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불씨 하나로도 광야를 불사를 수 있다. 다만 두 개의 부싯돌이 필요하다. 한국의 ‘교육 상업화(영리화)’라는 불씨를 피우기 위한 부싯돌 하나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바로 제주국제자유도시의 국제학교들에 허용된 ‘영리법인(돈벌이를 목적으로 학교를 설립·운영할 수 있는 법률적 형태)’이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부싯돌’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박근혜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된 ‘과실 송금 허용’이 그것이다. 이제 부싯돌 두 개를 잘 부딪치게 하면 된다. 불씨는 불꽃으로 발전해 광야 전체를 삽시간에 휩쓸 것이다.

한국 교육의 운영 원칙 중 하나는 ‘비영리’였다. 학교는 돈벌이 목적으로 설립할 수 없다. 학교를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해 투자를 받을 수도 없다. 상품(교육)의 가격(학비)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 산업’이자 ‘경제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확산된다. 가장 유력한 육성 방법은 ‘해외 교육기관 유치’였다.
 

ⓒ연합뉴스2013년 12월13일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위)에서 정부는 ‘과실 송금’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수한 외국학교가 들어오면 국내 학교와 경쟁하는 가운데 전체 교육 서비스의 질이 상승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외 유학생들이 국내로 들어오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유학 갈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심지어 우수해진 국내 교육기관이 해외로 진출해 외자를 벌어올지도 모른다. 교육 부문의 무역수지에서도 한국은 적자국에서 흑자국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복한 시나리오의 전제는 ‘외국학교 유치’다. 그들이 한국에 진출하기를 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외국학교들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돈을 벌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있다. 교육 부문에서의 ‘비영리 원칙’이다.

이로 인한 정책 논쟁이 2000년대 중반부터 민관을 가로질러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나 다음과 같이 매우 절충적으로 마무리된다. “인천 등 경제자유구역과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외국학교를 유치할 수 있다. 그러나 영리법인은 제주국제자유도시에만 허용된다.”

그러나 제주국제자유도시 역시 ‘제대로 된 영리학교’를 설립할 수는 없었다. 관련 규칙에 따르면, “국제학교의 재산 및 잉여금은 학교 교육과 관련된 직접경비 등에만 사용 가능”하다. 국제학교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봤자 해당 학교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해외로 ‘과실(수익금) 송금’도 불가능하다. 영리를 취할 수 없는 ‘영리법인’이다. 그러나 길은 찾는 사람에게 보이는 법. 민간자본은 이런 ‘엉터리 영리학교’에서도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

제주도의 ‘영리법인 국제학교’로는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NLCS)과 브랭섬홀아시아(BHA)가 있다. 두 학교를 운영하는 기업은 ㈜해울.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센터(JDC: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 전담 기구)가 ㈜해울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해울 역시 일종의 공기업인 셈이다.
 

ⓒ연합뉴스2010년 11월18일 서울 대치동에서 열린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 제주’ 입학 설명회.

㈜해울의 국제학교 운영은 민관 합작 사업이다. NLCS와 BHA의 건물 및 시설을 세운 것은 ㈜해울이 아니라 다른 민간회사들이다. ㈜해울은 민간회사의 이런 건물과 시설을 빌려 운영하고 매년 수십억원에 달하는 임차료를 민간회사에 준다. 설사 학교 운영이 부진해서 수업료 등 수입이 예상보다 적어도 정해진 임차료를 내야 한다. 이른바 ‘운영 리스크’를 공기업인 ㈜해울이 감당하는 방식의 민관 합작이다. 또한 NLCS(영국)와 BHA(캐나다)의 본교에 로열티와 관리비도 지급한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이미경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그 규모가 NLCS에 50년간 780억원, BHA에 22년간 475억원에 달한다. 그리고 임차료와 로열티 같은 비용 중 상당 부분이 학부모들이 지급하는 학비에서 나온다. 학비가 비싸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국감 당시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밝힌 바에 따르면, 두 국제학교의 연간 학비는 1인당 4500만원 안팎에 이른다. NLCS와 BHA의 법률적 설립 목적은, 국내의 유학 희망자들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1인당 연간 평균 비용으로 볼 때, 두 국제학교의 학비는 유학비(2012년 기준 1938만원)의 2.5배에 달한다.

그런데 제주도 국제학교들의 학비를 올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바로 국제학교들이 교내에 유보한 ‘이익 잉여금’이다. 대략 국제학교가 거둔 수입에서 지출(임차료·로열티 등 포함)을 빼고 남은 돈이라고 할 수 있다. 2011~2012년 개교 이후 NLCS는 90억원, BHA는 98억원의 이익 잉여금을 남겼다. 이 대목에서 정진후 의원은 상당수의 학생이 학비 부담으로 퇴교하는 가운데 국제학교들이 수업료를 내리는 대신 이익 잉여금을 쌓아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한다. “국제학교의 과실(수익금) 송금이 허용될 때를 대비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해 12월13일 박근혜 정부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서 ‘과실 송금’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한다.

다른 특구 외국학교들의 형평성 시비 일 듯

사실 ‘과실 송금 허용’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교육 상업화론자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2009년) 국정과제로 제기된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에 이미 과실 송금 허용이 들어가 있었는데, 후임 정부에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에 따르면, 제주 국제학교들은 잉여금 중 일정 비율을 ‘학교에 재투자할 돈(학교발전 적립금)’ 등으로 뺀 뒤 투자자들에게 배당할 수 있다. 제주 국제학교들은 지금까지 형식적인 영리법인의 틀(기존 부싯돌)에 과실 송금(또 하나의 부싯돌)을 추가함으로써 드디어 투자를 받고 그 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두 발로 선 영리학교’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외국학교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경우, 국내 교육기관이 법인 설립 및 운영에 참여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 대책을 실현하기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을 올 상반기 내에 제출할 계획이다.

한국 교육시장의 경우, 국내외 자본들이 군침을 흘리면서도 각종 진입 장벽(영리법인이나 외국학교 설립에 대한 규제)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던 부문이다. 그래서 제주에 설립된 ‘제대로 된 영리학교’는 인천 등 경제특구의 외국학교(영리법인과 과실 송금이 허용되지 않고 있음)에 형평성 시비를 제기할 명분을 줄 것이다. 그다음 차례는 특구 이외 지역의 사학들이 될 것이다. 국내 사학들은 학교에 재투자해야 하는 잉여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해달라거나 영리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더욱 게토화할 공립학교들이 제기할 대안 역시 ‘상업화’일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삼성·현대·포스코 등 민간의 대자본은 올해부터 잇따라 자립형 사립고를 개교하는 등 ‘교육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이미 갖추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는,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채무자의 가슴살 1파운드를 도려내기로 했으나 ‘살 이외에 피 한 방울’이라도 더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재판부의 판결로 패소하는 고리대금업자가 등장한다. 이 판결은 사기다. 살을 도려내는 데 피를 흘리지 않을 수는 없다. ‘과실 송금 없는 영리법인’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영리법인을 허용하는데 과실 송금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피어오른 제주의 불씨는 ‘비영리법인에 의한 교육’이라는 원칙을 소멸시키는 광염(狂炎)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주식회사로 설립되는 수서발 KTX 법인,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 등이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절차’로 의심받는 것도 같은 이유일 터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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