는다.

ⓒ연합뉴스지난 4월1일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 들어서는 중앙 행정부 ‘무보직 대기자’들.
노조 통합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공노총·민공노·행정부노조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노조통합준비위원회(통준위)는 그간 조직 형태를 비롯한 여러 이견 때문에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5월5일 행정안전부(행안부)가 노조 전임 간부의 활동 금지를 포함한 ‘공무원단체 불법활동 자제 권고안’을 각 기관에 내려보내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통합이 아니면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커진 것이다. 김찬균 공노총 위원장은 한 집회에서 “지금은 의견 차이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공무원의 대응에 가장 민감해한다. ‘불법 활동 자제 권고안’은 그나마 좀 점잖은 방식이었다. 공무원 개개인에게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석 자제를 종용하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중앙 부처와 지자체에 ‘공무원 복무관리에 관한 긴급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노조를 압박했다. 〈노컷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행안부가 5월9일 작성한 이 공문에는 집회 참석은 물론이고 수입 반대 서명운동, 공공청사 외벽에 현수막을 거는 행위 등을 금지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민공노는 지난 5월13~14일 이틀 동안 과천정부종합청사에서 ‘보란 듯이’ 공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절대 다수인 93.4%(응답자 1994명 가운데 1862명)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꼬리곰탕 등을 구내 급식하면 먹지 않겠다”라고 응답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과연 공무원 의지대로 ‘선택’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정헌재 민공노 위원장은 “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현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공무원이 안 잘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산 쇠고기로 식사하고, 정부가 지자체별로 소비 실적을 점검하고 다그치는 전대미문의 작태가 벌어질 것이다”라고 개탄한다.

공무원노조 반발에 뒤로 물러선 정부

공무원 단체가 정부의 방침에 극력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것이 최소한의 협의도 없이 졸속 추진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미 공무원 인력 감축의 ‘신호탄’이었던 지난 3월말 중앙 행정부 공무원 ‘무보직 대기자’ 선정부터, “잉여 인력을 위해 만든 각 부처의 ‘편법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아무 원칙·기준 없이 부랴부랴 진행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행안부 관계자도 “대상자 선정과 통보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시인한 바 있다.

ⓒ뉴시스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주최한 4월26일 ‘연금 개악·강제퇴출 저지 결의대회’에는 노조원 1만명이 모였다.
5월1일 행안부의 ‘지방 공무원 1만명 감축 계획’ 발표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용천 전공노 대변인은 “모든 정권이 ‘공무원 길들이기’를 관례처럼 해왔지만, 이명박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간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완전히 무시한다. 우리도 엄연히 합법 노조인데, 이럴 수가 있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도 “숫자 줄이는 데만 급급하다. 왜 줄여야 하는지, 줄여서 생기는 문제는 없는지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전혀 없지 않느냐.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공분을 적절히 활용하는 듯한데, 공무원노조의 반발은 당연해 보인다”라고 꼬집는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노동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는 정부인데, 어떻게 공무원노조를 달갑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법 자체를 바꿔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차츰차츰 사태 파악을 해나갈 것이라고 본다. 당장은 큰 충돌은 없겠지만, 연금법 개정안이 나오고 국회 논의가 본격 시작되면 좀 시끄러워질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 문제의 경우는, 인력 감축과 달리 최근 정부 측이 몇 걸음 물러서는 형국이나 애초에는 지난 4월 중순께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의 개혁안을 전격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무원·교사 단체가 강력히 항의하자 바로 꼬리를 내렸고, 정부 의견수렴 기구인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위원 총 25명 중 다섯 명만 공무원·교사 단체에 배정한다는 제안이었다. 공무원·교사 단체는 “생색내기 대외홍보용 거수기 노릇을 거부한다”라며 ‘노·정 동수’를 주장했다. 결국 정부는 “공무원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약속했고, 이에 전공노·전교조 등 5개 단체는 5월7일 위원회 참여 결정을 내렸다. 공노총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연금은 정부와 공무원이 50%씩 부담해 운영해왔으므로 우리의 요구는 근거가 있다. 우리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나 일방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노조 측은 또 정부가 공무원을 기만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5월1일 행안부는 지방공무원 1만명 감축안을 내놓으면서 “중앙 정부 개편 때와 마찬가지로 정원 감축에 따른 초과 현원은 해소 시까지 신분을 보장하고 강제 퇴출은 없도록 할 예정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고, 현실과도 어긋났다. 지난 4월28일 중앙 부처로는 처음으로 ‘공무원 퇴출제’를 시행한 농촌진흥청의 경우, 대상자 107명 중 64명이 열흘도 채 안 돼 교육을 거부하고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이다. 농촌진흥청도 “퇴출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지만, 좌절감에 휩싸인 공무원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말만 신분 보장이지 사실상의 강제 퇴출이다”라고 공무원의 비판이 빗발치는 이유다.

"일 안하는 사람 안전판 될까 걱정"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공무원 단체들의 저항이 과연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지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광표 부소장은 “공무원 단체의 대응이 인력 감축과 공무원 연금 등 자기 것 지키기에 한정된다면, 이는 승산 없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명확하다”라며 ‘희생과 결단이 필요한 때’임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과정이나 한·미 FTA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내부 고발성 자기 고백이 나와야 한다. 사회 격차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서비스와 재화의 균형 있는 분배, 즉 ‘질 좋은 공공 서비스’를 위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그런 ‘반전’이 있어야 새로운 혁신이 가능하고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공무원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흘러나온다. 농림수산식품부 한 공무원은 “공무원노조가 공무원 사회에서 그렇게 큰 지지를 받는 것 같지는 않다. 강제 퇴출에 맞서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진짜 일 안 하고 시간만 때우는 사람의 안전판까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방 공무원 1만명 감축’과 관련해 각 지자체에서 강제 퇴출보다는 자연 감소와 신규 채용 축소로 대응하려는 데 대해 공무원 단체가 별다른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이명박 정부가 임기 내에 공무원 5만~6만명을 줄이겠다고 한 이상, 그 피해는 현재의 20대·10대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서울 광화문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현장에서 공무원 노동자와 10대가 ‘처음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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