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저 아이들이 정말 이 사태의 정치적 맥락을 알고 저렇게 움직이는 걸까. 보수 언론이 지나치게 이들을 폄훼하는 데 대한 반작용으로 일부에서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자의 선입견은 와르르 무너졌다. 아이들은 똑똑하고, 합리적이었으며 무엇보다 앞뒤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 호사가들의 이야기보다 그들은 ‘반 발자국쯤’ 더 앞서 있었다. 촛불집회 현장 등에서 나눈 대화를 그들의 화법으로 옮겨본다.

엊그제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가서 한마디 했거든요. “광우병 무서워요, 저 아직 15년밖에 못 살았어요”라고요. 그랬더니 어떤 기자가 따라와서 물어요. “광우병이 위험한지 어떻게 알았어요? 인터넷에서 알았어요?” 참 나, 되묻고 싶어요. “그럼 기자 아저씨는 어떻게 알았어요? 학교에서 공부했어요?”

“조·중·동이 우릴 무개념 ‘찌질이’로 봐요”

제일 짜증나는 게 우리를 무개념 ‘찌질이’로 보는 거예요. 조·중·동이 그러잖아요. 애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나왔다고. 맞아요, 공부하기 싫어서 나왔어요. 당장 10년, 20년 뒤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공부할 맛이 나겠어요? 오늘도 집회에 나갔다 일찍 집에 가려는데, 또 기자가 말을 걸어요. “왜 일찍 가요? 재미없어서 가요?” 제가 그랬어요. “아저씨, 우리 여기 재미로 나온 거 아니거든요. 사진기자들이 자꾸 우리 얼굴 찍잖아요. 여기 나온 거 부모님이 알면 죽어요. 우리 생각 좀 해줘요. 아, 짜증나.”

저 지금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요, 초등학교 때부터 광우병이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노무현 정부 때 미국 쇠고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수입이 중단된 적 있잖아요. 그땐 지금처럼 위험하다는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조·중·동에서 난리를 쳤어요. 학교에서 신문읽기 수업할 때 그런 기사 본 기억이 나요. 그때 광우병이 무서운 병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언론이 말을 바꾸잖아요. 대통령이 조건 없이 수입하겠다는데도 별소리가 없어요. 지금 언론이 뭔가 조작하고 있다고 느끼는 게 그래서예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인터넷이 더 믿을 만해요. 인터넷에는 모든 자료가 다 올라오잖아요. 카페 가보면 미친 소 반대 글뿐 아니라, 찬성하는 글도 많이 올라와요. 저 그거 다 읽어보고 나름 판단한 거예요. 조·중·동이 ‘이명박 독도 포기’ 발언 같은 걸 예로 들면서 인터넷에 괴담이 퍼진다고 하잖아요, 저도 사실 그때 “쥐박이(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인터넷 유행어)가 독도 포기한대”라고 애들한테 ‘문자질’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자기들도 틀린 기사 내보내잖아요. 중앙일보가 만우절에 외국 기사 베꼈다가 ‘쪽당한 거’ 이미 유명한 일이거든요. 진짜 괴담이 뭐냐면요, 촛불집회 참석하려면 ‘부모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퍼진 거예요. 다들 집회에 처음 나가보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알고 보니 거짓말이잖아요. 이런 게 ‘인터넷 괴담’이에요. 언론은 이런 거나 바로잡아 주세요.

저 슈퍼주니어 팬클럽 회원이에요. 오른쪽 손등에 자랑스럽게 ‘E.L.F’(요정을 뜻하는 슈퍼주니어 팬클럽 이름)라고 펜으로 썼어요. 그래도 ‘빠순이’라고 부르지는 마세요. 슈퍼주니어 멤버 김희철 오빠가 광우병 소 반대했다고 따라 하는 거 아니니까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가보면 ‘연이말’(연예인, 이제 그들을 말한다)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회원 수가 100만명이 넘어요. 얼짱 연예인 사진 올리는 곳인데 거기에 ‘이명박 대통령 반대’ 게시판이 따로 있어요. 거기 보면 요즘 세상 돌아가는 정보가 다 나와요. 진중권도 거기서 알았고, 조갑제도 거기서 알았어요. ‘죽빵카페’라고 연예인 안티 카페도 있는데요. 거기도 회원 50만명이 넘는 곳인데 미친 소랑 이명박 대통령 반대하는 글이 날마다 수백 건씩 올라와요. 거기는 가입 절차가 까다로워서 어른은 거의 없어요. 그냥 애들이 올리는 거예요.
 

