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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 사상의 고갱이를 만나다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정수복 지음/알마 펴냄

장동석 (출판평론가) webmaster@sisain.co.kr 2014년 01월 28일 화요일 제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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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출간된 대담집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이윤기, 민음사)에 매료된 이후 나는 대담집이라면 일단 구하고 본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마음을 준 대담집은 그리 많지 않다. 언뜻 생각하기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을 주선한 도정일과 최재천의 대담집 <대담>(휴머니스트)과 방송인 김제동의 재기발랄함에 이끌린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위즈덤경향), 그리고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두식 교수의 <다른 길이 있다>(한겨레출판사) 정도가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음에 담아둘 또 하나의 대담집을 찾는 내게, 때마침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가 포착되었다. 내용을 세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둥지의 철학자’ 박이문 선생을 사회학자 정수복이 만나, 그이의 삶과 앎의 여정을 풀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함량은 기대 이상일 것이다. 역시나 그랬다. 평생 진리를 천착해온 철학자 박이문의 삶과 앎의 여정은 한마디로 웅숭깊다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웅숭깊음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는 전적으로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정수복의 공이다. 그는 여섯 번에 걸친 열여덟 시간의 인터뷰에 만족하지 않고 박이문의 저서에 나오는 중요한 대목을 인용하거나 풀어 쓰면서 박이문의 삶과 사상 전체를 다루는 평전을 써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박이문은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연합뉴스
박이문은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문학평론가이다.
정수복은 ‘20대 초반,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젊은 날’에 박이문의 책들을 만나면서 ‘앞선 세대에 나와 비슷한 정신적 고뇌로 방황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시시때때로 만나 삶과 앎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나눈 우정을 세계인·철학자·시인·지식인 박이문으로 풀어낸다. 프랑스에서 문학을, 다시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했다고 해서 세계인이 아니다. “서구 학문의 추종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학문을 만들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그 보편성을 인정받는” 일에서 박이문만 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국내에 드물다.

그 바탕은 역시나 끝없는 글쓰기다. 철학자이자 시인이면서도 박이문이 쓴 글의 장르는 단지 그것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박이문은 20대 말에 사르트르와 카뮈를 비롯한 실존주의 문학에 대해 글을 여러 편 발표한 문학평론가였고, 발레리·에밀 졸라·아나톨 프랑스 등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누보로망과 초현실주의를 연구한 불문학자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원작인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을 번역한 사람이 바로 박이문이다. 그는 글쓰기의 방법으로 ‘고독 속의 글쓰기’를 권한다.

행복한 허무주의자로 사는 법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나, 나의 삶, 나의 행동, 나의 영광과 수치. 고독 속에서 나는 나의 유일성,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를 발견한다. 고독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적나라한 자아, 모든 껍데기를 훌훌 벗은 벌거숭이 자아와 직면한다. 고독은 자아를 밝혀주는 조명이다. …고독에 젖어보지 않았던 사람이 어찌 위대한 문학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깊은 철학적 사상이 고독을 떠나 어찌 탄생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의 미덕은 아무래도 박이문 철학과 사상의 고갱이를 축약해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박이문은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도 헛수고다. 반면 ‘인생에서의 의미’를 찾는 것은 가능하다. 각자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찾을 수 있지만 인생 자체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이문은 허무주의자다. 중요한 것은 ‘인생은 그 허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결단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허무주의자이면서도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유, 박이문이 행복한 허무주의자로 살 수 있는 이유다.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자>는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삶과 앎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니 필히 읽어두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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