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일까.”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수석부지회장 정의엽씨(44·당시 조직부장)는 유서를 써뒀다. 2010년 8월, KEC 구미공장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에서 종잇장처럼 몸을 구겨 잠을 청하는 동료를 보면서 한 글자씩 써내려갔다. 그 유서는 다행히 정씨의 품에만 머물고 있다.

2010년 초 구조조정을 발단으로 노사 간 싸움이 시작됐다. 2010년 10월 KEC 노조가 14일간 공장을 점거한 데 대해 회사 측은 노조와 노조원 88명에게 손해배상 156억원을 청구했다. 원래 301억원을 청구했다가 뒤늦게 반토막으로 줄인 액수다. 무분별하게 손해배상액을 부풀려 청구했다가 손실액을 입증하기 힘들어지자, 스스로 줄인 것이다.

노조 간부에게는 별도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었다. 정의엽 조직부장, 심부종 사무장, 현정호 지회장 세 사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5억원을 청구했다. 지난해 7월, 대구지법 김천지원 민사합의부는 이들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세 사람 중 유일한 복직자인 정씨는 최저생계비 154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급여를 가압류당한다.
 

ⓒ시사IN 자료2010년 11월 분신한 KEC 김준일 노조위원장이 병원에서 가족과 면회를 하고 있다.

조합원 개개인에게 “사표를 쓰면 손해배상 대상에서 빼주겠다”라는 회사 측의 회유는 노동계에서 이미 유명하다. 실제로 조합원 150여 명이 회사를 떠났고, 노조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KEC 노조는 회사 측의 거액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사실상 노조를 파괴하려는 의도라고 본다. 파업 중이던 2010년 7월, KEC 기획부가 작성한 ‘비상경영 상황 일보’에는 ‘손배소, 가압류(자금줄 봉쇄)’ ‘개인 민사상 가압류(조합 간부 대상자)’ ‘각 조합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및 가압류 설정 예정 통지 가압류를 준비한다(압박 전략 차원)’ 따위 내용이 적혀 있다. 2011년 2월에 회사 측이 작성한 ‘인력 구조조정 로드맵’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추진전략 사항에는 ‘파업자에게 심리적·경제적 압박을 강화해 복귀 사원에 대한 조합 탈퇴, 추가 징계, 정문 사용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다’고 적혀 있다.
 

KEC 노조는 이 문건을 근거로 2011년 6월, 회사 측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노동청에 고소했다. 이듬해 11월, 검찰은 KEC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배태선 사무국장은 “검찰에 문의 좀 해달라. 왜 문건이 있는데도, 회사 측을 기소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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