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내년쯤 우리는 일본의 새로운 총리에 대해 얘기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 일본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73) 컬럼비아 대학 석좌교수가 최근 한 조찬 강연에서 한 말이 화제다. 그는 지난 2월20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이사장 사공일) 주최 강연에서 “아베노믹스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성장전략과 관련한 구조개혁 없이 기대심리에만 의존하고, 원전 가동 중지에 따른 해외 에너지 수입 비용의 증대 및 고령화·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을 원인으로 꼽았다(아베노믹스, 안녕들 하십니까 참조). 이처럼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내년쯤 아베 신조 총리가 책임을 지고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안팎에서는 2016년까지는 중의원이나 참의원 선거가 없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임기가 최소 3년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따라서 그가 왜 이런 ‘이례적인’ 예측을 한 건지, 또한 실제로 아베노믹스가 실패해 아베 총리가 사퇴를 하게 될 경우 과연 경제적 요인만이 작용해서일까 하는 궁금증을 낳는다.

그도 그럴 것이 커티스 교수의 강연 후반부 외교안보 정책 부문에서 미국의 속내가 살짝 드러났다. 미국은 초기에는 아베 총리의 적극적 태도에 기대가 컸다고 한다. 그의 국방비 증액이 재정 삭감에 직면한 미국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베 정권이 역사 문제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 등으로 한국·중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도 자칫하면 이에 연루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아베가 내세우는 ‘전후체제 탈피’ ‘보통 국가’ ‘적극적 평화주의’ ‘일류 국가’ 따위의 장기적 의도가 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커티스 교수의 말은 여기까지다.
 

ⓒEPA일본 아베 신조 총리.

하지만 최근 미국 측 움직임을 보면 단지 의구심을 갖고 지켜보는 단계는 지난 듯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이 ‘갈등’의 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커티스 교수의 조찬 모임으로부터 나흘 뒤인 2월24일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이례적으로 매우 직설적인 표현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베의 역사관은 2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연합군최고사령부(GHQ)가 주도한 일본 점령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 언론을 통해서는 비슷한 언급이 있어왔으나 미국 의회의 공식기구가 이런 의구심을 표명한 것은 미국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

최근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싱크탱크인 미국신안보센터(CNAS)가 일본 총리실에 역사 수정 움직임을 중지하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전달했다고 한다. 싱크탱크를 통함으로써 외교 마찰은 피하되,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한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베의 진짜 상대는 한국·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얘기까지도 나온다. 일본 세이가쿠인 대학 강상중 교수는 칼럼에서 “아베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역사 수정주의는 결국 반미로 귀착한다. 일본 역사 문제의 본질은 한·중과의 대립이 아니라 미국과의 갈등이다. 여기에 아베 정권의 위태로움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아베를 제2의 진수편(陳水扁:천수이볜 전 타이완 총통)’으로 보는 시각도 등장했다. 일본 주간지 〈주간 금요일〉 1월31일자에 실린 기사가 그것인데, 천수이볜은 처음 반중(反中)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미국과 불화하면서 수명을 다했다. 그 배경에는 그의 독립 노선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 아베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로부터의 독립인가? 바로 미국으로부터다.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강상중 교수가 표현한 아베의 반미가 지향하는 것은 바로 독립인 것이다.

아베가 위안부·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속내’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해온 자학사관 극복과 역사 수정주의는 한국이나 중국 등 과거 피해국들의 거듭되는 반성 요구에 대한 감정적 반발과 피해의식의 소산일 뿐이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앞에서 언급한 〈주간 금요일〉 3월4일자의 또 다른 기사를 보자. 한 쪽짜리 짧은 기사에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아베와 그의 친구들’이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 사건을 부정하고 축소하려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아베가 주장하는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라 일본’은 아베의 저서 제목이자, 아베 1기 정권(2006~2007년)의 모토이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나라’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얘기는 곧 젊은이들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나라’, 즉 ‘싸울 수 있는 나라, 임전 태세가 갖춰진 나라’를 뜻한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와 난징 대학살이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면 아무리 애써도 일본은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없다. ‘나쁘고 더러운’ 나라일 뿐이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자부심을 갖고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전 세계가 들여다보든 말든, 역사에서 그 흔적을 지우려 혈안이 되어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나서서 참배를 말렸건만 기어코 지난해 12월26일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를 참배한 이유가 무엇인가. 본인이 뭐라고 변명을 하든 초점은 바로 ‘임전 태세를 갖춘 일본 만들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영화 〈영원의 0〉처럼, 젊은이들에게 전장에 나가 죽으면 야스쿠니의 신이 된다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참배를 결행한 것이다.

