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
“한게임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도박판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한 경찰은 말했다. “사이버머니 수천조를 가지고 한 판에 수백조를 베팅한다. 한 판에 현금 수백만원이 오가는데 이 정도면 단순한 게임이라고 볼 수 없다.”

“한게임 때문에 사행성 게임방은 폐업 직전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사행성 게임방을 하는 장 아무개씨는 “굳이 라스베이거스나 사행성 게임방에 갈 필요가 없다. 한게임에는 도박꾼이 24시간 대기해 있고 사이버머니는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게임 사이트 ‘한게임’(www.hangame.com). 회원 수 3100만명. 하루 평균 순수 방문자 300만명.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28만명에 달한다. 인구 160만명, 한 해 관광객 3700만명에 이르는 ‘도박의 낙원’ 미국 라스베이거스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가 많다.

한게임은 올 4월까지 905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79.5% 증가한 수치다. 한게임은 매출의 거의 대부분을 포커·고스톱 등 도박 게임에서 벌어들인다. 불법 환전 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사 한게임에서 베팅한 사람을 포함하면 한게임에서 사용하는 액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게임이 대박을 터뜨릴수록 쪽박을 찬 피해자도 증가한다. 한게임이 도박 문화를 확산하고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끊임없다.

경기도에서 대학을 다니는 한 아무개씨(23)는 지난 2월 한 달 만에 한게임 고스톱 사이트에서 등록금 500만원을 날리고 휴학했다. 한씨의 부모는 그가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안다. 그는 “500만원 정도는 친구에 비하면 많이 잃은 편도 아니다.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친구들끼리 한게임을 하다가 등록금과 전세비 5000만원을 날린 친구도 있다”라고 말했다.

"카지노보다 돈 잃기 더 쉽다"

서울시 청담동에 사는 소 아무개씨는 지난 겨울 한게임 포커 게임에서 현금 2000만원을 잃었다. 그 모습이 안타깝다며 나선 장 아무개씨는 ‘로우바둑이 게임’에서 2000만원도 넘게 잃었다. 옆에서 훈수를 두던 하 아무개씨도 1000만원가량을 한게임에서 잃었다.

ⓒ시사IN 한향란온라인 도박은 경마·경륜·카지노 등 전통 도박산업을 단숨에 따라잡을 만큼 파괴력이 크다. 그러나 정부는 제대로 된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10월 미국 의회는 인터넷 베팅에 신용카드 지불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사실상 온라인 도박을 금지했다. 사진은 한게임 포커 게임 모습.
소씨는 “사이버머니는 돈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 게임에 쉽게 빠져든다. 그러나 한게임은 카지노보다 더 쉽게 돈을 잃는 거대한 도박의 바다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하루에 200만원 이상 잃은 날도 많았다. 사이버머니를 팔아 몇 백만원을 챙긴 날은 단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씨는 “판돈이 커지면 진짜 카지노에서 베팅하는 것처럼 짜릿짜릿하다. 그러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코를 베어가는 줄도 몰랐다”라고 말했다.

소씨는 이제 한게임을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컴퓨터 초기화면은 한게임이다. 소씨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결제를 하면서도 자꾸만 ‘콜’에 손이 간다”라고 말했다.

한게임은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무료로 나누어준다. 하지만 게임을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용자가 아바타나 디지털 아이템을 구입하고 사이버머니를 받는 간접 충전 방식으로 게임을 이어간다. 한 달 동안 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은 30만원가량 된다.

가짜 돈을 진짜 사고판다

여기서부터 오락과 도박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간접 충전 방식 묵인은 한게임에 도박 면허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산업과 담당자는 “온라인 간접 충전 방식이 사행성은 짙지만 도박과 비즈니스 모델의 경계가 명확지 않아 지켜보는 중이다. 피해가 확산되면 논의를 진행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사이버머니의 거래가 전면 금지됐다. 법적으로는 개인 간 거래는 물론 사이버머니의 환전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러나 거액을 베팅하려는 사람에게 사이버머니를 충전할 우회로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인터넷에는 사이버머니를 사고 파는 불법 사이트가 널렸다. 현금 1만원으로 게임머니 6조~7조원을 살 수 있다. 사이버머니 100조원를 사는 데 14만~15만원가량 든다.

