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일하는 시민의 권리인 ‘파업권’을 헌법으로 보장한다. 노동조합법 제3조에는, 사용자가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금전적 압박으로 파업권을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헌법과 노조법은 유명무실하다. 막대한 손해배상이 잇따른다. 참여연대 등의 발표에 따르면 2013년 1월 현재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 총액이 50개 사업장에서 2222억9000만원이다. 최근 민영화 저지 파업을 진행한 철도노조는 116억원 가압류와 함께 152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했다. 돈으로 파업을 파괴하는 행위가 매우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와해되는가 하면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헌법이 보장한 파업권을 돈으로 무너뜨리는 비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시사IN 이명익1월7일 은수미 의원이 국회에서 코레일의 무분별한 조합원 징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경제 관련 법률(민법)로 파업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파업은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라 위법하다”라는 경제적 접근이 한국에서는 헌법에 우선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노조법 제3조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는 결국, ‘파업은 기본적으로 위법이니, 합법 파업에 한해서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다’ 정도로 축소되어버린다.

헌법으로 파업권을 보장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모든 형태의 파업을 정당한 권리 행사로 간주한다. 문제를 삼는다면 ‘혹시 권리를 남용한 측면이 없는가’ 하는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야 헌법 정신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 지상주의로 시민의 권리를 까뭉개는 한국에서는 헌법 정신조차 ‘경제적 접근법’에 따라 왜곡되어버린다.

정부 경제정책에 대항하는 파업은 불법?

둘째, 더욱이 한국에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 ‘합법 파업’의 범위가 매우 좁다. 오직 자신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만을 위한 파업, 즉 ‘이기적 파업’만이 합법이며 다른 시민을 위한 공공 파업은 불법이다.

예컨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를 위해 연대 파업을 하면? 불법이다. 철도노조의 민영화 저지 파업처럼 공익 파업을 할 경우에는 대부분 불법 논쟁에 휘말린다. 2008년 보건의료노조는 100여 개 병원 측에 “환자식 및 병원식당에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에 합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 노조원들이 자기 이익이 아니라 공공적 요구를 내걸고 단체교섭 및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따라서 병원 측에서는 합의를 꺼렸다. 만약 이후 보건의료노조가 ‘의료 영리화 반대’ 파업을 결행한다면? 철도와 똑같이 불법으로 매도되고 대량징계 및 손해배상 소송을 각오해야 한다.
 

ⓒ연합뉴스지난해 12월 법원은 현대차 비정규 노조의 파업(위)에 대해 손해배상액 9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정부의 경제정책이 수반하는 경제사회적 결과에 항의하는 전국적 파업을 위법이라며 금지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ILO 결사위원회)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부와 사용자가 국제 기준조차 무시하고 불법 파업에 손해배상이라는 칼을 마구 휘두른다.

셋째, 비정규직은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합법 파업’을 할 수 없는 처지다. 쟁의 비슷한 일이라도 했다가는 악성 손해배상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규직 1000명에 비정규직(하청) 6000명인 인천공항공사에서 하청 노조는 ‘고용 불안정 해소’ 및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마자 불법 낙인에 시달렸다. 공항공사의 정직원이 아닌 하청 노동자들인 탓에 신고를 하고 집회를 개최해도 공항건물 및 시설 침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너! 우리의 지시에 따라 일은 할 수 있지만, 파업은 안 돼!” 이것이 한국의 노동법이다.

또한 공항공사에서 보안검색 등은 공익에 중요한 ‘필수유지업무’로 간주된다. 이런 업무에서 파업을 했다가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동시에 공항공사는 보안검색이 ‘주변 업무’이기도 하다며 아웃소싱해버렸다. 여기 고용된 하청 노동자는 필수유지업무이자 아웃소싱된 주변 업무를 수행하게 된 터라서 합법적인 파업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된다.

손해배상 금액 산정의 부당성

더욱이 화물트럭 운전사, 우체국 택배원처럼 특수형태 노동자나 실업자는 아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파업권뿐 아니라 노동3권 자체가 없다. 이들 역시 파업을 하면 동일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파업 금지, 돈으로 파업 금지! 일석이조다. 한국은 그래서 세계은행이 선정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7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넷째, 기업 측은 손해배상 과다 청구, 마구잡이 가압류 등을 저질러도 합법으로 간주된다. 불법 파업을 하면 100원의 영업손실, 적법 파업을 하면 99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치자. 이때 불법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규모는, 적법 파업일 경우 예상되는 영업손실분 99원을 뺀 1원이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손해배상액은 100원 혹은 그 이상이다.

게다가 영업손실이 불법 파업 때문이라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아도 손실분 전체를 배상하라고 한다. 영업손실은 경기변동, 환율, 물가변동 등 온갖 시장 상황이나 경영상의 문제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파업과 영업손실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하는데 이것이 종종 무시된다. 더구나 가압류는 사용자가 청구하면 변론 없이 집행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마구잡이로 남용되는 것이다.

이런 ‘손해배상에 따른 파업권 침해’에 대해 정당 및 시민단체, 노조 등에서는 수년 전부터 토론회를 개최하고 입법 발의를 했다. 얼마 전 국회에서는 파업을 해도 되는 사유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으로 좁게 정해놓은 노조법 제2조 5항에 “경제적·사회적 권익 향상”을 추가하는 법률 개정안을 검토했다. 이 문구만으로도 상당수 공익 파업의 불법성 논란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간접고용이나 특수형태 노동자, 실업자, 구직자처럼 근로자성 여부가 모호한 사람들도 노동자(근로자)로 인정해 노동3권을 보장하는 법률 개정안 역시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이 강력하게 반대하여 수년째 논의만 하는 상태다. 그래도 국회에서의 끊임없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른 방법도 있다. 논란 중인 법률의 해석을, 법원이 바꾸는 것이다. 아니면 고용부가 행정해석을 변경하여 파업권을 넓힐 수도 있다. 이런 ‘새로운’ 해석이 관행으로 정착되면 법 그 자체를 개정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사법부와 정부 역시 보수화하면서 해석 변경의 여지가 크지 않으나,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국회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일하는 모든 곳에서 한목소리로 “손해배상 없애자” “파업권 돌리도!”를 외치는 것이다. 이런 목소리가 사회적 동의를 얻어내면 입법 논의 역시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달걀로 바위치기라고? 살아 있는 달걀이 죽은 바위를 넘었다는 영화 〈변호인〉의 대사를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러면 2014년을, 손해배상 없애고 파업권 살리는 원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은수미 (국회의원·민주당)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