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화원 아줌마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요. 시험 기간에 깨끗하게 못해주어서 미안해요.” 중앙대에서 5년째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김순자씨(가명·65)는 지난해 12월16일 난생처음 파업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하는 도서관 게시판에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쓴 대자보를 붙였다. ‘미화원 3층 아줌마’가 쓴 이 대자보는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 대자보 한 장의 ‘가격’이 100만원이었다는 걸 김씨는 뒤늦게 알았다. 중앙대가 지난해 12월23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기공공서비스지부와 지부 산하 중앙대분회, 분회 소속 조합원 35명을 상대로 ‘퇴거 및 업무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교내에서 대자보를 붙일 경우 1회에 1인당 100만원을 중앙대에 지급하라’는 간접강제 신청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대자보뿐 아니다. 중앙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제시한 ‘금지행위 목록’에는 ‘고성으로 노동가요나 구호 제창’ ‘신청인(중앙대)을 비방하는 내용의 유인물 배포’ ‘피켓·벽보·현수막 게시’ ‘신청인 설비에 스티커·대자보 등 게시물 부착’처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시위 방법이 들어 있다. 침구를 설치하거나 취식행위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농성·시위 목적을 위해 학교의 승낙 없이 교내에 출입하는 것과 교내 농성·시위 자체도 금지다. 위반 시 ‘1회에 1인당 100만원’이다.
중앙대는 해명 자료에서 “가처분은 미화근로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입히자는 의도가 전혀 아니다. 조합원들이 법원의 가처분 결정 후라도 불법 행위를 중단한다면 금전적 피해는 전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라고 밝혔다. 농성을 중단하라는 요구다.
왜 이렇게까지 ‘교내 농성·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것일까.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 티엔에스개발 소속이고 중앙대와는 아무런 근로관계가 없으므로 교내 농성은 ‘주거침입’이자 ‘업무방해’라는 게 중앙대의 방침이다. 중앙대는 가처분 신청 근거의 하나로 지난해 10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게 내려진 ‘20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들었다. “조합원 일부가 불법 파견을 인정받더라도 사내하청 노조 조합원들은 쟁의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라는 판례가 있는 만큼, 적법하게 도급계약을 체결한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에 대해서 정당한 쟁의행위를 할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용역업체 쪽이 ‘벌금’ 운운하며 노조 탈퇴를 종용하기도 했다고 조합원들은 말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설립된 후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만들어졌다. 이미 조합원 수십명이 빠져나갔다. 경비들이 조합원들을 따라다니면서 한국노총 가입을 종용했다. 중앙대에서만 14년째 청소 일을 한 김 아무개씨(52)의 말이다. “12월 말쯤 (용역업체) 소장이 전화했어요. 한국노총으로 안 넘어가고 민주노총에 있으면 600만원 벌금 물고, 호적에 붉은 줄 그어져서 자식들 취직이나 결혼하는 데도 지장이 있다고. 빨간 줄이 자식 대대로 내려가는데도 괜찮겠냐고.”
당장은 ‘협박’이 먹히지 않더라도, 학교 측 대응이 가처분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중앙대는 가처분 신청서에서 “퇴거, 업무방해 금지, 방해 배제 및 손해배상의 소 제기를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비록 두 차례나 기각됐지만, 홍익대가 파업을 했던 청소노동자 조합에 2억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제기해 ‘뒤끝 소송’ 논란을 낳은 사례가 반복될 수도 있다.
-
돈으로 노조를 파괴하는 ‘그들의 비결’
돈으로 노조를 파괴하는 ‘그들의 비결’
은수미 (국회의원·민주당)
한국은 일하는 시민의 권리인 ‘파업권’을 헌법으로 보장한다. 노동조합법 제3조에는, 사용자가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
불씨를 댕긴 편지 한 통
불씨를 댕긴 편지 한 통
장일호 기자
아빠가 퇴근하면 보고 자겠다는 큰아들 예찬이를 달래던 어느 늦은 밤, 불쑥 눈물이 났다. “‘아빠는 토요일에 보는 사람이야’라고 달래서 재우곤 했는데, 점점 더 주말도 없이 일하는...
-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송지혜 기자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 철강단지에서 내뿜는 연기가 도로에 자욱했다. 괴물같이 거대한 송전탑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을 지나 육지의 끝자락까지 도달했다고 느낄 때쯤 작은 마을이 나...
-
“사표 쓰면 손배 소송에서 빼주마”
“사표 쓰면 손배 소송에서 빼주마”
송지혜 기자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일까.”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수석부지회장 정의엽씨(44·당시 조직부장)는 유서를 써뒀다. 2010년 8월, KEC 구미공장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
-
가혹한, 너무나도 잔혹한
가혹한, 너무나도 잔혹한
전혜원 기자
1월9일 울산지방법원 113호 법정. 60석 규모의 방청석으로는 무리였다. 출석 요구를 받은 피고인 323명 중 171명만 겨우 법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통로를 가득 채워도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