이처럼 아베 정권에서 등장한 각 쟁점들, 즉 △위안부 문제 △난징 학살 부정 △야스쿠니 참배 △원전 재가동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전후 레짐(체제) 탈각 주장 등은 각각 점으로 존재하는 것 같으나 실은 선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선의 끝에는 아베와 일본의 극우 세력이 지향하는 일본의 당면 국가 목표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자주적 핵무장 국가로서의 일본 재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앞의 〈주간 금요일〉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 전 항공자위대 통합막료장(한국의 공군참모총장)이다. 지난 2월9일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비록 4위를 했지만 20~30대 넷우익의 몰표를 받아 극우의 아이콘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인물이다. 그가 지난해 발행한 〈일본 핵무장 계획〉이란 책이 있는데, 〈주간 금요일〉은 “이 책에서 다모가미가 말하는 군사적 자립론이 바로 아베의 혼네(속마음)다”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 다모가미 도시오라는 인물의 등장, 그리고 그와 아베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아베 정권과 그 정권의 안팎에 포진한 일본 극우 세력의 실체 및 지향점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다모가미는 이번 도쿄 도지사 선거를 통해 유명인사로 떠올랐지만, 이미 여러 번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2008년에는 일본 항공자위대의 현직 통합막료장 신분으로 호텔·아파트 체인인 ‘아파그룹’이 주관한 논문 현상 모집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논문의 골자는 대략 이런 식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중국·조선 진주는 조약에 의한 것이지 침략이 아니고, 중·일 전쟁도 코민테른의 조종을 받은 장제스 군의 빈번한 테러 행위 때문이었으며, 미·일 전쟁 역시 일본을 전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국이 신중하게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결과’라는 것. 한마디로 일본은 2차 대전의 침략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인데, 미국이 도쿄 재판으로 전쟁의 책임을 일본에 덮어씌우려 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외국의 군대들과 비교하면 자위대는 굴레로 꽁꽁 동여매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고, 여기서 해방되지 않으면 일본은 영원히 미국화된다”라고 적었다.
 

ⓒAP Photo2013년 2월22일 백악관에서 만난 아베 일본 총리(왼쪽)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최근 미국 의회의 공식기구가 아베의 역사관에 의구심을 표명했다.

역사적 사실을 너무나 왜곡해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치밀한 기획의 냄새가 났다. 우선 논문 현상 모집을 주도한 아파그룹 회장 모토야 도시오라는 인물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나 리처드 아미티지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 등 일본 안팎의 정·재계 인사들과 친한 인물로, 그동안 거물 정치인과 자위대 간부 초청 좌담회를 열어 자신이 발행하는 우익 성향 잡지에 게재하는 식의 일을 계속해왔다. 다모가미 역시 그와 친분을 맺고 이미 세 차례나 대담을 한 사이다. 특히 그는 아베 총리 후원회인 아신카이(安晋會)의 유력 멤버이기도 했다. 즉 모토야라는 인물을 통해 아베와 다모가미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타이밍이다. 평화헌법·도쿄 재판·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등 미국이 주도한 전후체제를 부정하는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는 미국의 영향력이 후퇴하는 시점에 맞춰 늘 고개를 쳐들곤 했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가 처음 집대성된 시기는 대개 1997년 1월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학 교수와 후지오카 노부가쓰 도쿄 대학 교수가 주축이 된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출범한 때로 꼽힌다. 당시는 뉴욕 증시 폭락으로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시작되던 시점이기도 하다. 다모가미 논문이 발표된 2008년은 미국이 금융위기로 접어들어 부시 정권이 몰락하고 오바마 정권으로 교체를 준비하던 시기다. ‘새역모’를 계기로 세몰이를 해 아베 1차 정권(2006~2007년)까지 만들었다가 중도에 흐지부지해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했던 극우 세력이 다모가미 논문을 신호탄으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칩거에 들어갔던 아베 역시 이때부터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이때 그의 부활 발판이 됐던 조직이 바로 ‘창생 일본(創生 日本)’이라는 초당파 극우의원 모임이다. 원래 이 모임은 아소 다로 내각 때인 2007년 나카가와 쇼이치가 만들었는데 2009년 총선 직후 그가 사망하자 아베가 11월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원래 ‘참보수정책 연구회’라는 이름이었는데 2010년 2월에 이름도 모임 성격도 단순 연구단체에서 ‘행동하는 의원연맹’으로 바꿨다. △일본의 전통문화를 지킨다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한다 △국익을 지키고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된다는 3가지 목표를 내걸고 있는데, 대체로 아베 1차 정권 당시의 ‘아름다운 나라를 지향한다’는 내용을 구체화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 2차 아베 내각은 이 ‘창생 일본’ 출신 의원 10명과 또 다른 극우 의원 모임인 ‘일본회의 의련(의원연맹)’ 소속 13명, ‘신도 의련’ 소속 14명, ‘야스쿠니 참배 의련 소속’ 15명, ‘교과서 의련’ 소속 9명 등이 내각의 장관으로 참여하고 있고(한 사람이 여러 단체에 중복 가입해 있음), 그 밖에 관방장관·부장관·총리·보좌관·정무관 등도 대부분 몇 가지 극우 모임에 참여하는, 한마디로 초극우 내각인 셈이다(19쪽 딸린 기사 참조).