가짜 돈 사이버머니를 진짜 돈으로 사고 파는 구조가 사행성 논란의 핵심이다. 한 인터넷 사이버머니 환전상은 “사이버머니 시세는 환율처럼 항상 변하지만 사이버머니를 현금처럼 언제든지 사고 팔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이버머니를 받고 몸을 파는 여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한게임 운영 방식이 사행성 부추겨

5월1일 경기지방경찰청 사이버사수대는 인터넷 환전 사이트를 개설해 이용자에게 사이버머니를 사고 파는 수법으로 45억원 상당의 이득을 챙긴 혐의(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 아무개씨 등 88명을 입건하고, 사이트 102개를 폐쇄했다. 거래된 사이버머니는 6000경(京),현금으로 따지면 850억원가량 된다. 적발된 액수는 빙산의 일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사이버머니를 현금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부, 청소년까지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사이버머니 환전상을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Flickr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전경.
피해자들은 한게임 운영 방식이 사행성을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소 아무개씨는 “한게임에서 처음에는 수억원의 사이버머니를 주면서 낚싯밥을 던져놓고, 수조원을 미끼로 회원가입과 아바타 구입을 유도한다. 결국 돈으로 사이버머니를 사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드는 시스템이다”라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도박문화 확산시켜

서울시 중랑구에서 불법 도박장(일명 하우스)을 운영하는 최 아무개씨는 “한게임은 하우스와 똑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단속 위험이 있는 하우스 영업에 지장이 크다”라고 말했다. 최씨 설명에 따르면 하우스에서 도박을 하려면 일종의 자릿세인 ‘타임비’를 낸다고 한다. 한 시간에 3만~4만원 정도 한다. 한게임에서는 타임비 대신에 판돈의 최고 5%를 ‘딜러비’로 받는다. 하우스에는 돈을 빌려주는 ‘꽁지’가 있는데, 한게임에서는 사이버머니를 파는 환전상이 있다는 것이다. 한게임 회사가 도박장을 열어 선수에게 게임을 붙이는 하우스라는 주장이다. 최씨는 “라스베이거스, 룰루랄라, 알쏭달쏭 등 여러 도박 사이트가 환전 문제 때문에 걸렸는데 법은 한게임만은 교묘히 피해간다”라고 말했다.

한게임이 대박 확률을 키워 사행성을 높여놓았다는 전문가도 있다. 심준보 CJ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바다 이야기가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실제 나오기 힘든 확률의 대박 카드가 쏟아지는 것도 한게임의 주요 흥행 요인이다”라고 분석했다. 심씨는 “한게임은 로티플, 포카드 등을 많이 양산해 대박 확률을 키워 놓았다. 이는 돈을 많이 잃을 확률을 높인 셈인데 이것은 사기성과 직결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임 아무개씨의 말이다. “한 번은 내가 9포카드가 나와서 900조원을 베팅했다. 그런데 상대방은 10포카드가 나왔다. 한 판에서 현금으로 따지면 100만원도 넘는 돈을 날린 것이다. 새벽 3시에 환전상에게 사이버머니를 사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냥 심심풀이로 시작했는데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확률의 카드로 엮인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최 아무개씨는 “한게임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카드가 떨어진다. 승부를 아슬아슬하게 만들려고 한게임에서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도박은 시간과 장소는 물론 나이 제한도 의미가 없어 특히 청소년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온라인 고스톱이나 포커는 19세 이상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면 차단벽이 간단히 허물어진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고2 김 아무개군은 “예전에는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를 했는데 지금은 모두 ‘맞고’나 카드를 친다. 친구끼리 사이버머니를 사고팔거나 모여서 진짜 판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사는 중3 윤 아무개양은 “반에서 고스톱이나 포커 게임을 해본 친구가 절반은 된다. 거의 습관적으로 하지만 아이들은 도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전 아무개씨는 “포커나 고스톱을 컴퓨터에서 배웠다는 초등학생이 는다”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차라리 도박장을 열어라”

한게임을 비롯해 넷마블, 피망 등 고스톱과 카드 게임을 제공하는 게임 사이트는 60여 개가 넘는다고 〈랭키닷컴〉 관계자는 전했다. 음성적으로 운영되는 포커·고스톱 게임 사이트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피해자의 원성은 계속 커진다. 인터넷에는 ‘안티한게임’ 사이트가 생겨나고, ‘한국단도박모임’에는 피해 사례가 계속해서 올라온다.

‘안티한게임’과 ‘한국단도박모임’에 가입했다는 회사원 김 아무개씨는 “인터넷에서 버젓이 수천명이 도박을 벌이는데 정부는 아무 말이 없다. 차라리 도박장 개설을 허가하면 세금을 국고로 회수하고 청소년 출입도 막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한게임에서 피해를 보고 언론사를 찾아다녔다는 대학생 박 아무개씨는 “한게임의 폐해를 언론사에 수도 없이 제보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한 기자는 ‘언론도 포털의 힘은 두려워한다’고 했다. 총을 살 수만 있다면 한게임 본사에 가서 직원들을 쏘아 죽이고서라도 이 문제를 바로잡고 싶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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