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사진으로 전개되는 민들레와 노린재 2대에 걸친 삶의 역사다. 동물이나 식물의 사진이 담겼다면 대체로 그들의 생김새나 생태를 일러주는 논픽션 그림책이기 십상이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선명한 서사와 깊은 감성을 그림책의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지라 그 흔한 민들레와 별로 예쁘지도 않은 노린재 사진에서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랴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즉시 인정해야 했다. 클로즈업된 민들레는 아름다웠고, 그 꽃 한 잎을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노린재의 얼굴은 정말 할 말 많다는 듯 풍부한 표정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진의 이야기는 어떤 대하드라마 못지않게 장엄한 삶을 보여주었다.
노린재 표정까지 잡아낸 사진작가의 열정
외따로 핀 민들레, 냄새 고약한 노린재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노린재가 꽃가루를 날라다 준 덕분에 맺힌 씨앗을 민들레는 모두 날려 보낸 뒤 생을 마감한다. 개미굴로 끌려 들어갈 뻔한 씨앗 하나가 위기를 벗어나자 노린재가 땅에 심어주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잘 자란 민들레에게 엄마에 대해서도, 씨앗 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노린재. 그녀는 어린 민들레의 잎 뒤에 알을 조랑조랑 낳아놓고 떠난다. 자기 잎이 먹히는 아픔을 참으며 노린재를 부화시키는 민들레. 체액을 빨아먹으려 덤비는 파리의 공격을 피해 모두들 뿔뿔이 흩어진 뒤 마지막 남은 어린 노린재 하나가 드디어 껍데기를 벗고 어른이 된다! 민들레 잎 끝에 올라앉은 노린재의 모습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보인다.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시라. 그리고 책을 보면, 상상 그 이상의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몸길이 기껏해야 3~4㎝인 노린재의 표정까지 잡아내려면 엎드리다 못해 땅으로 파고들어갈 지경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보는 것은 사진 40여 장이지만, 실제로는 그 수백 배의 사진이 찍히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를 잡아내기 위해 엄청난 포복의 시간을 견뎠을 사진작가의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민들레와 노린재에게 이름이라도 붙여주었다면, 글이 좀 더 극적으로 서사를 부각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아쉬움이 감동을 깎아내지는 않는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노린재가 정말이지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다. 파리가 골리앗처럼 무시무시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예쁜 초록빛 등을 갖고 있구나, 눈이 뜨인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살아가는 일의 장엄함은 이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