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6층에 사는 나는 이따금 버튼을 잘못 눌러 5층에서 내릴 때가 있다. 그런 경우 계단을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그만인데, 한 번은 아래층 집 초인종을 누르고 말았다. 잠시 후 생면부지의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고, 나의 표정만으로도 상황을 알아챈 그녀는 환한 웃음으로 나의 실수를 감싸주었다. 그날 나는 다시 깨달았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익명의 공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아파트 단지를 지나다 말고 우두커니 서서 먼발치의 네모난 공간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 저 검게 보이는 한 점 작은 공간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 거기엔 남편과 아내가 있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도 있겠지. 그들은 어쩌면 지금 막 사춘기를 지나면서 세상을 힘들게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이런 상상에 빠지기도 하면서.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익명의 아이들이 제각각 삶의 분량을 지닌 각별한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교사인 내게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였다.

고백하자면, 한때 나는 아이들을 차별하는 교사였다. 학기말 방학을 겨우 하루 앞둔 어느 날, 한참 수업을 하다 보니 낯선 아이가 눈에 띄었다. “너 전학 왔니?”라고 묻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해 마지막 수업 시간이었으니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만회할 길은 영영 없었다. 한 해 동안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한 존재에게 내가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림 박해성


알고 보면, 학교는 차별이라는 룰로 운영되는 곳이다.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고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학생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타가 그 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순간 그 사람은 차별을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셈이 된다. 어찌 보면 차별은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다. 예쁘고 인성이 좋은 아이에게 더 마음이 가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턴가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게 되었다. 차별이라는 룰로 운영되는 학교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내 성품이 과거에 비해 고매해졌다거나, 인간은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적 사색이 깊어진 건 아니었다. 나에게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는 기술이 생겼다고나 할까? 물론 그 기술은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단련된 것이었다.

‘눈 맞추기’와 ‘생일 시’로 맘껏 편애한다

나는 수업 시간마다 출석을 부른다. 그것도 각 학생의 눈을 3초가량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처음에는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그랬던 것인데 차츰 재미가 붙었다. 그러다가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가진 인간적인 조건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인간의 고유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닌 경쟁과 차별의 원리로 운영되는 학교에 대한 반발심이 동력이 되어준.

해마다 반 아이들에게 ‘생일 시’를 써준 것도 아이들을 차별하지 않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삶을 관찰했다가 시를 써주곤 했는데 나중에는 생일을 앞둔 아이들과 몇 주 동안 편지를 교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과 진로지도를 겸하는 효과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기간에 한 아이를 마음껏 편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말하자면 허락받은 편애였던 셈이다.

나름으로는 이런 노력들을 해보지만, 학교는 여전히 차별이라는 룰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 안에서의 차별도 문제지만 학교 간의 차별도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다. 이런 열악한 여건 속에서 개인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초라할 만큼이나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별이 구조화된 곳에서 교사인 나마저 아이들을 차별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여기서’의 일을 궁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자명 안준철 (순천 효산고 교사·교육공동체 벗 이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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