일본 우익, 핵무장을 위한 이론화 작업 본격화

이들 극우 세력은 2008년 다모가미의 문제 제기를 신호탄으로 이를 군사적 자립 및 자주적 방위력 건설, 그리고 그 필수 요소인 핵무장화로 연결하기 위한 이론화 작업도 본격화했다. 2009년 발행된 우익 월간지 〈제군〉은 두 호에 걸쳐 ‘총력특집 리셋 일·미 동맹’을 게재했다. 그중 군사 애널리스트 이토 간(伊藤貫)의 논문은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미국의 핵에 의존하는 일본은 15년 내 중국의 속국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글에는 일본의 우익들이 평화헌법·도쿄 재판·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이어진 미국 주도 전후체제의 본질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마디로 ‘일본의 자주방위 능력을 박탈해서 속국화하기 위한 미국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는 인식이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는 1942년부터 ‘전후의 일본을 다시는 독립된 외교정책이 실행 가능하지 않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영구히 자주방위 능력을 박탈’하기로 결정했다”라거나 “미국이 패전국 일본에 강요한 평화헌법 및 도쿄 재판사관은 일본으로부터 영구히 자주방위 능력을 박탈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설정된 정책이다”라는 식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대해서도 “당시 덜레스 국무장관이 영국의 고관에게 ‘일본은 1952년 독립을 회복했지만 대일 강화조약은 미국의 일본 점령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라고 한다. 그의 이런 지적은 서류나 문서상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실제 미국의 점령정책은 맥아더 사령부가 워싱턴의 지령과 달리 실행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나, 미국이 미사일 같은 공격무기를 제외하고는 전후 일본 군사력을 세계 최상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확대 과장한 것이다.
 

ⓒAP Photo2013년 10월3일 일본을 방문 중인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맨 왼쪽)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헌화를 위해 일본의 2차대전 전몰자 묘원을 찾았다.

어쨌건 일본이 미국의 속국 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일본은 경제력에 걸맞은 세계 6강으로서의 지위가 불가능할뿐더러, 15년 뒤인 2020년쯤에는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할 것이므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자주방위(여기서 자주는 핵을 의미한다), 즉 자주적 핵억지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아베와 그의 친구들’의 주장이다.

2009년에 고개를 든 자주적 핵억지론을 집대성한 게 바로 지난해 다모가미 도시오의 〈일본 핵무장 계획〉이다. 지난해를 타이밍으로 잡은 것 역시 미국의 전반적인 쇠락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해서였을 것이다. 다모가미는 이 책에서 일본이 핵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로 일본의 안전보장 및 발언력과 영향력 강화를 들었다. 앞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도 한정된 부와 자원의 쟁탈전에 참가해 이겨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수방위(공격을 당했을 때만 방위력 행사) 위주의 자위대를 선제공격이 가능한 국방군으로 전환해야 하고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자립은 곧 핵무장을 뜻한다. 그리고는 ‘미군은 이제 나가도 상관없다’ ‘원자력 발전은 핵병기의 원료를 생산하기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 따위 주장이 쏟아졌다.

