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소중한 거야. 우리는 자주 되뇐다. 아이들에게도 열심히 일러준다. 특히 책을 통해서. 그런데 가끔 그런 책이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생생한 실감을 주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안겨주기보다는 상투적인 일화 속에서 지당한 진리의 말씀으로 엄숙하게 선포하는 식이기 때문일까. 사랑이니 생명이니 하는 거창한 명제는 오히려 사소한 작은 에피소드에서 더 밀도 높게 증명되는 듯하다. 여기 〈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사진으로 전개되는 민들레와 노린재 2대에 걸친 삶의 역사다. 동물이나 식물의 사진이 담겼다면 대체로 그들의 생김새나 생태를 일러주는 논픽션 그림책이기 십상이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선명한 서사와 깊은 감성을 그림책의 중요한 미덕으로 여기는지라 그 흔한 민들레와 별로 예쁘지도 않은 노린재 사진에서 무슨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랴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내가 틀렸다는 것을 즉시 인정해야 했다. 클로즈업된 민들레는 아름다웠고, 그 꽃 한 잎을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노린재의 얼굴은 정말 할 말 많다는 듯 풍부한 표정이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사진의 이야기는 어떤 대하드라마 못지않게 장엄한 삶을 보여주었다.


<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 노정환 글, 황헌만 사진, 소년한길 펴냄

노린재 표정까지 잡아낸 사진작가의 열정

외따로 핀 민들레, 냄새 고약한 노린재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노린재가 꽃가루를 날라다 준 덕분에 맺힌 씨앗을 민들레는 모두 날려 보낸 뒤 생을 마감한다. 개미굴로 끌려 들어갈 뻔한 씨앗 하나가 위기를 벗어나자 노린재가 땅에 심어주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한다. 잘 자란 민들레에게 엄마에 대해서도, 씨앗 시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는 노린재. 그녀는 어린 민들레의 잎 뒤에 알을 조랑조랑 낳아놓고 떠난다. 자기 잎이 먹히는 아픔을 참으며 노린재를 부화시키는 민들레. 체액을 빨아먹으려 덤비는 파리의 공격을 피해 모두들 뿔뿔이 흩어진 뒤 마지막 남은 어린 노린재 하나가 드디어 껍데기를 벗고 어른이 된다! 민들레 잎 끝에 올라앉은 노린재의 모습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보인다.

이런 드라마가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상상해보시라. 그리고 책을 보면, 상상 그 이상의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몸길이 기껏해야 3~4㎝인 노린재의 표정까지 잡아내려면 엎드리다 못해 땅으로 파고들어갈 지경이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보는 것은 사진 40여 장이지만, 실제로는 그 수백 배의 사진이 찍히지 않았을까. 이 드라마를 잡아내기 위해 엄청난 포복의 시간을 견뎠을 사진작가의 열정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민들레와 노린재에게 이름이라도 붙여주었다면, 글이 좀 더 극적으로 서사를 부각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 아쉬움이 감동을 깎아내지는 않는다. 이 책을 보고 나면, 노린재가 정말이지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다. 파리가 골리앗처럼 무시무시해 보이고, 그러면서도 이렇게 예쁜 초록빛 등을 갖고 있구나, 눈이 뜨인다. 생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살아가는 일의 장엄함은 이렇게 하여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게 아닌가.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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