ⓒ시사IN 안희태10대의 고민은 광우병만이 아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등 닥쳐올 이슈를 ‘자기 일’로 받아들인다.

원래 애들이 관심 가지는 게 연예인이나 프리미어리그 축구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최고 관심사가 광우병이랑, 이명박 대통령이에요. 덕분에 저도 요즘 무지 바빠요. 학교 끝나자마자 집회 나갔다,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광우병 기사 읽는 게 하루 일과예요. 기사 보다가 정운천 농림부 장관이 이상한 소리 하면 애들한테 문자 보내서 알려줘요. 한 번 보낼 때 학교 친구 10명 정도한테 보내는데, 다음 날 학교에 가면 전체 학생이 다 알아요. 릴레이가 되거든요. 다른 애들도 광우병 문제 때문에 저처럼 열받아서 집회에 나가고 싶어해요. 부모님이 막으니까 못 나가는 거죠.   

처음부터 애들이 이렇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지금처럼 미친 듯 기사 읽고 집회 나가고 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요. 이게 다 학교 자율화 조처랑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공부 잘하는 애들은 환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걔들 불쌍해요. 완전히 공부 기계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광우병 사건이 터진 거예요. 제가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해요? 미친 소 먹고 죽으면 끝인데.”

“어른들이 사회에 왜 이렇게 무관심하죠?”

진짜 이상한 건 어른들이에요.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선생님한테 “광우병 때문에 앞으로 학교 급식 안 먹을래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나도 먹을 건데  왜 안 먹어? 괜찮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느꼈어요. 선생님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시는구나. 솔직히 요즘 어른들 뭘 몰라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고. 학생들이 집회에 많이 참석하니까 선생님이 “어른이 알아서 잘할 테니까 너희는 집회 가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하거든요. 선생님 앞에서는 그냥 예예, 했지만 속으로는 ‘내가 선생님보다 더 잘 알아요’라며 비웃었어요.

서울시 교육감이 “중·고생 뒤에 배후 세력이 있다”라고 했잖아요. 이 말 듣고 진짜 짜증난 게요, 자꾸 우리를 어리다는 이유 하나로 무시하는 거예요. 송유근 같은 애는 나이 어려도 인정해주잖아요. 그런데 왜 우리는 무시해요? 우리가 뭘 몰라서 인터넷 공간의 허위와 과장에 속고 있다고 하는데, 그럼 촛불집회 때 나온 많은 어른도 다 속고 있는 거예요?

요즘 더욱 걱정되는 건 의료보험 민영화예요. 감기만 걸려도 돈 엄청 내야 하고,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제도잖아요. 앞으로 제가 60년은 더 살 텐데, 그동안 병원 갈 일이 많을 거 아니에요? 요즘 비정규직 문제 심각하잖아요. 저도 그런 비정규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데다 병원 가기도 힘들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우리 아빠도 의료보험 민영화는 절대 반대예요. 그런데 아빠한테 의료보험 문제를 알려준 게 저예요. 제가 인터넷에서 보고 말해줬더니 처음에는 갸우뚱하시다가 나중에는 “네 말이 맞다” 그러시더라고요. 그 뒤로는 촛불집회 간다고 해도 아무 말 안 하세요.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때 ‘국민 성공시대’라는 말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게 국민 성공시대예요? 제발 부자 말고 서민을 위한 정치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어른은 이런 말 한다고 절 특별하게 보는데요, 저 그런 애 아니에요. 제가 성격이 활달해서 친구들한테 집회 나가자고 권하기는 했지만, 다른 건 다 평범해요. 수원에서 살고요, 어머니는 갈빗집에서 일하시고, 아버지는 택시운전 하세요. 외동딸이고요. 공부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서 열심히 안 해요. 부모님은 공부 열심히 해서 한의사가 되라고 하는데, 제 꿈은 가수예요. 슈퍼주니어 같은 그룹의 여성 멤버가 되고 싶어요. 저 건강하게 커서 가수 될 수 있도록 제발 미친 소 좀 막아주세요.

작은 소원이 하나 있는데요. 바다가 보고 싶어요. 어릴 적 포항에서 6개월 동안 산 적이 있거든요. 그때 봤던 탁 트인 바다가 너무 그리워요. 바닷가에서 소리 지르고, 뛰어놀고 싶어요. 요즘 가슴이 콱 막힌 것 같은데 그럼 확 풀릴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대통령도 포항에서 산 적이 있어요? 에이 짱나네, 정말.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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