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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한(恨), 민족의 응어리, 동학, 양반과 상놈,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모든 생명에 대한 윤리적 관심 등등. 책을 읽은 이들에게 그것은 아마 ‘서희’일 테고 드라마를 시청한 이들이라면 ‘최수지’일 수도 있겠다. 나 같은 인간은 감히 뭐라 평하기조차 조심스러운, 너무 넓고 너무 커서 ‘대단하다’는 정도의 공허하고 머쓱한 수사밖에 떠오르지 않는, 그런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5월5일 향년 82세로 숨을 거두었다.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박경리 선생의 빈소(사진)에는 엄청나게 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그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방명록의 맞춤법으로 다시 한번 주목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작 네티즌 사이에서는 박경리 선생과 이명박 대통령에 관한 드라마틱한 인연이 화제다. 때는 2004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운동연합 출범 당시 공동대표를 맡은 이력이 있을 만큼 환경 문제에 적극적이었던 선생은 청계천 복원에도 앞장섰다고 한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 뒤 자기 공약을 실현해 보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생은 심한 배신을 느꼈고 급기야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하게 된다.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청계천 사업을 주관하는 사람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맹세코 정치적 목적을 떠나 이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는지…만일 정치적 의도 때문에 업적에 연연하여 공기를 앞당긴다면, 추호라도 이해라는 굴레에 매달려 방향을 개발 쪽으로 튼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

청계천 사업 대신 대운하나 한·미 쇠고기 협상 같은 말을 집어넣어 보면, 당시 선생의 심정이 어떠했는가를 십분 헤아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에 대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반응은 다소 뜨악했다. 이명박 시장은 〈미디어다음〉과의 인터뷰에서 “박 선생이 쓴 것 같지도 않더라, 요즘 신문에 기사 나는 그대로 썼던데, 아니 그것보다 더 자세하게 썼더라, 그걸 본인이 썼겠나”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날 밤, 서울시 쪽의 요청으로 인터뷰 내용 중 박경리 선생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삭제되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천’은, 두 사람이 자신이 가진 ‘일정한 틀’에 맞추어 세상을 해석한 결과물이다. 전자가 완성되기까지는 26년이 걸렸고, 후자의 경우는 2년6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우리는 ‘속도’와 ‘효율’이라는 구호의 뒷면에 감추어진 놀랄 만한 비효율을 경험하는 중이다. 부르디외가 그랬단다, 미적으로 편협하다는 것은 가공할 폭력성을 지니기 마련이라고. 어쩌면 이것이 〈토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읽으면서 맞춤법도 좀 익히시고.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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