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구성애씨(위)는 “성폭력 사건 은폐를 막으려면 교장 문책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거침없는 입담과 진솔한 성 이야기로 인기를 끌어온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 ‘푸른아우성’ 대표는 아직도 매일, 하루 두세 번씩 성교육 강의를 다닌다. ‘아우성’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구 대표를 찾는 초·중·고등학생과 학부모의 상담 글이 끊이지 않는다. 20년 동안 ‘어린이 성 문제’를 숱하게 접해온 구 대표는 “이번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은 이미 예견될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나?
어린이의 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어른에게 잘못이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고지방 음식을 먹고 운동은 거의 못한다. 학원 다니느라 스트레스를 세계 최고로 받고 인터넷 등으로 끊임없이 야한 자극을 받는다. 이 모든 게 아이들의 사춘기를 당긴다. 사춘기가 되면 당연히 성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그 호기심은 풀어야지만 해결된다. ‘이런 환경에서 애들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을까, 빨리 풀어줘야지’라는 생각을 해야 했다.
대다수 어른은 초등학생이 다 순진하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당연히 몸도 마음도 순진하다. 그런데 순진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커지는 거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음란물을 보면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순진하니 더 강력하게. 애들은 그게 나쁜 짓인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빨라 2차 성징이 나타난 상태에서 음란물을 보면, 특히 남학생들은 친구끼리 어울리며 자기들끼리 즉각적으로 따라 해보게 된다. 이건 대구 사건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렇다.

대구 초등학교와 비슷한 사례가 다른 곳에도 많다는 얘기인가?
아우, 엄청 많다. 대구 사례가 집단화되고 어른 범죄까지 따라 하며 극악해졌을 뿐, 싹이 되는 요소들은 모든 초등학교에 있다. 특정 지역이나 학교·학생이 유별나 일어난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시대에 맞는 성교육이 필요했다. 사춘기가 진행돼버린 중학생들에게는 이미 성교육이 잘 안 먹힌다. 개념 없이 민망한 질문들을 해대는 초등학교 3·4학년 때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호기심을 건강하게 풀어주지 못한 우리가 죄인이다.

가해자들이 음란물을 많이 접했다는데.
사실 나는 성교육할 때 음란물을 보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현실성이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2001년 조사를 보면 9~11세 70%가 음란물을 봤다고 한다. 그 중 우연히 본 게 50%이다. 일부로 찾지 않아도 스팸 메일로 막 날아온다. 이런 환경에서 보지 마라며 무조건 죄책감을 주면 숨어서 보는 역효과가 난다. 대신 보호자가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한다. “음란물을 보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속지 마. 그거 다 어른들이 돈 벌려고 만든 가짜야. 넌 나쁜 애가 아니지만 그걸 보면 기분이 이상해질 수가 있어.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야. 단, 동생이든 친구든 절대 남을 만져선 안 돼. 넌 호기심이겠지만 그 사람에게는 범죄가 되는 거야”라고.

어린이가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이런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바람직한가.
존재와 행동을 분리해야 한다. 이걸 제대로 안 하면 아이를 망친다. 쬐끄만 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며 아이를 악마,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어른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가 교육 하나도 안 해놓고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가해자든 피해자든, 사건의 중심은 아이들이다. 이걸 계기로 좋은 방향으로 거듭나게 도와주는 게 최우선이다. 일단 가해 아이 부모가 아이의 존재는 계속 사랑하되 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가 가장 안 되는 부분이다. 이번 일과 비슷하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가한 한 초등 남학생의 경우, 부모가 계속 안 했다며 거짓말하라고 시켰더니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자신은 죄책감을 느끼는데 한 걸 안 한 걸로 하라 하니까 정리가 안 되는 거다.

가해 학생 세 명이 사법 처리됐는데.
사법 처리? 그건 우리 ‘어른’의 얘기다. 아이들에게 무슨 변화가 있겠나. 나머지 학생들은 다 쉬쉬하고 피해자도 안 나서는데. 법정으로 가 근거, 증거 따지기 시작하면 피해자·가해자는 없어지고 사건만 난무한다. 이번 사건도 이미 ‘아이 중심’이 실종됐다.

사건이 상당히 오랜 기간 숨겨져왔다.
성폭력 후유증이 남지 않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자기 얘기를 다 입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 성은 무의식으로 남으면 피해가 평생간다. 말은 무의식을 의식으로 바꾸는 과정이라, 얘기하면서 50%가 정리된다. 그 자리를 마련해주고 어른들이 사과해야 한다. “너같이 좋은 아이에게, 어른들이 미리 성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 나쁜 짓을 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하다”라고. 이런 과정을 사건 발생 뒤 최대한 빨리 거쳐야 한다. 이번 사건에 가장 화가 나는 게 6개월 정도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거다. 저건 죄 중에 죄다. 정말 학생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학교로서는 외부로 알려져 일이 커지는 게 싫을 수도 있다.
급히 바뀌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문책 관행이다. 책임 추궁은 꼭 교장에게 한다. 사실 어린이 성폭력 발생 자체는 사회적ㆍ총체적 문제이지 교장이 잘못한 게 아니다. 그런데 꼭 교장에게 책임을 지우니 퇴직 1~2년 앞둔 교장은 연금 때문에라도 쉬쉬하게 된다. 오히려 거꾸로 학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외부에 알리고 적극 해결하려는 교장을 포상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문제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이제껏 상담하다가 교장이 협조 안 해서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교장을 무조건 탓할 게 아니라, 합리적인 문책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 성교육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나?
외부의 변화에 학교가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보건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가 성상담 전문교육을 받아야 한다. 예전부터 입이 아프게 얘기했는데, 교사 연수 프로그램 속에 단 1시간도 커리큘럼이 없다. 지금 초등학생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 외에 가정 내 성폭행도 많아지는데, 담임 선생님이 항상 눈뜨고 아이들을 지켜봐야 한다.

각 초등학교에 성상담 교사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정권에서 그런 계획을 세웠다. 적어도 초등학교에는 강하게 교육을 받은 성상담 교사가 한 명씩 상주해야 한다. 중학교만 해도 아이들이 상담하러 안 온다. 초등학교 때 일찍 잡아주고 관리해줘야 한다. 이미 대학에 그런 코스가 마련돼 이수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시하더라. 예산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관심도 없는 거지.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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