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환경 올림픽’이라 불리는 람사르 총회가 오는 10월28일부터 1주일간 경상남도 창원에서 열린다. 람사르 총회란 물새 서식지 중 특히 국제적으로 보호 가치가 있는 중요한 습지를 지키기 위해 1971년 이란의 람사르 시에서 채택한 협약에 따라 매년 지구촌의 중요 습지 보유 국가가 돌아가며 여는 국제 행사다. 환경 올림픽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래서다.

람사르 총회 한국 유치라는 ‘대박’을 터뜨린 이들은 다름 아닌 ‘마산·창원 환경운동 연합’ 식구. 이들은 1억4000만년 생태계 신비를 간직한 창녕 우포늪과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주남저수지, 전남 순천만 갈대숲 등을 매개로 ‘람사르 총회’ 한국 유치전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람사르 협약에는 “전지구적으로 보전할 가치가 있는 습지 기준은 자연과 인공, 해수와 담수 구분 없이 수심 6m 이내로, 물새와 다양한 생물군이 서식하는 곳”이라고 규정돼 있다. 창녕 우포늪과 순천만 갈대숲은 각각 담수와 해수 습지 분야에서 람사르 사무국에 등록된 한국 습지의 간판이다.

마산·창원 환경운동가들은 맹렬하게 총회 유치 활동을 벌여 지난해 람사르 당사국 회의에서 경쟁국인 중국을 간발의 차이로 제쳤다. 세계 160여 개국에서 2000여 명의 정부 대표와 환경 관련 국제기구 임원, NGO 단체가 참여하는 지구촌 최대의 ‘환경 축제’를 한국에 끌어온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외국 손님으로 북적이게 될 예정인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는 요즘 축제 분위기가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람사르 총회를 유치해온 이 지역 환경단체가 눈물을 머금고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김태호 경남지사와 ‘경부운하’가 자리한다.

ⓒ뉴시스김태호 경남도지사(위)는 ‘대운하도 람사르 협약 정신’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람사르 총회 준비를 주도한다. 오른쪽은 낙동강의 대표적 배후 습지인 우포늪.
람사르 총회는 세계 습지보전 기구인 람사르 사무국에서 주최하지만 행사 주관은 개최국 정부와 지자체 몫이다. 환경운동가들이 람사르 총회를 따오자마자 행사를 주관할 경상남도에서는 맹렬하게 준비 작업에 뛰어들었다. 김태호 지사가 주관단장을 맡아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를 돈 잘 버는 관광자원으로 만들려고 ‘때 빼고 광 내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철새 도래지인 주남저수지는 곳곳이 굴삭기와 불도저에 뒤집혔다. 국제 회의차 들를 손님 탐방로를 만들기 위한 공사다. 주남저수지만큼은 아니지만 우포늪도 요즘 늪 주변 나무 식재와 탐방 조망대 설치 공사가 한창이다.

그뿐이 아니다. 람사르 총회를 둘러싼 지역 환경단체와 경남도 사이에는 더 근원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발단은 경부운하를 둘러싼 김태호 지사의 ‘이상한’ 논리이다. 김 지사는 새해 들어 “경부운하를 경상남도에서 적극 추진하겠다. 경부운하도 람사르 협약에서 이야기하는 ‘습지의 현명한 이용’에 해당한다”라며 경부운하와 습지 보전이라는 람사르 협약 정신을 등치시켰다.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환경단체로서는 ‘경악할 만한’ 논리였다.

태고 적부터 홍수 때 낙동강물이 자연 범람해 광범위한 배후 습지로 조성된 창녕 우포늪은 생태환경 보고일 뿐만 아니라 요즘도 낙동강 홍수를 조절하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만일 경부운하가 들어서면 우포늪과 그 젖줄인 낙동강 간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한다고 분석한다. 늪 주위에 현재보다 최소 3m 이상의 제방을 더 쌓아야 하므로 생태계 보고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거대한 저수지로 변모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대운하가 습지의 현명한 이용이라고?

습지 및 생태 환경을 둘러싸고 지역 환경단체와 경남도지사 사이의 이같은 ‘양립할 수 없는’ 인식 차이는 결국 이 총회를 이끌어낸 민간 환경운동 주체들로 하여금 람사르 총회 보이콧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지역 환경단체는 최근 람사르 총회 대비 철새 탐방로 개설 명목으로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온 주남저수지에서 철야농성을 하는가 하면 환경부에 공사 저지 진정을 내는 방식으로 맞서 결국 공사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경남도가 환경올림픽을 치를 자세가 되어 있다면 늪지 주변 개발 공사를 강행하기에 앞서 전면 생태조사를 실시해 람사르 총회 정신에 맞는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요구했다.

ⓒ시사IN 백승기또 다른 람사르 총회 탐방지로 지정돼 비교적 조용히 행사를 준비하는 전남 순천만 갈대밭.
경남 환경단체의 람사르 총회 보이콧 배경에는 김태호 지사의 연안 개발 드라이브 정책에 대한 짙은 불신도 자리한다. 김 지사는 그동안 연안을 경제발전에 활용한다는 목적으로 ‘동서남해안 발전특별법’ 제정을 주도해왔다. 최근 경남환경운동연합은  “동서남해안 발전특별법을 추진해 연안 생태계를 파괴하고, 경부운하에 매진하는 김태호 지사에게는 람사르 총회와 관련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라는 요지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팽팽한 갈등 속에서 람사르 총회를 준비하는 경상남도도 결코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총회 장소인 창원 컨벤션센터를 증축하는 한편 전 국민을 상대로 이 행사 홍보를 확대해 ‘관광 경남’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경남도 행사 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국가 경사인 국제 환경올림픽인데 지역 환경단체가 보이콧을 표명해 딱하다. 환경부, 전라남도 등과 연계하고 아직 보이콧 의사를 밝히지 않은, 환경운동연합 외의 NGO 단체를 설득해 차질 없이 람사르 총회를 성공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마산·창원 환경연합주남저수지 개발 공사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
람사르 총회 한국 유치 과정에서 대표 습지로 ‘출품’되었던 곳이 창녕 우포늪이다. 우포늪 지킴이인 창녕환경운동연합 송용철 의장은 4월19일 취재진을 안내해 늪을 한 바퀴 돌면서도 시종 수심이 가득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이 편안한 탐방로 대신 먼지 풀풀 나는 원시 그대로의 늪길이 더 좋다고 한다. 아직은 환경보전법에 묶여 경남도가 우포늪까지 탐방로를 개설하지는 않았지만 연안 개발이라면 특별법 제정까지 마다하지 않은 김태호 지사이기 때문에 우포늪도 언제 뒤엎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시사IN 백승기우포늪 탐방객.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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