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환의 〈로베스피에르의 죽음〉(문학과지성사, 2013)은 익숙하지만 낯선 소설이다. 초인적인 영웅을 재현하고자 했던 고대의 서사시는 말할 것도 없고, 범상한 가운데 문제적 인물을 창조하고자 하는 현대 소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소설은 인물에 대한 충동적 욕구에서 시작한다.

그 충동이 얼마만큼 많은 작가로 하여금 소설을 쓰도록 하는지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 속에 세종대왕·황진이·이순신·안중근 등의 전기소설이 빠짐없이 들어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런데 로베스피에르라니? 로베스피에르가 한국인에게 불러일으키는 현실 연관성이나 정서적 친밀성은 거의 없다.
 

ⓒ이지영 그림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대표작 〈당통의 죽음〉(예니, 2003)을 떠올리게 한다. 1835년에 발표된 이 희곡은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대립 구도가 주제다. 로베스피에르가 “사회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어. 혁명을 중도에서 중단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이야”라고 채근할 때, 당통은 “난 이제 싫증났어. 무얼 위해 우리 인간이 서로 싸워야 하나?”라고 어깃장을 놓는다. 이 작품에서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에 맛들인 잔혹한 괴수나 융통성 없는 도덕주의자로 묘사되고, 당통은 공포정치에 숨통을 틔우려고 했던 댄디한 혁명가로 나온다. 비유하자면,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라고나 할까.

〈당통의 죽음〉은 프랑스대혁명을 무시하려는 독일 보수 비평가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들은 이 작품이 혁명에 대한 환멸을 형상화했기에 위대하다면서, 혁명의 불가능성과 혁명의 폭력성을 휴머니즘 시각에서 파헤친 작품이라고 상찬한다. 보수 비평가들은 그런 독해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부정하고, 인간은 동류 혹은 민중에 의한 혁명이 아니라 기적 혹은 지도자를 통해서만 시대의 혼돈과 절망으로부터 구원된다는 교설을 정당화한다.

루카치는 그런 해석을 거절한다. 그는 파시즘에 왜곡된 뷔히너를 바로 보기 위한 어느 에세이에서 로베스피에르를 불굴의 혁명가로 치켜세운다. 루카치는 두 주인공의 대립을 분석하면서, 당통은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에 혁명에서 물러서고자 했다고 혹평한다. 당통은 봉건제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싸웠을 뿐, 유한계급(부르주아)으로부터 가난한 사람을 해방시키는 목표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통은 혁명을 부르주아의 이해에 한정했던 사람으로, 단순히 로베스피에르의 독재를 막으려 했던 정도가 아니라 혁명의 완수를 가로막거나 목표에서 이탈한 자였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복잡한 데다 참여한 주연급 인물만 해도 부지기수다. 뷔히너는 양자 대결이라는 단순 구도에 포획되어, 왕의 처단 이후 분출된 정치적·경제적 세력 사이의 복잡한 지형을 다 드러내지 못했다. 예컨대 반(反)로베스피에르 세력에는 1793년 6월에 대거 숙청된 지롱드파의 잔존 세력도 있지만, 자코뱅 안의 허다한 부르주아 성원이 찬동했다. 이들이 로베스피에르의 오른쪽에 있으면서 테르미도르 반동을 성사시켰던 주력이라면, 로베스피에르의 가장 왼쪽에 위치하면서 결과적으로 부르주아들로 이루어진 반(反)로베스피에르 세력의 테르미도르 반동에 동조했던 극좌 상퀼로트(하층민·노동자)도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넛크래커(Nut Cracker:호두를 양쪽에서 눌러 까는 도구)’에 끼어 있었다.

경제적 이득 없으면 ‘민주주의’ 방치?
 

〈로베스피에르의 죽음〉 서준환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자신의 독재를 의심하는 숱한 정적 속에서, 로베스피에르는 국민공회 의원들을 향해 정치력을 발휘해야 했으나, 그는 자주 의회 밖의 상퀼로트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고귀한 야만인’의 현대판으로 여겼던 상퀼로트는 그의 믿음처럼 그저 소박하고 선량한 인민이 아니었다. 상퀼로트는 로베스피에르와 공포정치가 그들에게 더 이상 경제적 이득을 주지 않자, ‘나와 무관하다’는 태도로 혁명을 방치했다. 이런 현상이 오늘이라고 다를까? 로베스피에르 대신 ‘아무개’를, 공포정치 대신 ‘민주주의’를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로베스피에르는 철저한 평등주의자였지만 사유재산제의 철폐나 재산의 공유가 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로베스피에르는 그런 극좌적 문제의식이나 상퀼로트의 경제 투쟁과는 거리를 둔 채, 덕성과 정의로 시민을 교화하고 그것을 함양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뼛속까지 루소의 아들이었던 그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를 응용하고자 ‘이성의 최고 존재 축제’를 벌이기도 했지만, 무신론자 일색이었던 부르주아 국민공회 의원들에게 조롱받았고 상퀼로트는 외면했다. 부르주아나 상퀼로트나 그들은 언제나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이구동성일 뿐, 공화국 시민의 덕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구 정치는 두 가지 단계를 통해 로베스피에르를 악마화했다. 첫 번째는 테르미도르 반동에 성공한 세력과 나폴레옹 시대의 조작. 두 번째는 첫 번째 악마화와 결합된 볼셰비키(러시아) 혁명에 대한 공포.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경보는 ‘모든 정치적 이상주의의 끝은 굴락(gulag:옛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과 스탈린 독재로 귀결되며, 그 기원에 공포정치와 로베스피에르가 있다!’이다. 로베스피에르라는 귀면와(鬼面瓦:도깨비 얼굴 모양으로 장식된 기와. 사래 끝에 붙여 잡귀나 재앙을 막는다)는 보수주의 우파가 좌파의 부상이나 민중 혁명을 저지하면서, 온갖 이상주의가 추동하는 사회변혁 운동을 윽박지르는 최상의 부적이다.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교양인, 2005)을 필두로 많은 역사가들이 그에게 쓰인 악마의 가면을 벗겨주고자 했다. 로베스피에르의 변호사들은 집단체제가 운영한 공포정치는 로베스피에르 한 사람이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제도 연구에서부터, 국내 반혁명 세력의 준동, 외국과의 전쟁, 공포정치를 이용한 부패분자 등을 정범 내지 공범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슬라보예 지젝은 그런 변론에 의문을 품는다. 장 마생 같은 변호사들의 변론을 충실히 따를 때, 인민독재나 폭력은 항상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상정되는 혁명의 중차대한 위반으로 전락해버리고, 혁명에 임해 항시 자신의 위반을 걱정해야 하는 휴머니즘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바로 그것(인민독재와 신적 폭력)이 혁명의 ‘윤리적 계기’라면 또 어찌할 텐가? 로베스피에르가 남긴 연설문집 〈로베스피에르:덕치와 공포정치〉(프레시안북, 2009)는 이렇게 묻는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혁명 없는 혁명을 원하십니까?”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의 저자 서준환은 올해 동인문학상 본심 후보에 올랐으나, 후보 되기를 거부했다. 이런 일은 자랑할 일도, 투사연(鬪士然)할 일도 아니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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