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서울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했던 제시 잭슨.

베이징 올림픽이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장벽을 만났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의 비민주적인 정치 상황과 인권 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일부 유럽 국가 정상이 동조하고 있다. 이 소동을 보고 한국 네티즌은 중국에 은근한 우월감을 느낀다. 국내 인터넷 토론 게시판에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라며 중국을 조롱하는 글이 종종 보인다. 하지만 과거 이야기를 꺼낼 때는 조심해야 한다. 서울 올림픽 때도 보이콧 논란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6월. 약 100만명이 넘는 시민·학생이 거리에 나와 독재 타도 투쟁에 나섰다. 당시 한국을 보는 구미인의 시선은 지금 버마나 티베트를 보는 우리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해외 지식인들은 서울 올림픽이 독재정권 체제를 미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며 보이콧을 주장했다.

올림픽이 민주화 불렀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이콧를 주장했던 사람은 민주당 거물 정치인이었던 제시 잭슨이었다. 대통령 경선 유력 후보이기도 했던 잭슨 목사는 1987년 6월13일 중순 김경원 워싱턴 주재 한국 대사를 불러 “한국 정권이 인권 상황을 개선시킬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미국 정부에 보이콧를 요구할 것이다”라고 압박했다. 제시 잭슨은 정치범을 석방할 것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할 것, 그리고 ‘미국의 참가가 정당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 정치인의 이런 올림픽 보이콧 압력에 대해 미국 교포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발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한인 배경태씨는 주간지 〈타임〉 1987년 6월20일자 독자란에서 “인권 탄압 때문에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제시 잭슨 목사의 주장은 위선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코트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과 비슷했다.
 

 

1987년 6월 하순 들어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타임〉은 6월29일 발행호에서 “한국이 보이콧 운동과 폭력(시위·진압)에서 벗어나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정치인과 스포츠인이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톰 브래들리 로스앤젤레스 시장은 서울 올림픽이 무산되면 로스앤젤레스가 대신 행사를 치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6월29일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선언했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시작됐다. 이후 인권단체의 서울 올림픽 보이콧 목소리는 사라졌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직접 올림픽 보이콧 압력을 넣었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많은 미국인은 올림픽 보이콧 압력이 한국의 민주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했다고 믿는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해 4월12일 기사에서 “올림픽이 한국의 민주화를 이끌었다. 중국은 왜 안 되는가?”라며 올림픽 보이콧 압력과 민주화 간의 관계를 짚었다. 이 기사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은 6·29 선언 전날 전두환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하는 것보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엉뚱한 이유로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는 한국인의 개 식용 문화를 비판하며 서울 올림픽 보이콧을 벌였다. 서울시는 이런 압력을 의식해 1984년 보신탕 금지 고시를 내렸고 지금까지 개고기 불법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다른 보이콧 요구는 북한에서 나왔다. 북한은 한반도 주권을 가진 나라로서 올림픽 게임의 50%를 분할 개최할 권리가 있다고 요구했다. 이 주장을 한국이 받아들이지 않자 북한은 공산권에 보이콧을 요청했고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막판까지 참가를 주저했다. 결국 북한과 쿠바, 니카라과, 에티오피아, 알바니아 등 북한의 우방국이 서울 올림픽을 보이콧했다.

 

기자명 신호철 기자 다른기사 보기 shi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