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또다시 국정원 특별수사팀의 손을 들어주었다. 10월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트위터를 통한 대선 및 정치개입 활동 혐의를 추가한 검찰의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받아들였다. 앞서 10월23일 서울고법은,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단장을 기소하라고 민주당이 낸 재정신청을 인용했다. 이때도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해 유죄 심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수사팀에 힘이 실렸다.

검찰이 법원에 추가로 제출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글 5만5689개는 이제 법정에서 검증된다. 국정원도 자체 검증에 들어갔다. 검찰이 찾아낸 402개 계정 가운데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사용한 계정을 분류하고, 이 계정 가운데 퍼나르기(RT)한 글을 빼고 직접 작성한 글만 추려 혐의 사실을 축소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국정원은 직원이 관련된 트위터 글은 2233건이고, 직원이 직접 작성한 트위터 글은 139건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이는 트위터 활동이 대북 심리전 일환이고, 정치 관련 글은 설령 직원들이 올렸더라도 개별적인 일탈행위로 선을 긋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국정원과 관련한 ‘봇 계정’. 이 계정은 1만6000여 건을 올렸는데, 100% 대선 관련한 트윗이다.
하지만 〈시사IN〉이 법원에 제출된 5만5600여 건의 트윗 내용을 지난 호에 이어 추가로 분석해보니, 이 같은 국정원의 해명은 옹색했다.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비판하는 트윗을 광범위하게 퍼뜨리기 위한 조직적인 행태가 드러났다.

지금도 활동하는 봇 계정

‘이해찬, 박지원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 김광진은 사퇴할 생각이 없고, 나꼼수는 사과할 생각이 없고, 문재인은 아무런 생각이 없고...’ @yc*****라는 계정으로 올라온 이 트윗은 내용만 보면 지난해 대선 때 올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3년 10월31일 오전 11시5분에 올라왔다. 트윗을 자동으로 올리는 봇 계정(여러 개의 계정에 동일 내용을 반복 전송하는 계정)인 것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대장 계정’이 트윗을 생산하면, ‘보조 계정’이 재전송(RT)을 하고, 자동 프로그램인 ‘봇 계정’이 동시에 전송하는 식으로 퍼뜨렸다. 지난 10월15일 검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도 이런 운영 방식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yc*****이 올린 ‘이해찬, 박지원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라는 트윗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소통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구창환(@kooceo) 인맥경영연구원장이 지난해 11월3일 처음 올린 글이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11개월이 지난 뒤에도 시간이 고장 난 봇 계정들이 여전히 이 글을 올리고 있다. @yc*****외에도 @rjh****(2013년 10월31일), @dr* ***(2013년 10월31일), @gyh*****(2013년 11월1일) 등이 ‘이해찬, 박지원은 물러날 생각이 없고~’라는 글을 반복해서 올리는 중이다.

지난해 대선을 한 달 앞둔 11월13일 트위터 활동을 시작한 @yc*****은 지금까지 1만6118건을 올렸다. 100% 대선 관련 트윗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직접 올리거나, 퍼나르기(RT)한 내용과 일치한다.

봇 계정이 트윗을 반복해서 올린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자, 국정원 안에서 논란이 일었다. 검찰이 확보한 국정원 심리전단 업무 매뉴얼에는, ‘트위터 계정과 포털 아이디 등을 주기적으로 삭제·폐쇄하고, 매년 연말 전체 계정을 폐쇄하고 재개, 청사(국정원) 인근 등 카페 출입은 최소화하며 가급적 CCTV에서 먼 곳에서 작업, 본인 명의 신용카드 등 흔적 남기는 것 주의’ 등, 추적이 되더라도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한 보안지침이 담겨 있다. 그런데 봇 계정을 대량으로 쓰면 동일한 내용이 서로 다른 계정에서 반복해 노출되기 때문에 추적이 용이하다. 그 때문에 국정원은 봇 계정 사용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데, 내부에서도 왜 이를 사용했는지 자체 조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봇 계정을 단시간에 동일 내용을 순식간에 퍼뜨려 트위터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용도라고 본다.

보수·친박 파워 트위터리안 트윗 퍼나르기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해 공개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윗 목록을 보면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계정은 가려져 있다. 하지만 올린 내용을 근거로 구글링을 하면 가려진 계정이나 퍼날라진 계정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분석한 결과, 국정원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보수 성향 파워 트위터리안의 글을 주로 퍼날랐다.

ⓒ연합뉴스7월1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왼쪽). ‘댓글 사건’ 국정조사 청문회장을 빠져나가는 김하영 국정원 직원(오른쪽 사진 왼쪽).

