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면담하려다 불발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백악관의 완곡한 거절을 오해했던 것일까? 실제로 면담 계획은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을까?

의문을 풀어준 사람은 워싱턴 정가의 너른발 크리스토퍼 넬슨이었다. 〈넬슨 페이퍼〉라는 워싱턴 정가 소식지를 발행하는 그는 한국 관련 미국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정리한 ‘넬슨 리포트’를 실수로 유포시켜 국내에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을 비롯해 관계자들과 접촉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부시 대통령이 거의 결정한 것을 국무부가 완전히 틀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 면담은 아예 성사되지 않은 것’이라는 미국 측의 공식 발표와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이 이명박 대선 후보를 만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미국 국무부는 충격을 받았다. 회담 논의가 국무부가 배제된 채 비선 라인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외빈 면담은 국가안보회의(NSC) 승인을 얻어야 하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문제 될 게 없다. 클린턴 정부나 부시 정부에서는 선거기금 모금을 했던 비선 라인이 이런 비공식 면담을 주선하는 일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연합뉴스
거의 성사된 줄 알았던 면담이 완전히 무산된 것은 면담을 추진한 강영우 차관보(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사진)가 면담 소식을 특파원들에게 발표한 이후로 보인다. 면담 계획을 파악한 뒤 국무부는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역풍이 불어 미국의 이익에 반할 수 있다. 경쟁 후보가 요청했을 때 면담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 아첨하는 것으로 보여서 이명박 자신도 상처를 입을 것이다’ 따위가 국무부 논리였다. 국무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고, 백악관은 면담 일정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결과적으로 면담을 무산시킨 장본인은 이명박 캠프의 성급함과 부주의였다. 공론화되었을 때의 파장을 고려해 강씨가 미리 발표하지 못하게 했다면 ‘깜짝 면담’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정치권에서 이명박 후보는 ‘신이 내린 후보’라 불린다. 아무리 악재가 있어도 이를 상쇄할 다른 큰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면담이 무산되었지만 남북 정상회담 덕분에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후보의 운이 어디까지 갈까?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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