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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재는 해결책 아니다

미얀마 국민은 인권·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군사정부와 아웅산 수치 그리고 미국·중국·일본·인도 등 6개국이 참여하는 8자 회담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양길현(제주대 교수) 2007년 10월 09일 화요일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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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2007년 5월 미얀마의 친 군부 어용 정치 조직인 USDA 회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를 가로막고 있다.
 
 
9월27일과 28일 미얀마 군부가 민주화 시위를 무력 진압하면서 시민 항쟁은 수그러들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또 한번 좌초할 것인가. <시사IN>은 양길현 제주대 교수(정치학 박사)로부터 특별 기고를 받았다. 양길현 교수는 <미얀마의 민주화 가능성의 정치적 동향> 등 미얀마 민주화 관련 논문과 책을 써온 미얀마 전문가다.

공포와 체념 속에서 미얀마가 잠시 숨을 돌리는 듯싶다. 흥분과 열정을 뒤로하고 모든 것이 원상으로 복구되기에는 아쉬움이 커 보이는 적막함만이 미얀마를 뒤덮고 있다. 우리도 잠시 흥분을 접고 냉정하게 미얀마의 미래를 생각해볼 때이다. 특히 북한의 변화와 관련하여 강·온의 의견 대립을 벌여온 우리가 아닌가.

미얀마는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가능성은 크지 않다. 1987년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미얀마의 시민 사회와 정치 사회에서 조직화된 지성과 내부 활력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전근대성과 비합리는 2005년 11월 버젓한 수도 양곤을 놔두고 점성술에 의존해  군사정부의 요새화를 위해서 산악 오지인 핀나마로 수도를 옮긴 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궁극적으로 미얀마가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열 수 있을지는 미얀마만의 역량에 달려 있다. 시민들의 영웅적 행보로 아무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민주화를 향한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까지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과정에서 막대한 희생을 치러서는 안 된다. 통일이 평화와 짝을 이루어야 하듯이 민주주의 역시 평화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미얀마 군사정권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취약하지 않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 못지않게 견고하다. 미얀마는 1962년 이후 45년간,  즉 26년에 걸친 네윈의 군사정권과 19년간의 이른바 ‘신군부 정권’으로 나뉘는 장기간의 군부 통치 나라이다. 그 긴 시간 중에 1988년 이른바 ‘88 민주항쟁’이 한 번 있었을 뿐이다. 물론 소규모의 간헐적인 반정부 시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군사정권은 효과적으로 이를 봉쇄해 왔다. 특히 1988년 이후로는 인구 6000만 가운데 4분의 1이나 되는 1500만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는 USDA(연방단결발전협회)라는 친군부 자매기구를 통해 미얀마 군사정권은 시민사회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와 유사하게 일상생활에서도 군부와 직·간접 연계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어려울 정도다.

섣부른 경제 제재, 군부의 생존 논리만 키워

1988년 이후 미국과 EU 등 서방권은 경제 제재와 외교 압박을 통해 미얀마 군사정부의 인권 존중과 변화를 촉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서방권의 경제 제재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과 인도·일본·아세안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건설적 개입’ 내지는 이중 노선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의 천연자원을 노리는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추구 경제 논리도 경제 제재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렇게 별 실효가 없는 경제제재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특히 경제 제재는 가뜩이나 가난한 미얀마 국민만 더욱 못 살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널리 공감대를 얻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미얀마판 포용정책을 검토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uters=Newsis
1500만 회원을 거느린 USDA는 군부 독재자 탄쉐의 강력한 지배 수단 중 하나다.
 
 
밖에서 바라보는 제3자는 항상 빵과 민주가 동시에 보장되는 미얀마를 기대하고 요구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빵이 먼저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빵을 공급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경제 제재는 전혀 문제의 해결책이 못된다. 더욱이 국제사회가 일사불란하게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아닌 지금 상황에서 경제제재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억지 생존 논리만 키워줄 뿐이다.

그렇다면 대미얀마 포용정책은 어떤 내용의 것이어야 할까? 우선 군사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군사정부의 존재 내지는 미얀마 군부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틀에서 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미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지키려는 기득권은 이미 <신헌법제정국민회의>를 통해 제시된 바 있다. 1988년 민주항쟁과 1990년 총선 이후 미얀마 군부가 일종의 군부통치 제도화를 위해서 꾀하고 있는 신헌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정-입법부에서 군부 대표의 25% 지분 확보 △군총사령관에 긴급조치권 부여, 3인의 부통령 중 1인은 군부의 몫 △군방예산은 의회통제 배제 △아웅산 수치의 대통령 피선거권 거부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보기에 명백히 말도 안 되는 억지 헌법이다. 이러한 군부의 이른바 ‘규율민주주의’(disciplined democracy) 제안에 대해 아웅산 수치의 NLD(국민민주동맹)는 당연히 절대 불가 의사를 표명했다. <국민회의>는 1993년 이후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일본, 인도 등 6개 강대국과 미얀마 군사정부와 아웅산 수치를 포함하는 이른바 8자 회담을 여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8자 회담의 목표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기득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아웅산 수치 등 NLD의 제도권 진출을 허용하는 헌법 제정과 다당제 선거를 추진해 나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제 사회의 경제 지원이 포함된다. 아웅산 수치 등 NLD의 정치활동이 합법화돼 미얀마의 정치사회가 활력을 찾을 수만 있다면 앞의 네 가지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해도 괜찮을 것 같다.

미얀마의 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조정에 대해 미얀마의 군부와 아웅산 수치 모두가 다 반대할 수도 있다. 군부의 처지에서는 다당제 선거를 수용했다가 1990년 총선 때처럼 아웅산 수치의 NLD에 참패를  하는 상황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잦어 있다. 그리고 아웅산 수치 등 야당의 처지에서는 1990년 선거 결과를 없던 일로 하는 것도 억울한데 25%의 국회 의석을 군부에게 넘겨주는 게 사실상 공정한 것인지 불만이 없을 수 없다. 사실 지금까지 양측의 의구심과 불만이 쉽게 조정·타협되지 못했기 때문에 미얀마의 민주화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설사 제한적이고 불비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다당제 총선을 이끌어내는 것만이 미얀마의 정치·경제적 교착 상태를 제거하고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나서는 현실적 방안이 아닌가 생각한다. 인권, 자유, 민주와 같은 근대적 가치의 실현은 헌법과 다당제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긴밀히 연관되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타협책마저도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여전히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선다. 왜냐하면 국제 사회의 각 나라가 과연 자국의 단기 이익을 단념하고 미얀마의 정상국가화를 진지하게 고려할 것인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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