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1월9일 금융인 간담회에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왼쪽)이 이명박 당선자(오른쪽 끝)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 은평 뉴타운 내 자립형 사립고(자사고) 설립 불도저에 시동이 걸렸다. 서울시는 4월30일 은평 뉴타운 자사고 설립 우선협상 대상자로 하나금융그룹(대표 김승유)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하나금융은 지난 2월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 자사고 운영사업자 공모에 단독 신청한 바 있다. 이로써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강력히 드라이브를 걸었던 은평 뉴타운 내 자사고는 2010년 750명의 첫 신입생 모집을 목표로 공사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은평 뉴타운에는 자사고 부지로 3-2공구 지역에 2만6000여㎡(약 8000평)가 마련돼 있다. 이번 결정으로 서울시는 약 650억원을 들여 조성한 이 터를 하나금융에 수십년간 유상임대 형식(연간 부지가액의 0.5%)으로 특별 공급해 지원한다.

그러나 이번 사업자 결정으로 자사고 설립이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시사IN〉이 추적한 결과 서울시가 하나금융을 자사고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결정한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정치적 특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의 뉴타운 내 자사고, 특히 은평 지구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점은 잘 알려졌다.

지난달 총선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투표를 이틀 앞둔 4월7일 은평 뉴타운을 전격 방문함으로써 강북 표심을 노린 불법 선거 개입이라는 시비를 부른 바 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부터 ‘100개 자사고 설립 추진’을 언급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첫 시범 설립 지역으로 은평·길음 뉴타운을 꼽았다. 이번에 은평 자사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하나금융 김승유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나 사업 면에서 특별한 인연이 있다. 고려대 상대 동창 사이인 두 사람은 과거 LKe뱅크라는 회사의 공동 투자자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운영했던 LKe뱅크에 김승유 하나은행장이 5억원을 투자했던 것. 이같은 사실은 지난 대선 때 BBK 실소유주 논란 과정에서 그 배후 회사에 대한 의혹으로 LKe뱅크가 거론되면서 밝혀졌다.

김승유 하나금융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적극 추진해온 자립형 사립고 설립에 진출할 뜻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어서 지난 2월 서울시에 은평 뉴타운 자사고 설립 사업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시는 4월30일 “하나금융이 자사고 설립 의지가 확고하고, 학교 설립 초기 비용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라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대표는 언론에 “정부가 자사고를 100개까지 세워나가겠다는데 서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른 금융회사나 재벌도 다들 자사고를 설립했으면 좋겠다”라고 화답했다.

서울시와 교육청의 딜레마

그러나 은평 뉴타운 자사고를 둘러싸고 서울시의 심사 과정에는 적잖은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나금융이 제출한 자사고 설립 신청서 내용 가운데 학교 운영 계획과 관련한 부분 때문이었다. 하나금융은 은평 자사고 학생 모집 지역을 강북 50%, 강남을 포함한 기타 지역 50%로 잡았다. 전형 방법은 서류와 면접으로 뽑는 일반 전형 80%, 면접만으로 뽑는 특별 전형 20%로 제안했다. 특별 전형은 재단에서 3배수로 추천해주면 자사고 학교장이 그 가운데서 선정한다는 것이다. 자사고 운영 비용은 재단 전입금 20%, 학생 등록금 80%로 충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등록금이 엄청나게 비싸리라고 예견되는 대목이다.

ⓒ시사IN 안희태서울 은평 뉴타운 내에 조성된 자립형 사립고 부지 8000여 평.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신입생 750여 명 중 면접만으로 들어가게 될 20%에 이르는 특별 전형 학생 모집 요강이다. 하나금융은 그 대상으로 하나금융그룹 임직원 자녀, 사회에 공헌도가 큰 가정의 자녀, 다문화가정의 자녀, 군인 자녀 등을 꼽았다. 각각에 대한 세부 비율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자사고의 특별전형 대상을 자기 회사 임직원 자녀로만 다 채워도 된다. 또 사회 공헌도가 큰 가정의 자녀라는 항목도 그 기준이 너무나 모호하다. 결국 막대한 금품을 싸들고 찾아오는 학부모의 자녀를 뽑는, 사실상의 기여입학제로 전락할 소지가 크다.

바로 이런 내용 때문에 서울시에서는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 하나금융 측에 사회적 파문을 줄일 수 있도록 보완을 요구하느라 사업자 선정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사태가 왔다는 것. 이에 대해 은평 자사고 사업자 선정 과정의 내막을 잘 안다는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오세훈 시장 처지에서는 하나금융 김승유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이 특수 관계인 데다가 하나금융 임직원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특별 전형 내용에 부담을 느끼고 하나금융 측에 여러 차례 내용 변경을 요청했지만 결국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서울시에 협조를 요청함으로써 오 시장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사업자 선정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공식 발표한 내용 이외에는 어떤 대목에 대해서도 해줄 말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문제의 소지가 있는 특별 전형 대상  항목은 앞으로 서울시교육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대통령실의 한 관계자는 “은평 자사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진은 서울시에 어떤 외압도 가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이든지 간에 하나금융그룹의 은평 뉴타운 자사고가 현행대로 추진된다면 크나큰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듯 부자만의 ‘귀족 고등학교’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외압 논란 속에 서울시가 하나금융을 은평 자사고 설립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만큼 이제 공은 서울시교육청과 교육과학기술부로 넘어갔다. 하나금융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 의회 등도 회의에 참석했지만 문제투성이 학교 운영 계획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교육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하나금융 쪽에서도 거액을 들여 학교를 설립하는 만큼 임직원 자녀 특례 제도를 욕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교육청은 이 문제를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해 결정하겠다. 서울시교육위원회의 동의도 거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은평·마포·서대문 지역 나형수 서울시교육위원은 “하나금융이 임직원 자녀 특별 전형 대목을 넣은 것은 기여입학제나 마찬가지로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은평 자사고가 서울에서 첫 시도인데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이 문제는 교육위원회에서 기필코 막아내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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