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을 지탱하는 측근 그룹은 크게 극우 이념 그룹, 보수 이념을 공유하지만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는 실무 그룹, 아베노믹스를 축으로 한 경제정책 그룹으로 나뉜다. 앞의 이념 그룹을 이끄는 인물이 바로 아베가 회장을 맡고 있는 초당파 극우 의원 모임인 ‘창생 일본’의 간사장이자 총리 보좌관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참의원이다. 지난 2월19일,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실망했다고 두 번이나 발표한 미국을 향해 “실망한 것은 바로 일본이다”라는 동영상을 배포해 논란을 빚은 바로 그 인물이다.

그와 아베의 인연은 매우 각별하다. 아베보다 일곱 살 위인 그는 아베의 ‘사상적 가정교사’라고도 불린다. 1996년에는 두 사람이 〈보수혁명선언〉이라는 책을 함께 출판하기도 했다. 학생 시절 종교단체 ‘생장의 집’ 학생조직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생장의 집 초대 총재 다니구치 가하루(谷口雅春, 1893~1985)는 현행 평화헌법이 연합군총사령부(GHQ)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 비판하며 명치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 보호 아래 보전해야 한다는 ‘야스쿠니 국가호지(國家護持)’를 제창하기도 했다. 에토는 이런 일본 극우의 정통 흐름을 잇는 인물인 셈이다. 에토를 정점으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자민당 정조회장,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장관 등이 이념형 인사로 포진해 있다.
 

ⓒAP Photo실무 그룹의 핵심 인물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왼쪽)과 이념 그룹을 이끄는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오른쪽). 에토 세이이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우려하는 미국에 대해 “실망한 것은 일본”이라고 발언한 장본인이다.

현재 내각은 상대적으로 실무를 중시하는 인물을 정권 중추에 둠으로써 안정을 기한 측면이 있었다. 그 핵심 인물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으로 에토 세이이치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양쪽의 첫 격돌은 아베가 총리에 오른 직후인 2012년 12월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싸고 벌어졌는데, 그때는 “2013년 7월의 참의원 선거까지는 국민이 원하는 경기회복·경제 회생을 최우선에 두자”라고 주장한 스가 관방장관이 승리했다. 하지만 참의원 승리 직후부터 이념 그룹의 폭주가 시작됐다. 지난해 10월의 특정비밀보호법과 NSC(국가안전보장위원회) 법안 강제 통과에 이어, 12월26일 야스쿠니 참배로 절정에 이르렀다.

지난해 야스쿠니 참배의 배경에는 아베가 회장으로 있는 ‘창생 일본’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게 일본 내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창생 일본’은 원래 10월의 야스쿠니 추계예대제에 참배하기를 희망했으나 아베가 그냥 넘어가자 간부 모임에서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는 회장 밑에서 모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며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 압력으로 결국 12월26일 참배가 결행됐다는 것이다.

이념 그룹의 ‘폭주’ 이어 스가 장관과의 ‘균열설’

올해 들어서도 폭주는 계속됐다. 연초부터 NHK에 측근 인사들을 배치해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 도쿄 공습 및 원폭 투하, 도쿄 재판까지 전방위로 이슈를 제기했다. 더욱이 아베의 또 다른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 특보가 지난 1월17일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의 비판에 대해 “공화당 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민주당 정권이라 트집을 잡는다”라는 식으로 대미 불만을 직설적으로 터뜨리는 등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베는 아베대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해 국회를 통하지 않고 총리 책임하에 각의에서 결정하겠다고 했다가 ‘헌법 무시’라는 부메랑을 맞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벌써부터 스가 관방장관과의 균열설이 나오고, 자민당 안에서도 브레이크를 거는 움직임들이 본격화하고 있다. 심지어 “아베는 예전처럼 1강이 아니다”라는 소리도 나온다. 4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 이후 아베 정권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지 주목하는 시선이 부쩍 늘었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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