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지난 3월20일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오른쪽)이 대전 신계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 수업을 참관했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한·중 미디어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던 필자는 미국 귀국길에 오른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대학생과 대화를 나눴다. 서울에 있는 보건대학 물리치료학과에 재학 중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간다고 했다. 어학연수를 가는 이유를 묻자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취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영어점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는데 왜 영어 실력이 중요한지 다시 물었다. 그 학생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취업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답변했다.

영어 잘하면 성공한다고?

얼마 전 한국에서 자녀 셋을 키우는 후배와 통화했는데,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여름방학만 되면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영어권 국가에 어학연수 보내는 영어캠프가 유행이란다. 3~4주 일정으로 이루어지는 영어캠프에 들어가는 비용은 비행기 값을 제외하고도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8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거액을 들여가며 어학연수를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또 영어를 잘하는 것이 곧 자녀가 성공하는 지름길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리라.

이명박 정부는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강조하며 영어 몰입 교육에 교육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국가 예산 4조원을 투자해 2009년부터 영어 수업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주 1회 3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정책은 영어를 잘해야 성공한다는 부모의 믿음에 더 큰 확신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단순히 영어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과 믿음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미국 학생 중에는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있는가 하면, 학업 수행 능력이 떨어져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학생의 실력 차이는 영어 구사 능력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학업 수행 능력과 수업의 이해도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연합뉴스이명박 정부는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위는 영어 연수를 떠나는 학생.
영어는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매체로 도구 성격이 강한 언어이다. 즉, 영어 자체는 깨달아서 이해해야 하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의견과 생각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아직까지 세계 공용어 위치를 차지하는 영어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영어를 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많다. 필자도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연구 활동이나 사회 활동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영어를 잘해서만 얻어진 것은 분명 아니다. 전공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이론적 배경, 연구방법 등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어능력 평가시험 도입할 만

전달 도구(용기)는 전달하는 내용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용기라도 그 안에 하찮은 물건을 담고 있으면 그 용기는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밋밋하고 볼품없는 용기라도 그 안에 다이아몬드가 가득 차 있으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마련이다. 즉, 전달 도구인 영어 구사 능력은 전달하는 내용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단순히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처럼 강조하고 영어에만 초점을 맞춰 몰입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알맹이가 빠진 겉치레일 뿐이다.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려면 단순히 영어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력과 탁월한 지식과 능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교육정책이 영어만을 중점 강조하는 정책으로 치우치는 것은 교육의 불균형을 가져와 경쟁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게 된다. 창의력 계발과 사고력 신장, 그리고 전문 분야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정책이 영어 교육과 병행될 때 균형 잡힌 교육 체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최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한국인 교수와 한국의 영어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교수는 자기가 한국에서 영어 공부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미국에 와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면서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영어는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언어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영어를 물리·철학·정치학·경제학 등 지식과 이론을 배우는 일반 과목과 같은 시험 과목으로 취급해 단순히 점수를 많이 받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고, 그 점수를 기준으로 영어를 잘하고 못하는 것을 판단하는 현상은 한참 잘못 됐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영어 교육이 실용 영어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학생은 영어를 언어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시험 과목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김도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제안한 영어능력 평가시험 도입은 한국 영어 교육의 문제점 해결을 위한 한 방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대입 수능시험에서 영어 과목을 폐지하는 대신 영어능력 평가시험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점수에 관계없이 통과되는 자격시험을 시행하자는 김 장관의 제안은, 최소한 영어를 대학입시의 당락을 결정짓는 시험 공부가 아닌 언어 공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전문지식은 하루아침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투자, 그리고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을 때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정책은 교육 제도 전반에 불균형을 초래할 것이다. 영어에만 치우친 교육정책은 각 교육 과정의 단계마다 학생이 배워야 할 지식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기자명 최진봉 (미네소타 주립대학 교수·매스커뮤니케이션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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