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마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자궁방’에서 아이들이 태아의 성장 과정을 표현한 모형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이 칠판에 남녀의 생식기를 그리자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꺄악~ 뭐예요!” 여자 아이들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남자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한 남학생은 칠판으로 뛰어 나와 지우개로 ‘그 부위’를 황급히 지웠다.

지난 5월7일, 경기 시흥시 성교육체험관 ‘뭐야’에 초록세상지역아동센터 소속 초등학교 4~6학년생 15명이 성교육을 받으러 왔다. 본 교육 전인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아이들은 생식기 이름을 거침없이 말하는 ‘뭐야’ 김보람 선생님을 보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성교육 받아본 사람?” 15명 중 7명이 손을 들었다. “성(性) 하면 뭐가 떠올라?” 아이들은 쭈뼛거리다 대답했다. “난자하고 정자!” “성기!” “성폭력!”

ⓒ시사IN 안희태성기 모형을 보며 2차 성징 때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배우는 아이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초등학생에게도 ‘성 문제’가 터졌다. 어린이를 노리는 성범죄가 늘어나 부모들 걱정이 태산 같은 가운데, 급기야 초등학생이 가해자가 된 성폭력 사건도 발생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이 저학년생을 대상으로 ‘집단’ ‘놀이식’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소식에 어른들은 충격에 빠졌다. 성교육 전문강사 구성애씨는 “초등학생을 만만히 보면 안 된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대구 초등학교 성폭력 사건과 비슷한 일은 도처에서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순진하다’고 믿고 싶은 어른들은 그간 어린이 성교육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는 문화센터는 전국에 여러 곳이 있지만 유아·아동 대상 시설은 경기도 시흥시 대야종합사회복지관에 마련된 성교육체험관 ‘뭐야’ 단 한 곳이다. 이 곳의 성교육 교사인 김보람 대리는 “이제껏 어린이 성교육을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무슨 성교육이냐며 거부하는 교육자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성교육체험관 ‘뭐야’는 지금 2008년치 교육 예약이 거의 다 찼다. 김 대리는 “여러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서서히 어린이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자, 난자 만난다는 비디오를 본 게 전부"

공교육 현장에서의 어린이 성교육은 더 부실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르면 초등학교에서는 1년에 10시간 이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 도덕 등 일반 교과목 수업 때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면 쉽게 시간을 채울 수 있다. 해도 ‘제대로’가 아니다. 시흥시 신천초등학교 6학년생 박수현양은 “학교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난다는 지루한 비디오 한 번 본 기억밖에 없다”라고 불평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남매를 자녀로 둔 한 학부모는 “중학생 아이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자세히 받았다고 하는데 초등학생 아이는 하나도 안 받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남학생도 ‘생리대 착용’을 실습했다.
아이들 곁으로는 성교육보다 음란물이 더 빨리 찾아간다. 한국통신문화재단이 2004년 초·중·고등학생 15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의 89.1%가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생 사이에 인터넷 음란물을 처음 접했다고 답했다. 성교육 체험관 ‘뭐야’에서 성교육을 받던 한 초등학교 남학생도 교육용 성기 모형을 보고 “거의 ‘야동’ 수준이야!”라고 소리질렀다.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키우는 학부모 허신영씨(40)는 “인터넷 사용 제한시간도 두고 컴퓨터도 거실에 둬 집에서는 안 보는 것 같지만, 친구들끼리 18세 이상 관람가 비디오는 보고 다니는 것 같다”라고 걱정했다.

곁에서 지켜봐주는 부모가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한부모·조손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김순애 선생님(27)은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아이가 인터넷 검색창에 ‘야동’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이는 놀이터에서 혼자 놀다 어떤 아저씨에게 칼부림을 당한 뒤 여자 선생님의 가슴을 만지고 남자 아이의 성기를 건드리는 등 성적 이상행동을 보여왔다. 여러 번 상담을 시도했지만 아이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다며 횡설수설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야동' 검색"

이렇게 취약 계층의 어린이는 성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은 큰 반면, 어른이 일찍 발견해 개입할 기회는 적다. 구성애씨는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서라도 일찌감치 성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성이 먼저 들어오면 뒤에 유해한 걸 접해도 예방주사가 된다. 최악의 경우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 해도 성에 대한 애초 인식이 밝았다면 충분히 극복하고 헤쳐 나갈 수 있다.”

성교육체험관 ‘뭐야’에 초대된 시흥시 4·5·6학년 남녀 어린이들은 1시간30분 동안 5개의 방을 돌며 성교육을 받았다. 엄마의 자궁을 표현한 방에서는 태아의 성장을 배우고 산모체험방에서는 인형이 재연하는 아기 탄생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비디오 감상은 여러 코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성(性)이 단순히 ‘성관계(sex)’가 아니라 ‘가족’과 ‘탄생’ ‘육아’ 개념까지 포함한다는 걸 배운 아이들은, 뒤이은 2차 성징 교육시간에 ‘음경’ ‘질’ ‘사정’ 같은 적나라한 단어를 듣고도 전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마지막 시간은 생리대 착용해보기. 남녀 어린이 모두 집에서 가져온 속옷에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생리대를 붙여보았다. ‘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키득거리던 남학생들도 제법 진지하게 실습에 임했다. “부끄럽지 않냐”라는 질문에 아이의 타박이 돌아왔다.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요! 성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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