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일종의 비수기랄까? 눈 덮인 설원을 달리는 스키 마니아가 아니라면 날씨도 춥고, 별다른 볼거리도 없고, 여차하면 눈이라도 내려 교통 상황까지 좋지 않은 겨울여행을 선뜻 나서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자라면 방학까지 포함된 이 시기를 놓칠 순 없다. 바로 이 무렵 가면 좋은 ‘한옥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매년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갔던 시골 큰댁에서의 추억이다.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께서 방학 때만 되면 우리 형제들을 거의 반강제로 시골 큰댁에 보내곤 했는데, 그땐 큰댁행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무섭고 냄새 나는 재래식 화장실, 얼굴이 튼 촌스러운 시골 친구들…. 그러나 며칠만 지나면 금세 익숙해져 소여물을 끓이고 남은 군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저수지에 가서 썰매를 씽씽 타기도 했다. 그 추억들은 조각나 있지만 하나씩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퍼즐로 맞춰진다. 어릴 때 그토록 가기 싫었던 시골 큰댁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무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문득 우리 아이에게는 이런 시골집이나 친척집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든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전주 한옥마을
ⓒ시사IN 신선영

그런 까닭으로 언제부터인가 내 여행의 잠자리는 세련되고 화려한 호텔이나 펜션보다는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한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뜨뜻한 구들장에서 하룻밤 몸을 지지며 여독을 풀기에도 좋고, 아이들에게는 과거의 삶을 체험해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흙으로 된 너른 마당을 맘껏 뛰어다니다 넘어지면 어떻고, 때론 화장실이 좀 불편하고 웃풍 때문에 코끝이 시린들 어떠랴? 1년에 하룻밤쯤은 텔레비전도 없고 컴퓨터도 없이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으리라. 안개 낀 이른 새벽 마을을 호젓하게 거닐며 그 옛날의 양반 흉내도 내어보고, 시골밥상의 아침을 먹으며 시골 큰집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한옥마을이 여러 군데 있다. 그중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시골 큰집 같은 한옥마을을 꼽으라면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과 전남 보성의 ‘강골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이름은 한옥마을이지만 최근에 인위적으로 조성되어 무늬만 한옥마을인 곳도 많고, 유명 관광지나 대규모 숙박단지로 변해버려 한옥마을이 지닌 참맛을 잃어버린 곳도 많다. 그러나 군자마을과 강골마을은 원래 거주하던 시골마을을 그래도 살려놓은 곳이어서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안동 군자마을은 광산김씨 예안파(입향조 김효로)가 안동에 정착해 일가를 이루고 살았던 마을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놓이자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옮겨놓은 곳으로, 한옥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옮겨와 잘 관리하고 있다. 수시로 전통 국악공연이 열리며 동네 아지매들이 직접 안동식 밥상을 차려주는 곳으로 삶의 여유와 인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보성 강골마을은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대나무숲과 정자, 산책로가 있어 아가자기하며 소박한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방은 도착하는 순서대로 배정되고 아침식사는 사전 예약하면 먹을 수 있다. 보성 녹차밭과 연계해 남도 여행을 하기에도 좋다.

날씨가 춥다고 웅크리고 있지만 말자. 따뜻한 아랫목에 발을 모으고 이불을 덮고 군고구마라도 나눠 먹으며 가족의 정을 느껴보자. 너무 빨리 달려가는 당신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면 느림의 미학이 살아 있는 한옥마을을 권한다.

기자명 장은숙 (부산사대부고 국어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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