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아베노믹스의 문제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구조 개혁 전략이 없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는 보통 통화팽창(인플레이션), 공공사업에 대한 대규모 재정 투자, 경제 구조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로 이뤄진다고 얘기돼왔다. 그런데 이 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은 경제에 근본 개선 효과를 주기보다는 앰플 주사처럼 반짝 효과를 줄 뿐이다. 그래서 구조개혁을 수반한 성장전략이 실행돼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그동안의 진행 과정을 보면 첫 번째, 두 번째 화살은 남발되다시피 했지만 세 번째 화살은 날아가지도 못하고 실종됐다는 게 일본 내 전문가들의 평가다. 커티스 교수는 구조개혁 전략 실종과 관련해 “일본의 산업정책을 주도하는 경제통상산업부 출신 관료들이 과거의 틀에 얽매여 미국식 자유시장 경제로의 과감한 전환을 주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 수입비용이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2009년 기준 일본의 에너지 공급원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9%였는데(석탄 25%, 수력 8% LNG 29%, 기타 9%), 원전 사고 이후 54기의 원전을 가동 중단하면서 이를 모두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엔저의 여파로 에너지의 수입 가격이 오르면서(자국 통화가치가 내려가면 수입품 가격은 상승) 지난해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아베 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모색하고 있으나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세 번째는 인구의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일본 국내에서 기술인력 감소와 경기침체가 전망되면서(인구 성장률이 낮아지면 그만큼 수요가 떨어져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꺼리고 틈만 있으면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떨어져 일본 국내 생산품의 수출 가격이 내려가면,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국내로 돌아올 것이라던 전망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신문·방송 등 이른바 주류 언론과 기타 매체 및 전문가들로 첨예하게 나뉜다. 일간지나 방송 등 일본의 주류 매체들은 모두 정부 편에 서서 아베노믹스 찬가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오는 4월의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는 “이미 통화수축(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 경기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증세에 문제가 없다”라는 식의 보도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런 주류 매체의 보도 태도에 대해 “새빨간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라거나 “전쟁 전의 대본영 보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라는 매서운 비판이 제기된다.

아베노믹스를 어둡게 보는 이들의 목소리는 대체로 이렇게 모인다. 먼저 아베노믹스 실행 이후 물가 인상이 나타나고 있으나(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어야 투자와 소비가 일어나므로 아베노믹스는 물가 인상을 지상 목표로 설정), 이는 정부나 주류 언론이 주장하듯이 ‘디플레 탈각’, 즉 좋은 인플레이션(경제성장에 이로운 물가 인상)이 아니라 전형적인 나쁜 인플레이션 현상이라는 것이다. ‘좋은 인플레이션’에서는, 수요(투자와 소비) 증가에 따라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늘리고 이에 따라 임금이 인상되면서 다시 수요가 증가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가 나타나면 일본이 지난 20여 년 동안의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물가 인상은 커티스 교수도 지적했듯이 에너지나 원자재 수입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 없는 물가 상승은 오히려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결과적으로 투자와 이에 따른 생산까지 잡아먹는 경제의 악순환 현상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
 

ⓒAP Photo2014년 3월10일 한 노인이 일본 거리에 설치된 세계주가지수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위). 이날 일본 증시는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에 대한 실망감으로 대폭 하락했다.

두 번째 논점은 무역수지 면에서 보통 얘기하는 J커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엔저가 되면 원재료 수입 가격의 상승으로 무역적자가 발생하다가 그 뒤 수출이 증가하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J커브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일본 정부가 무역수지 적자가 피크에 도달했다가 축소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던 시점이 바로 지난해 8월이었다. 그런데 축소되기는커녕 그 뒤로도 적자 폭이 계속 확대되기만 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1조3021억 엔 적자를 기록해 다른 연도들의 동월 대비 최대치였다. 더욱이 3개월 연속 1조 엔대 적자를 기록한 것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인 11조4745억 엔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미 일본의 경제 구조가 엔저가 되어도 수출이 증가하지 않는 상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출 주력 회사들은 과거 엔고 시대에 대부분의 생산 거점을 해외로 이전했다. 그나마 국내에 남아 있는 기업들은 생산설비 갱신이 늦어져 엔저라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어도 생산 물량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두 전직 총리는 소비세 올렸다 낙마

일본 경제 전문가들이 더욱 심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경상수지(무역수지+대외금융소득+이전수지)의 흐름이다. 일본은 약 300조 엔의 대외금융자산을 가진 채권국이다. 여기서 들어오는 이자나 배당금 등 대외금융소득만으로도 최근의 무역수지 적자를 메울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월14일자 재무성 국제수지 속보에 따르면, 무역수지뿐 아니라 대외금융소득까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무역수지에 대외금융소득을 합친 경상수지 전체가 적자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2014년 예산안에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올해 책정분 5조9685억 엔(12.9% 증가)에 지난해 보정 예산안 3조 엔을 더해 약 9조 엔에 달한다(민주당 정권 시절 4조 엔, 1차 아베 정권 때 6조9000억 엔). 한마디로 건설업계와 관료, 족의원(族議員:건설 등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이라는 삼각 편대의 고질적인 나눠먹기 잔치가 재연되는 셈이다. 게다가 오는 4월부터 소비세가 기존 5%에서 8%로 오르면 세수 증가분이 4조5000억 엔에 이르는데, 정부가 소비세 증세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복지비 증가는 매년 1조4000억 엔에 불과하다. 결국 남은 3조 엔의 세수는 건설업계의 입에 털어넣겠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일본 정부나 주류 언론의 홍보대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난 것도 아닌 마당에 소비세까지 올릴 경우 일반 국민의 소비 위축이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세금이 1% 오를 때마다 소비가 2.5조 엔씩 줄어든다고 하니 3% 오르면 7.5조 엔 정도 감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1989년의 다케시타 총리나 1997년 하시모토 정권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두 사람 다 소비세를 인상했다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얼마 못 가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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