퍼나르기 패턴은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들의 일반적인 활동 패턴으로 보인다. 김하영 직원 등 심리전단 안보3팀 5파트 소속 요원들이, ‘오늘의 유머’나 ‘다음 아고라’에서 올린 댓글의 내용도 대부분 ‘펌글’이다. 신문 사설이나 다른 누리꾼의 글을 복사해 그대로 올리거나, 자신의 의견을 조금 보태 올리는 식이었다. 트위터에서도 국정원 직원들은 펌글과 같은 형태인 퍼나르기를 주로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주로 퍼나르기를 한 글은  문재인·안철수 후보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변희재(@pyein2) 미디어워치 대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에 참여하기도 한 구창환(@kooceo) 인맥경영연구원장,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SNS미디어본부장을 지낸 윤정훈(@junghoonyoon) 목사, 〈안철수의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을 쓴 황장수(@hjs3452) 미래경영연구소장, 종북 지자체장 발언을 하기도 한 정미홍(@naya2816) 전 아나운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를 진행하는 장원재(@yark991)씨, 정봉주 전 의원과 맞짱 토론으로 유명해진 윤주진(@yoonjujin) 전 한국대학생포럼 회장 등의 트윗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이렇게 퍼나르기를 한 계정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동문회 관계자(@br*******)도 있다. 서강대 동문모임 ‘서강바른포럼’은 지난해 대선 전날 SNS 불법 사무실을 운영하다 선관위에 적발되었고 최근 1심에서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국정원 직원들은 또 박근혜 후보 공식 계정(@GH_PARK)뿐 아니라 박 후보 비서실 계정(@at_pgh), 새누리당 공식 계정(@saenuridang) 등을 통해 올라온 ‘[행복캠프] 친구가 되어주세요~ RT 박근혜 후보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되기~ 카카오톡→더보기→플러스 친구→ 실시간 순위에서 박근혜를 검색한 후 박근혜 후보의 친구가 되어주세요~’라는 글을 조직적으로 퍼날랐다.

검찰이 적발한 5만5600여 건의 트윗에는 박사모 지역 간부인 김 아무개(@kk*****)씨가 직접 올리거나, 김씨가 올린 글을 국정원 직원들이 퍼나른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검찰은 김씨를, 심리전단 안보3팀 5파트에 협력한 민간인 이정수(가명)씨와 같은 국정원의 ‘PA(민간인 보조요원)’로 의심한다.

이렇게 특정 성향을 지닌 파워 트위터리안들의 계정을 진지 삼아 광범위하게 트윗을 퍼나른 결과, 이들이 올린 글의 성향은 박근혜 지지, 문재인과 안철수 반대가 압도적이다. 이들이 2012년 9~12월에 올린 전체 5만5600건을 지지 성향별로 분석해보면, 문재인 후보·민주당 반대가 2만818건(37.4%), 안철수 반대가 1만3782건(24.8%), 이정희 후보·통진당 반대가 3800건(6.8%)이고, 박근혜 후보·새누리당 지지가 1만3782건(24.8%)이다. 국정원 해명처럼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보기에는, 조직적이면서 일관된 흐름이 뚜렷하다.

ⓒ시사IN 신선영왼쪽부터 구창환 인맥경영연구원장, 정미홍 전 아나운서, 윤정훈 목사,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보수 매체와 ‘일베’는 국정원의 싱크탱크?

지난해 12월3일 새누리당 소속의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은, 문재인 후보가 NLL 논란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 류우익 통일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 의원이 류 장관의 명예훼손 사건에 고발인으로 나서자 보수 표심을 노린 정치적인 고발로 여겨졌다. 이 뉴스가 ‘NLL 발언 관련 문재인, 검찰에 고발당해’라는 제목으로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에 보도되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12월4일 이 기사 링크와 함께 같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또 같은 날 ‘문재인, 진흙탕 전술? 민주당 네거티브 도를 넘었다’라는 〈뉴데일리〉 기사도 함께 올렸다.

‘안철수 할아버지, 친일 여부 논란 갈수록 확산’이라는 기사가 역시 보수 성향인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에 10월13일 보도되자, 이날부터 10월21일까지 같은 기사를 국정원 직원들이 쓴 20여 개 계정이 동시에 퍼날랐다. 독립신문·미디어워치·자유북한방송 등 보수 성향 6개 매체가 공동 출자한 〈뉴스 파인더〉에 실린 ‘새누리, 안철수 자녀 유학이 부의 대물림’이라는 기사가 링크된 글도 퍼날랐다(11월2일). 국정원 직원들은 〈조갑제 닷컴〉 기사도 자주 인용했다. ‘노무현 북핵 지지 및 서해 우리영토선(NLL) 포기 발언 당시 비서실장 문재인 후보이고 책임져야’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고(10월10일), ‘문재인의 전화 한 통이 부산저축은행을 살려 6조원의 사기를 치게 하였고, 그 대가로 문재인 관계 법무법인은 70억원을 벌었다’는 〈조갑제 닷컴〉 기사를 링크한 뒤, 그 앞에 ‘♥대규모 사기 사건은 종북인들의 주특기♥’라는 글을 직접 올렸다(11월1일). 박근혜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윤창중씨가 운영한 블로그 〈윤창중 칼럼세상〉에 나온 ‘박근혜가 남자란다 야당은 궤변을 늘어놓지 마라(11월2일)’는 글도 찾아 게재했다. 이 밖에 〈동아닷컴〉 〈TV조선〉 〈중앙일보〉 등에 나온 문재인·안철수 후보에 대한 비판 기사를 주로 퍼날랐다.

국정원 직원들은 보수적인 매체뿐 아니라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글도 이용했다. ‘간철수가 4대강 보 뜯고, 원전건설 중단시킨단다. 완전 또라이 아닌가? 나라를 분해시킬려고 하나봐요!!!(11월2일)’ ‘박근혜 여성성 꺼냈다가… 도망가는 민주당(11월3일)’ ‘문재인 후보, 이건 좀 무리수 같다..ㅋㅋㅋㅋ 살다 살다 이런 포퓰리즘 공약은 또 처음이다(11월1일)’ 따위 일베에 올라온 글을 트위터에 그대로 게재했다. 김하영 직원과 함께 ‘오늘의 유머’ 등 게시판 댓글을 공략한 민간인 조력자 이정수씨는 법정에서 “종북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지시받지 못했다. 일베 사이트를 보면 (종북에 대해) 잘 정리가 되어 있다”라며 종북 세력의 판단 근거를 일베로 두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기자명 고제규·김동인·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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