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동(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참여정부는 출범 때부터 도덕적 자신감을 피력해왔다. 과연 정권이 도덕성을 상실해 국민이 지지를 철회한 것일까? 하지만 정치에서 선악을 구하는 '도의 정치'의 위험성은 일제 이후 독재정치의 경험들을 통해 증명되었다.
‘대통령의 말’이 다시 한번 구설에 오르고, 세인들의 비난을 샀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의전비서관의 불법·비리 의혹이 언론에 제기되자, 대통령은 “요즘 깜도 안 되는 의혹이 춤을 추고 있다”라면서 그들을 변호했다. 나중에 대부분 사실로 드러난 ‘깜도 안 되는 의혹’이라는 말은 내게 그 수사(修辭)의 가벼움이나 비리의 무거움보다는 정치에서 도덕의 문제를 환기시켰다. 대통령의 도도함에서 자신의 주변 인물에 대한 도덕적 자신감을 읽었던 탓이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부터 도덕적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2003년에는 대통령 후보 시절 비리 정치자금이 야당 후보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내놓겠다고 호언장담한 적도 있다. 그리하여 대통령의 지지도가 추락한 원인을 ‘진보’ 진영의 도덕성 상실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과연 도덕적 정당성을 전면에 내건 정권이 도덕성을 상실함으로써 국민이 지지를 철회한 것일까?

일제는 조선에 총동원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42년부터 ‘도의조선(道義朝鮮)의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도의’는 ‘도(道)’라는 도덕규범과 ‘의(義)’라는 법률규범을 합성해서 만들어낸 말이다. ‘의’, 곧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목표만으로는 조선인을 총동원하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도’라는 개인적 도덕규범으로 사회 정의를 포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의라는 복합적 규범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뿐만 아니라 1960년대 박정희 정권 때까지도 맹위를 떨쳤다. 박정희 정권이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고 ‘국민윤리’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규범인 정의는 개인적 도덕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난나 그림
이처럼 정의라는 사회적·법률적 규범을 개인적 도덕으로 포장하고 이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전체주의 사회 또는 독재정치가 장기로 삼았던 바 있다. 물론 사회정의가 도덕규범으로부터 극단적으로 분리되는 것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터이다. ‘사회정의 실현’을 전면에 내걸었던 전두환 정권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었다.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은 지켜져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정치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정의와 도덕의 전면 분리도 위험하긴 매한가지

노무현 정권이 ‘과거사 청산’의 명분으로 내건 ‘사회정의의 실현’과 ‘국민 도덕의 회복’이라는 슬로건에서, 지난날 ‘도의’ 정치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은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정치는 선악의 피안에 있는 그 무엇이다. 정치적 투명성과 도덕성은 다르다. 정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타당성을 도출해내는 ‘조정의 예술’이어야 한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치보다, 정치에서 선악을 구하는 ‘도덕 정치’가 더욱 위험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제 정치적 정당성은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도덕의 저편’에서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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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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