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훈야간 활동이 빈번한 현대 도시에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만큼 야간 집회를 금지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비폭력 평화 집회는 밤이든 낮이든 장려해야 할 시위 문화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언론·표현의 자유와 함께 그 나라 민주화와 다양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민주 공동체에서 집회·시위는 자기의 의사와 주장을 집단으로 표명함으로써 여론을 형성하고 요구를 관철하는 정치투쟁 수단이다. 특히 거대 언론매체가 한목소리로 정부에 코드를 맞추고 비판의 칼날을 숨기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위란 다수인이 공동 목적을 가지고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하는 행위다. 따라서 소음 발생과 교통 방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비폭력적이고 질서 파괴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단시간의 피해는 사회 구성원이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 정도의 불편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의 집권자는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을 하나로 결집하고, 다양한 생각과 이념을 가진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에 대통령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CEO의 지시에 종업원이 절대복종하는 기업 경영과 국민을 다스리는 국정 운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국민의 목소리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들어야 한다.

 국민이 무지하고 부화뇌동해서 인터넷 괴담이 확산되고 촛불집회 참가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불신감이 표출된 결과이다. 따라서 의견 표출을 막는 헛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시간과 힘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왜 정부 정책을 불신하고 대통령을 믿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고, 원인을 제거할 방도를 찾는 것이 정부의 올바른 태도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경 대처에 코드를 맞춘 경찰은 현행법을 근거로 다른 목소리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억지로 찾아낸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으로 공익을 해할 유언비어를 유포한 자를 처벌하겠다고 한다. 누구든지 일출 시간 전, 일몰 시간 후에는 옥외 집회 또는 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를 근거 조항으로 들먹인다. 문화행사로 신고한 촛불집회에서 정치 구호를 외치고 손팻말을 들면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주동자를 색출·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자의적 잣대로 비폭력 평화 집회를 불법 집회로 둔갑시키겠다는 것이다.

집시법의 위헌적 독소 조항 개정해야

ⓒ뉴시스경찰의 ‘촛불집회 사법 처리’ 방침을 규탄하는 퍼포먼스.
그러나 지금은 도시화가 이루어진 산업사회다. 야간 활동이 빈번한 현실에서 야간의 집회와 시위가 주간의 그것보다 집회·시위 자체를 금지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현대 도시 생활에서는 야간에도 주간처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집회를 금지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이유가 이미 없어진 셈이다.

헌법재판소도 야간 폭행이라는 이유로 가중처벌하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성 요구에 위배된다고 결정한 바 있다. 동일한 취지에서 야간 집회의 원칙적 금지 규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는 규정이라고 볼 수 있다.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야간의 평온과 질서유지·안전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도록 개정해야 한다. 경찰은 낡고 비현실적인, 위헌 소지마저 있는 집시법 조항을 들먹일 게 아니라 야간에도 평화적 집회·시위가 가능하도록 독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비폭력 평화 집회라면 밤이든 낮이든 장려해야 할 시위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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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하태훈 (고려대 교수·법학과)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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