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은 “이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한 허구의 이야기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 내용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개봉되면 진실 공방이 치열하리라 예상된다.

영화의 소재가 된 부림사건을 활용한 쪽은 역설적이게도 당시 수사 검사였던 고영주 변호사였다.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은 고 변호사는 올해 초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신년하례회 자리에서 “부산지검 공안부 검사로 있을 때 부림사건을 수사했다. 피의자가 나한테 한 얘기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에게 조사를 받고 있지만 곧 공산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역사가 바뀌면 주역도 바뀐다. 그러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노무현·문재인은 자신들이 변호한 사건이기 때문에 부림사건이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의 배경은 ‘부림사건’.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위는 <변호인> 촬영 장면.

‘팩트’와 다른, 고영주 전 검사의 기억

그러나 고 변호사의 기억은 잘못된 것이었다. 일단 문재인 의원은 변호인이 아니었다. 조사받던 사람 중에 검사를 겁박한 사람이 있다는 고영주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당시 고문 피해자 중 한 명인 교사 고호석씨가 이렇게 답했다. “내가 기억하는 검사와의 첫 만남은 이랬다. 고문이 끝나갈 무렵 심문 조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검사들이 왔다. 수사관들이 굽실굽실해서 그들이 검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오기 전 수사관들은 우리에게 샤워도 시켜주고 옷도 갈아입혔다. 수사관들은 우리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가서 엉뚱한 소리 하면 여기로 다시 온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당시 나는 대공분실에 붙들려가 36일 동안 불법 구금되어 구타와 고문을 당한 상태였다. 송병곤씨 같은 사람은 62일 동안 얻어맞고 고문당했다. 다들 극도로 위축된 상태로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검사에게 그런 소리를 했겠는가.”

고호석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시 우리에 대한 수사 기록이 모두 남아 있다. 우리가 지문 날인한 수사 기록이 법정에 다 제출되었다. 우리 중에 그런 말을 누군가 했다면 법정 증거로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소 사실이 없었다. 담당 검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고 변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던 피의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신년 하례회 자리에서 고 변호사는 자신이 오히려 부림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노무현 정권은 공산주의 정권이 아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도 안 되었는데 나한테 보복을 했다. 나는 5년 내내 핍박을 받다가 더럽다고 하고 검사직을 그만두었다”라고 주장했다.

부림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이호철 전 참여정부 민정수석은 “이전 독재정권에서는 공안부 검사가 에이스 검사로 대접받고 출세하는 통로였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공안부 검사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핍박받았다는 것은 아마도 대접받지 못해서 느낀 상대적 박탈감이지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핍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고 변호사는 참여정부 때 대검찰청 감찰부장(2004년), 그리고 서울남부지검장(2005년)을 지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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