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해 8월23일 영화 〈디워〉에 대한 ‘진중권 vs 누리꾼 맞장 토론’에 참석한 진중권씨(맨 왼쪽)가 인터넷을 통해 선발된 네티즌과 토론하고 있다.

예전에 녹색당 만들겠다며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진보누리를 진중권이 거의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던 당시, 누군가 그가 하루에 하나꼴로 글을 쓴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가보다 하고 ‘비나리’라는 필명으로 하루에 하나씩 3년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솔직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절감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다작 다상량(多作 多商量)’을 꼽으라면 진중권과 강준만을 빼고는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두 사람이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를 고종석이 뒤따라가는 형국이 이 분야의 대체적인 지형도가 아닐까. 세 사람 다 한때는 시대를 자기 어깨 위에 전부 메고 달려가는 듯했던, 하늘을 어깨에 진 아틀라스형 인간이다. 그래도 하느님이 이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려고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한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망할 건데 심심하지라도 말라고 등장을 허락한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런 사람과 같은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에 진중권이 가장 멋졌던 순간은 〈디워〉 논란의 맨 앞에 섰을 때였다. ‘그날’ 그의 개인 블로그에 몰려갔던 백만대군을 화공법(그는 블로그로 악플러를 유인한 뒤 그들의 글을 지우고 블로그를 닫아버렸다)으로 전멸시킨 사건을 네티즌은 ‘진중대첩’이라고 부르고, 명량해전 이후 가장 통쾌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진리는머릿수로 결정되지 않는 법이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맞다고 우겨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하여간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지면에 진중권이 집중 출현했고, 마치 대한민국이 거대한 ‘진보누리’ 게시판이 된 것만 같았다. 그 뒤 신문 사설과 칼럼이 그의 글에 달린 악플처럼 줄줄줄….

진중권은 스타일로 본다면, 장군도를 휘두르는 듯하다. 전공이 미학이지만 섬세하게 정밀 폭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조자룡이 말을 타고 달려나갈 때 기세가 저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풍우 같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명박 정권 이후의 진중권을 위해서 〈삼국지〉가 준비해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시절 ‘밤의 편집국장’이라고 불리던 순간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진보누리’를 홀로 지키던 시절도, 그리고 〈디워〉 사태 때 진중대첩을 끌어나가던 장군 진중권도, 모두 ‘2메가’ 불도저 앞에 홀로 선 지금의 진중권을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다.

대체로 한국의 우파는 유머에 약하고, 논리가 정확한 글을 쓰는 데 약하다. 인상 쓰기 좋아하고, 살짝 논지를 뒤틀어 마지막 몇 개의 문장으로 대의를 왜곡하는 기술자들이고, “이게 대세니까 그냥 따라와라”고 말하는 대세론자가 많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읽은 글과 인터뷰 중에서, 한국 우파 가운데 유일하게 유머를 구사했던 사람은 “어린쥐(오렌지), 어린쥐 하니까 새우깡에서 어린 쥐가 나온 게 아닌가요?”라고 말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정도인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 해설석에 앉게 된 정 총장을 빼면 아마 유머로 진중권과 맞설 우파 인사는 없는 것 같다.

논리로는 어떨까? 게으르지 않던 시절의 미덕을 간직한 마지막 우파 인사는 이어령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논리적 흐름에 의한 결론에서 이어령과 진중권이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경로로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기는 하다. 나는 자꾸 ‘뒤질려구!’라고 읽혀서 웃음을 참기 어려운 이어령의 ‘디지로그’와 그 시절 진중권이 주장하던 ‘디지털에 의한 사회적 변화’와 같은 얘기는, 큰 흐름에서는 거의 유사한 결론이라 신기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대단히 상식적이라서, 우파 논리를 사용하나 좌파 논리를 사용하나 진단은 대개 비슷하다. 이어령급이 아니라면, 한국 우파 인사 중에 진중권에게 논리로 이길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한국 우파의 상식이 ‘토목시대의 상식’이라서 그렇다.

‘2메가’ 불도저 앞에 홀로 선 진중권

그렇다면 대세론은? 이게 이명박 시대에 임하는 한국 우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인 셈인데, 대체로 좌파가 이런 대세론에 대항해서 버텼던 자세는 예를 들면 김규항처럼 “흔들림 없이 버텨보겠다”라는 자기 다짐적인 각오였다. 그러나 진중권은 조금 다르다. 그는 각오와 패기로 우파의 대세론에 수동으로 버티지 않고, 속도전으로 누군가 대응하기 전에 먼저 날카롭게 파고들어가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스타일이다. 저놈이 세게 때리면 어떻게 해? 먼저 때리면 되잖아! 원래 다작으로도 진중권은 한국 최고였는데, 요즘은 속도로도 한국 최고이다. 물 만났다고 표현해도 되고, ‘필 받았다’고 표현해도 되고, ‘신기 들렸다’고 표현해도 내용은 다 같다. 지금의 진중권이 딱 이렇다.

도대체 왜 하늘은 이명박을 낳고, 또 진중권을 낳았는가? ‘어륀쥐’에서 대운하까지, 삽질 이명박의 신출귀몰 불도저 앞에 다작·다상량에 속도전까지 갖춘 진중권이 서 있게 된 것은, 이 어찌된 조화란 말인가? 따져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장점은 토목시대 건설족의 상식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데 있는데, 진중권의 강점은 국제표준적인 인문학 상식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사용하는 이론틀은 대체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고, 인문학에서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해당한다. 토목 스탠더드를 인문학 상식이 하나씩 부수는 과정을, 지금 우리가 살아서 보는 중이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한국의 우파가 상식적 우파가 되면, 진중권도 다시 ‘미학자 진중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시대가 오면 좋겠는데, 당분간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분간 진중권의 장군검을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5년쯤 지나면 ‘정치적 비상시국’이 어느 정도 정리될까. 그렇게 되든 안 되든 우리가 지금의 진중권 같은 제2의 진중권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진중권만큼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누구도 그만큼 빨리 쓰기는 어렵고, 게다가 그만큼 용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현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진중권 앞에 진중권 없고, 진중권 뒤에 진중권 없다’.

하여간 불도저 앞에서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춤을 추어대는 진중권의 활약을 보는 것은, 이명박 시대에 사는 재미를 주기는 한다. 진중권이 없었다면 따분한 한국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이제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기자명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