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 총회 한국 유치라는 ‘대박’을 터뜨린 이들은 다름 아닌 ‘마산·창원 환경운동 연합’ 식구. 이들은 1억4000만년 생태계 신비를 간직한 창녕 우포늪과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전남 순천만 갈대숲 등을 매개로 ‘람사르 총회’ 한국 유치전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람사르 협약에는 “전지구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는 습지 기준은 자연과 인공, 해수와 담수 구분 없이 수심 6m 이내로, 물새와 다양한 생물군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규정돼 있다. 창녕 우포늪과 순천만 갈대숲은 각각 담수와 해수 습지 분야에서 람사르 사무국에 등록된 한국 습지의 간판이다.
마산·창원 환경운동가들은 맹렬하게 총회 유치 활동을 벌여 지난해 람사르 당사국 회의에서 경쟁국인 중국을 간발의 차이로 제쳤다. 세계 160여 개국에서 2000여 명의 정부 대표와 환경 관련 국제기구 임원, NGO 단체가 참여하는 지구촌 최대의 ‘환경 축제’를 한국에 끌어온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국 손님으로 북적이게 될 예정인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는 요즘 축제 분위기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람사르 총회를 유치해온 이 지역 환경단체가 눈물을 머금고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김태호 경남지사와 ‘경부운하’가 자리한다.
람사르 총회는 세계 습지보전 기구인 람사르 사무국에서 주최하지만 행사 주관은 개최국 정부와 지자체 몫이다. 환경운동가들이 람사르 총회를 따오자마자 행사를 주관할 경상남도에서는 맹렬하게 준비 작업에 뛰어들었다. 김태호 지사가 주관단장을 맡아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를 돈 잘 버는 관광자원으로 만들려고 ‘때 빼고 광 내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철새 도래지인 주남저수지는 곳곳이 굴삭기와 불도저에 뒤집혔다. 국제 회의차 들를 손님 탐방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다. 주남저수지만큼은 아니지만 우포늪도 요즘 늪 주변 나무 식재와 탐방 조망대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그뿐이 아니다. 람사르 총회를 둘러싼 지역 환경단체와 경남도 사이에는 더 근원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발단은 경부운하를 둘러싼 김태호 지사의 ‘이상한’ 논리이다. 김 지사는 새해 들어 “경부운하를 경상남도에서 적극 추진하겠다. 경부운하도 람사르 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해당한다”라며 경부운하와 습지 보전이라는 람사르 협약 정신을 등치시켰다.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로서는 ‘경악할 만한’ 논리였다.
태고 적부터 홍수 때 낙동강물이 자연 범람해 광범위한 배후 습지로 조성된 창녕 우포늪은 생태환경 보고일 뿐만 아니라 요즘도 낙동강 홍수를 조절하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만일 경부운하가 들어서면 우포늪과 그 젖줄인 낙동강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한다고 분석한다. 늪 주위에 현재보다 최소 3m 이상의 제방을 더 쌓아야 하므로 생태계 보고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거대한 저수지로 변모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대운하가 습지의 현명한 이용이라고?
습지 및 생태 환경을 둘러싸고 지역 환경단체와 경남도지사 사이의 이같은 ‘양립할 수 없는’ 인식 차이는 결국 이 총회를 이끌어낸 민간 환경운동 주체들로 하여금 람사르 총회 보이콧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지역 환경단체는 최근 람사르 총회 대비 철새 탐방로 개설 명목으로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온 주남저수지에서 철야농성을 하는가 하면 환경부에 공사 저지 진정을 내는 방식으로 맞서 결국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경남도가 환경올림픽을 치를 자세가 되어 있다면 늪지 주변 개발 공사를 강행하기에 앞서 전면 생태조사를 실시해 람사르 총회 정신에 맞는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요구했다.
이런 팽팽한 갈등 속에서 람사르 총회를 준비하는 경상남도도 결코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총회 장소인 창원 컨벤션센터를 증축하는 한편 전 국민을 상대로 이 행사 홍보를 확대해 ‘관광 경남’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경남도 행사 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국가 경사인 국제 환경올림픽인데 지역 환경단체가 보이콧을 표명해 딱하다. 환경부, 전라남도 등과 연계하고 아직 보이콧 의사를 밝히지 않은, 환경운동연합 외의 NGO 단체를 설득해 차질 없이 람사르 총회를 성공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