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아름다움〉 주경철 외 지음 고즈윈 펴냄
6남매 가운데 장남은 교회 장로고 둘째는 독실한 불교도다.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장례 절차를 두고 6남매가 장남파와 둘째파로 갈려 분란이 일어났다. 급기야 장례식 날이 오고 말았으니, 먼저 도착한 스님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시작했다. 염불이 무르익는데 장남이 다니는 교회 목사와 신도들이 도착했다. 염불하는 동안 교회 일행은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이윽고 염불이 끝나고 목사님과 스님이 마주치는 순간 장례식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스님이 말을 꺼냈다. “자, 이제 목사님 차례가 왔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목사님이 합장을 하며 답했다. “스님께도 우리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문까지 배웅해주는 목사님에게 스님이 말했다. “목사님께서 우리 아버님 꼭 천당 가게 해주셔야 합니다. 아멘.” 장례식장에 때 아닌 웃음꽃이 만발했다. 종교 연구가 김나미씨가 이 책에서 전하는 실화다. 종교 간 차이와 다름이라는 게 얼마나 사소할 수 있는지. 

작고 얇은 책이지만 울림은 커

작고 분량도 많지 않은 책이지만 그 울림의 크기가 만만치 않다. 김나미씨 외에 역사학자 주경철, 환경 전문기자 조홍섭, 변화경영 전문가 구본형, 국문학자 전봉관, 만화가 이우일, 임상심리학자 정승아, 심리학자 황상민 등이 공동 저자다. 각 저자가 자기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다양성·차이·다름 그리고 공존의 지혜를 살펴보고 논한다. 글쓰기에 따라서는 꽤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교양 에세이에 가까운 차분하고 친절한 글 덕분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심리학자 황상민은 다름과 차이의 심리가 가장 극적으로 우리 삶에 표현되는 사례로, 영웅의 삶에 대한 추종을 든다. 누군가의 화려한 전설을 나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 하겠는데, 이른바 ‘~리더십’으로 일컬어지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한 개인의 성공에 열광적으로 몰입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나의 삶을 어떤 모습에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게 된다. 영웅의 성공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만 있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뉴시스〈다름의 아름다움〉에서는 종교 간 차이와 다름이라는 게 얼마나 사소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임상심리학자 정승아는 동조 실험의 사례를 통해 차이와 다름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지적한다. 실험 참가자에게 누가 봐도 그 길이 차이가 분명한 선분 여러 개를 제시하고, 다른 선분 하나와 길이가 같은 것을 고르라고 한다. 답은 너무도 분명하지만, 가짜 참가자들이 모두 틀린 답을 말하면 실험 참가자는 틀린 답에 동조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극히 건전한 상식으로 명백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아주 분명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다른 이의 의견을 고려하며, 그것이 터무니없다 해도 그것이 다수라면 따르고 만다.
 
국문학자 전봉관은 1931년 7월 완바오산 사건 직후 조선에서 일어난 중국인 배척 폭동을 거론한다. 일본 경찰은 ‘일본 국민’인 조선인 보호를 구실로 중국 농민들에게 총격을 가했고, 일본 영사관이 조선인 특파원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했으며, 평양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일본 경찰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조선 농민의 수로 건설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에서 비롯된 완바오산 사건 자체에 대한 책임은 세 민족 모두에게 조금씩 있었고 일본인의 음모라는 주장도 있지만, 조선인이 중국인 배척 폭동으로 무고한 중국인 100여 명을 살해한 책임은 면하기 힘들다. 개인과 개인보다 민족과 민족이 갈등할 때 그 결과는 훨씬 더 비참해질 수 있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이 책의 전체적인 풍경 자체가 화이부동(和而不同) 바로 그것이다. 책 첫머리에 실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가 동료와 보조를 맞추고 있지 않다면, 그는 아마 다른 이가 치는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가 자신이 듣고 있는 음악에 맞춰 걷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박자가 어떻든, 또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든.”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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