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미국이 정상 국가라면 자국민도 기피하는 ‘미친 쇠고기’를 동맹국에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10년보다 더 무서운 반미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왜 미국을 ‘자멸해가는 제국’이라고 말하는지 알 만하다. 10년 만에 등장한 친미 보수 정권이 아니던가. 아무리 미국 내 축산업자의 로비가 거세다 하더라도, 정상 국가였다면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새 정권이 정권 초입이라 어리바리한 틈에, 마치 이명박 대통령 미국 방문의 조건인 양, 지키지도 못할 자유무역협정 의회 통과와 연계해 밀어붙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물론 미국이 아무리 그런 식으로 몰아붙였어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를 흐물흐물 풀어줘버린 이 정권과 당국자야말로 더욱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인터넷에서 대통령 탄핵이 거론될 만큼 정권에 대한 분노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좀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한다.

미국은 뭐냐는 거다. 자국 내 검역체계가 엉망이어서 자국민조차 호주산, 뉴질랜드산 쇠고기를 수입해 먹는 바람에 축산업자가 아우성이다. 그렇다면 쇠고기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서 어디 내놔도 괜찮게 만들어놓고, 수출하든지 말든지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도외시한 채, 만만한 국가에 압력을 넣어 팔아치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라이스 국무장관이 유명환 장관한테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라고 했다던데, 바로 이런 것이 친구를 대하는 태도인가.

‘30개월 기준’ 무너뜨린 것은 미국의 자충수

그렇게 해서 결국 미국이 얻을 건 또 무엇인가. 한국에 ‘미친 소’까지 섞어 판 덕분에 미국 축산업자가 일시 떼돈을 벌 거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건강한 상식으로 보자면 그것도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필자처럼 쇠고기 문제에 별 관심 없던 사람조차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우리 집은 절대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다”라고 아이들 앞에서 선언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왜요? 아빠” 하며 놀란 눈으로 묻는 두 딸에게 장황하게 설명하니, 둘째 아이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아빠, 난 미국 싫어. 유학은 캐나다로 보내주세요.”

ⓒ연합뉴스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부시 대통령.
미국이 조금만 현명했다면, 아니 정상 국가이기만 했다면 30개월 미만이라는 기준선은 무너뜨리지 말았어야 했다. 그 기준선을 스스로 허물어버림으로써 미국산 쇠고기 전체를 미친 소로 만들었고, 선량한 미국 축산업자까지 모두 ‘죽음의 상인’으로 한국인 뇌리에 각인시켰다.

이 정권과 그 주변 사람이 하도 노무현 시대 한·미 관계 훼손을 떠들어대는 바람에 그때 뭔가 대단한 거라도 있었던 것 같지만, 노무현 시대의 반미는 사실 ‘반미면 어때?’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앞으로 이 정권 아래서 벌어질 반미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요 애교 수준이다. 이미 정권 출범 두 달 만에 한국인 전체가 과거 10년보다 더 극심한 미국 혐오증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의 유치한 이념적 주의 주장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한 국민 전체의, 그 자자손손의 건강과 생명이 늘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에서, 반미의 불길은 끊임없이 되살아나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를 것이다.

미국에도 축산업자만 있지는 않을 터이고, 대다수 미국인은 한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희망한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지금 눈앞에 전개된 그대로다. 그러니 지금의 미국을 정상 국가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시 정권 내내 언급해온 ‘자멸하는 제국의 초상’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그런 물정도 모르고 섣불리 ‘아메리카 프렌들리’ 운운하다 5년 내내 ‘광우병 정권’이라는 낙인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정권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스러울 뿐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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