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 종호(가명·18세)는 지금 집을 나와서 선배 집에서 산다. 종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 부모의 매질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것이다. 1년 전쯤, 종호가 학교에 간 동안 방을 치우던 어머니는 종호의 컴퓨터 안에 있던 동성애 관련 동영상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온 종호에게 다짜고짜 매질을 했고, 거짓말을 못하는 종호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종호는 부모가 자신을 이해하리라 믿었다. 부모님은 다른 부모와 달리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편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는 대학을 다닐 때 ‘운동권’이었고 지금도 진보 정당을 지지하며 후원금도 듬뿍 낸다. 하지만 종호의 예상은 빗나갔다.

부모는 학교와 주변에 종호의 성 정체성이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회유와 압박을 계속했다.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먹고살라던 부모는 유산을 미끼로 종호의 성 정체성을 바꿀 것을 종용했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종호를 때렸다. 어머니는 그 옆에서 울기만 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종호는 결국 집을 나왔다.

술 따르고 몸 파는 청소년 성 소수자

ⓒ시사IN 윤무영4월24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동성애자인권연대의 촛불 문화제.
그래도 나이가 들어 가족에게 자기의 성 정체성을 들킨 종호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성 정체성이 알려지는 청소년은 대부분 부모의 학대와 친구의 멸시를 견디다 못해 대책 없이 집을 뛰쳐나온다. 청소년 신분인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많지 않다.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얻거나, 끼리끼리 어울려 공원·사우나 등지를 전전한다. 술집에서 술을 따르고 몸을 팔기도 한다.

문제는 건강이다. 단체로 몰려다니며 불특정 다수와 성행위를 하다가 혹여 한 명이라도 성병에 감염되면 삽시간에 병이 퍼지기 마련이다. 성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감염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도 흔하다. 청소년이라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니 병원에 갈 수도 없다. 그나마 요즘에는 성병 홍보가 널리 이뤄져 콘돔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 게 다행이다.

2003년, 육우당이라는 청소년이 이런 현실에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청소년처럼 집을 나온 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런데 그즈음 청소년보호법 유해 항목에서 동성애 조항이 삭제되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기독교 측이 동성애자를 격렬히 비난했다. 기독교인인 그에게 같은 교인의 비난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육군은 결국 죽음을 택했다. 그러나 한기총은 육우당의 죽음과 자신들은 상관이 없다며 끝내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소수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잔인함과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사건은 성 소수자뿐 아니라 많은 인권운동가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육군의 죽음 이후에도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레즈비언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청소년 성 소수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가정과 학교에서 ‘제거’당한 채 길거리로 내몰린다. 앞서 말했듯 집 나온 아이들의 건강이 가장 걱정이다.

우리 사회도 인권단체 등을 통한 청소년 성 소수자 무료 치료 시스템을 갖출 때가 되었다. 물론 익명이 철저히 보장돼야 할 것이다. 이성애 청소년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자살 충동을 느끼는 성 소수자 청소년을 위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상담도 필요하다. 학교도 성 소수자 청소년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일이다. 종호와 같은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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