이 대목에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아베 정권은 “미국 등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같이 싸워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해왔다. 언뜻 보면 굉장히 친미적이다. 그러나 함정이 숨어 있다. 일본이 주일 미군에 기지와 비용을 제공하는 것은 미군이 일본을 지킨다는 미·일 동맹의 편무성(일방성) 때문이다. 그런데 집단적 자위권에 의해 ‘일본도 미군 내지는 미국을 지킨다’가 되면, 미·일 동맹이 쌍무적 관계가 되면서 일본이 미군에 기지와 비용을 댈 이유가 사라진다. 일본 정부가 가만있어도 오키나와 같은 데서 ‘미군 나가라’는 시위가 터질 판이다.

아베 정권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적의 기지를 공격할 권한도 달라고 떼를 쓴다. 미국을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했으니 일본의 요구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투다. 집단적 자위권은 부시 정권 때 아미티지(당시 국무부 부장관) 같은 지일파들이 요구한 적은 있으나 오바마 정부에서는 아예 카드로 꺼낸 적이 없다. 일본이 하겠다니까 막을 명분이 없어 형식적으로 응하는 것일 뿐, 속내는 다른 것이다. 하물며 적 기지 공격론은 결국 미·일 동맹에서 미군이 맡고 있는 창의 구실을 자위대가 할 테니 이제 나가달라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미국이 들어줄 리 만무하다. 어쨌거나 아베는 오는 4월 총리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 결론이 나오면 6월22일 열리는 정기국회 회기 안에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헌법 해석 변경 논의를 마치겠다는 태세다. 겉으로는 미군을 돕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주일 미군의 지위를 흔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다음이 바로 핵무장이다. 다모가미의 책에 따르면 핵무장이 쉽지 않은 이유로 헌법상의 제약과 함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정보관리 시스템을 들었다. 지난해 10월 특정비밀보호법을 억지로 통과시킨 것은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된 듯하다. 그래도 당장은 쉽지 않다. 일본 외무성이 2006년 9월 작성한 ‘핵병기의 국산 가능성에 대하여’라는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데는 3~5년의 시간과 2000억~3000억 엔의 거액이 든다고 돼 있다. 특히 일본이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에 가입돼 있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점이 큰 장벽이다. 그래서 당장은 핵 개발이 곤란하므로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맺고 있는 ‘핵 공유’를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평상시에는 미국의 핵을 비축하고 핵 버튼을 미국과 공유하다가 어떤 나라가 핵 협박을 하면 미군이 핵병기를 그 나라에 넘겨주고 철수하는 절묘한 시나리오’라는 게 핵 공유의 개념이다. 현재 독일·이탈리아·폴란드·벨기에·터키가 이런 식으로 핵을 빌려서 핵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 이 밖에도 우파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엔 차관을 지원하는 인도나 파키스탄으로부터 핵을 사오는 방안, 심지어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과 담판해 일본이 보유한 미국 채권(약 1조2350억 달러)을 넘겨주고 주일 미군과 미 7함대를 용병으로 사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 중이다.

“일본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아베 정권의 국가관”

일본의 핵 무장과 관련해 NPT 탈퇴를 통한 정공법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다모가미는 ‘법 이론적’이라는 단서를 붙여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 일본이 중·일 전쟁을 계기로 국제연맹에서 탈퇴했듯이 센카쿠를 둘러싸고 또다시 중국과 국지전이 벌어지면, 이미 보수화로 치닫는 일본 여론을 업고 NPT 탈퇴 및 핵보유 선언을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다.

결론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일본 우익이 가고자 하는 길은 아베 정권으로 인해 상당히 투명해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과연 앞으로도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엔저를 계속 허용할까? 이와이 가쓰히토 국제기독교대학 객원교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미국이 전후 1달러당 360엔이라는 초엔저를 허용해 일본을 고도성장시킨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방파제’로 삼기 위함이었고, 2010년 이후의 엔저 허용은 ‘중국에 대한 방파제’로 삼기 위함이었다. 이와이 교수는 “앞으로 일본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아베 정권의 국가관이다”라고 말해 아베노믹스의 성패가 곧바로 미국의 정책과 연동될 것임을 시사했다. 아베의 적은 미국, 한 발 더 가면 바로 아베 자신인 것이다.

기자명 남문희 대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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