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리라 믿었다. 부모님은 다른 부모와 달리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편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는 대학을 다닐 때 ‘운동권’이었고 지금도 진보 정당을 지지하며 후원금도 듬뿍 낸다. 하지만 종호의 예상은 빗나갔다.
부모는 학교와 주변에 종호의 성 정체성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회유와 압박을 계속했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먹고살라던 부모는 유산을 미끼로 종호의 성 정체성을 바꿀 것을 종용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종호를 때렸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울기만 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종호는 결국 집을 나왔다.
술 따르고 몸 파는 청소년 성 소수자
그래도 나이가 들어 가족에게 자기의 성 정체성을 들킨 종호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청소년은 대부분 부모의 학대와 친구의 멸시를 견디다 못해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온다. 청소년 신분인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얻거나, 끼리끼리 어울려 공원·사우나 등지를 전전한다. 술집에서 술을 따르고 몸을 팔기도 한다.
문제는 건강이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불특정 다수와 성행위를 하다가 혹여 한 명이라도 성병에 감염되면 삽시간에 병이 퍼지기 마련이다. 성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감염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청소년이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니 병원에 갈 수도 없다. 그나마 요즘에는 성병 홍보가 널리 이뤄져 콘돔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 게 다행이다.
2003년, 육우당이라는 청소년이 이런 현실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청소년처럼 집을 나온 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청소년보호법 유해 항목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기독교 측이 동성애자를 격렬히 비난했다. 기독교인인 그에게 같은 교인의 비난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육군은 결국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한기총은 육우당의 죽음과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며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잔인함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성 소수자뿐 아니라 많은 인권운동가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육군의 죽음 이후에도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레즈비언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청소년 성 소수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가정과 학교에서 ‘제거’당한 채 길거리로 내몰린다. 앞서 말했듯 집 나온 아이들의 건강이 가장 걱정이다.
우리 사회도 인권단체 등을 통한 청소년 성 소수자 무료 치료 시스템을 갖출 때가 되었다. 물론 익명이 철저히 보장돼야 할 것이다. 이성애 청소년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자살 충동을 느끼는 성 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상담도 필요하다. 학교도 성 소수자 청소년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일이다. 종호와 같은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