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자살방조죄 무죄, 국가보안법 유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이내 법정을 빠져나갔다. 홀로 검사석을 지키던 공판 검사도 조용히 자리를 떴다. 피고인석에 서 있던 강기훈씨(사진)는 23년 만의 무죄판결에 대한 기쁨보다 ‘재판부가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강씨는 ‘김기설씨 유서 대필 사건’ 재심은 자기 재판이 아니라고 여겼다. 지난 세월 사건을 조작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검찰, 그리고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법원에 대한 재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법원은 과거 자신의 재판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검찰은 상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23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에 그가 얻은 건 ‘겨우’ 무죄다. 그리고 또 하나, 간암도 얻었다.

ⓒ시사IN 신선영

반면 강씨를 ‘동료의 죽음을 방치하고 유서까지 대신 써준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인 검찰 수사팀은 영전했다. 수사를 지휘하던 강신욱 검사는 대법관 자리까지 올랐고, 수사팀 일원이던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정부 첫 민정수석을, 남기춘 검사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산하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심 재판을 맡았던 임대화 판사는 특허법원장을 역임했다. 대법원 재판부였던 윤영철 판사는 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며 위세를 떨치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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