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경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과 사료값 폭등이 겹치면서 한우 농민 권숙철씨(위)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우 농가에 대해 뭘 안다고 3300만원 소 어쩌고 한답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3300만원짜리 소를 키운 ‘한우왕’ 김성희씨(39)는 버럭 화부터 냈다. 지난 4월26일 경기 포천시의 한 한우목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에서 제일 비싼 소가 3300만원인데 일본에서는 1억원까지 한다”라고 말한 데 대한 거부감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국내 제일 비싼 소’는 2003년 제6회 전국 한우능력평가대회에서 최고 경매가 3335만6333원을 기록한 721kg 한우를 말한다. 김성희씨는 그 소를 포도즙과 황토 사료를 먹여 키웠다. 당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촌도) 개혁하면 살 수 있다”라고 자신했다. 지금까지 김씨는 안성에서 한우 5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에게서 우리나라 한우 농가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돌아오는 답은 매몰찼다. “우리 축산을 지키겠다는 마인드가 없는 정부와 일부 국민을 앞에 두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초읽기에 들어간 미국산 쇠고기의 개방을 앞두고 한우 농가가 불안에 떨고 있다. 우시장에는 ‘조기 출하’되는 한우가 넘쳐나고 송아지 값이 하루 만에 200만원 이상씩 떨어진다. 경북 안동시 서후면에서 한우 100여 마리를 키우는 권숙철씨(52)는 번식우로 새끼를 쳐 300마리까지 규모를 확장하려고 했지만, 최근 그 계획을 접었다. 앞날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전인 지금도 소 값이 뚝뚝 떨어지는데 막상 들어오면 상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우 농가 불안심리가 '독약'

한우 농가에게 ‘불안’은 독약이다. 사실 수입 그 자체가 한우 값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1988∼2005년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한우 가격은 수입량보다 국내 출하물량에 4~8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수입량이 증가할수록 한우 농가의 불안감이 커져, 키우던 소를 급하게 팔거나 새 송아지를 들이지 않아 소 값 하락을 부추기는 것이다. 소비자는 ‘한우 값이 싸지니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우 값 하락 뒤에는 항상 가격 폭등이 따라붙는다. 그때는 한우 농가와 소비자 모두가 손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료 값도 불안심리에 기름을 붓는다. 2007년 사료 값은 2006년보다 18.2% 상승했고 2008년에는 그보다 더 올랐다. 안동 한우 농가에 사료를 공급하는 농협사료 안동공장 이준일 팀장에 따르면, 곡물로 이루어진 배합사료는 지난해에 비해 60% 이상, 볏짚 사료도 40% 이상 가격이 올랐다. 이 팀장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한우 농가에 사료 값이 올랐다고 전할 때마다 내가 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문제가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고급 브랜드육’으로 해결이 될까. 이 대통령은 “(한우) 농민 스스로도 노력해야 농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농민이 노력해온 지는 이미 오래다. 안성마춤한우, 안동비프, 의성마늘소 등 지방마다 웬만한 한우 브랜드가 하나씩 있다. 각 지역 ‘한우협회’에서는 매달 교육과 세미나 일정을 잡아놓는다. ‘고급 브랜드육’을 어렵게 연구해놓아도 단기간에 판매·유통이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부농 배만 불리는 '개방 피해 대책'

 

결국 살아남는 것은 ‘경쟁력을 갖춰가는 한우 농가’가 아니라 ‘이미 규모의 경제를 갖춘 농가’일 가능성이 크다. 농협사료 이 팀장은 ‘곤포 사일리지(비닐로 싼 생볏짚)’를 그 예로 들었다. 곤포 사일리지는 발효제를 첨가해 ‘사각 볏집’보다 싸고 영양가도 높고 보관도 편리하다. 생산비를 아끼는 ‘과학적 축산업’을 하려면 당연히 곤포 사일리지를 써야 하지만, 규모가 작은 농가에는 버거운 일이다. 0.5t짜리 곤포 사일리지를 소 앞에 갖다 놓으려면 비싼 운반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산비를 못 줄여’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한우 농가는 설 자리를 찾기 힘들 것이다.

 

ⓒ뉴시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다고 우리나라 축산업이 완전히 망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허덕 연구위원은 “한우 고기 맛만 괜찮으면 10년 뒤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라고 전망했다. 가격은 지금보다 낮아지겠지만 600kg 수소 한 마리당 420만원대는 유지할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공급량이 많아 가만히 둬도 가격이 11% 낮아진다는 것이다. 한우를 키우는 농민도 “축산업이 나날이 발전만 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개방의 파고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관건은 ‘추락 강도’이다. “한우 농가가 문을 닫더라도, 축사를 정리하고 소를 제 값에 팔 수 있는 ‘소프트 랜딩(연착륙)’을 하면 괜찮은데 갑작스러운 개방으로 경착륙할까 봐 그게 걱정이다”라고 허 여구위원은 말했다.

 

정부가 도축세 폐지와 두당 10만~20만원의 한우 품질장려금 지급, 원산지 표시 단속 강화 등 개방 피해 대책을 내놓았지만 한우를 키우는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선개방 후대책’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권숙철씨는 “미국은 나라가 나서서 축산 농가를 보호하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정부가 망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3300만원짜리 고급 소를 만들어냈던 김성희씨도 축산 농가의 미래를 어둡게 보긴 마찬가지였다. “정책 자금이니 뭐니 풀어봤자 200두 넘게 키우는 대규모 부농 배만 불릴 겁니다. 이미 상황은 끝났어요. 죽은 놈은 죽고 살 놈만 살 겁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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