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지난 9월 중순 제주에 상륙한 태풍 ‘나리’는 13명의 소중한 목숨과 엄청난 재산을 앗아갔다. 태풍 역시 기상 이변이 심해지면 더 자주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
몇 년 전, 양문호 해양수산연구사(제주수산연구소)는 제주 해녀들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는다. 감태(김)와 그 속에서 사는 전복과 오분작을 내쫓는 ‘말미잘을 없애달라!’는 요청이었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고 양 연구사는 다이버들과 해저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며 흰동가리류와 공생하는 말미잘(Entacmaea sp.)들이 해저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기는 강릉에 있는 동해안수산연구소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열대성 어종인 그물무늬문어와 보라문어, 초대형 노랑가오리와 갯장어가 동해 어부들의 그물에 수시로 걸려 올라왔던 것이다. 최근에는 독도 해역에서 제주도의 특산물로 알려진 자리돔이 구름처럼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100년 동안 동해의 해수 온도가 2℃나 올랐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연평균 0.06℃나 상승했는데, 그 영향으로 보인다”라고 윤상철 연구사(어업자원팀)는 말했다.

난류성 오징어는 급증, 한류성 명태는 급감

바다 온도가 오르자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와 고등어 등의 어획량도 급증했다. 오징어는 지난해에만 19만t이 잡혔는데, 이는 1980년대 연평균에 비해 4배 이상 증가한 어획량이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잡이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1980년대에 연평균 13만t씩 잡히던 생선이 지난해에는 60t밖에 낚이지 않았다. 동해안 어부들 사이에서 “이제 명태 주낚은 박물관에나 보내자”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초대형 가오리(왼쪽)와 보라문어(위)가 동해에 나타난 이유는 하나. 바닷물의 온도가 올랐기 때문이다.
정희동 박사(국립수산과학원 해양연구팀)는 극동 해역에서 다량 출몰하는 어종이 반복 교체되고 있다고 말한다. 1920년대부터 청어·정어리·전갱이·꽁치·멸치 및 오징어·고등어가 번갈아 어획량 1위를 차지하더니, 1960년대 말 들어서는 다시 청어가 많이 잡혔다. 또 1980년대에는 정어리 떼가 가장 많이 그물에 걸렸다. 정 박사는 “지난 100년 동안 극동 해역에서 나타난 변동 형태는, 어류들이 공통으로 기후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라고 분석한다.

남해에서 생산되는 김도 생산량이 크게 줄고 있다. 완도군의 경우 과거에 비해 50% 이상 생산이 감소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전복 양식까지 타격을 입을지 모른다. 그만한 사정이 있다. 전복은 주로 한해성(寒海性) 다시마와 미역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바다 온도가 올라 미역과 다시마의 생산량이 감소하면 먹이사슬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006년 10월 이후에 일시적으로 전복 출하량이 감소한 원인도 미역과 다시마의 작황 부진 탓이었다.

남해의 그 많던 해삼은 어디로 갔을까

내년 여름에는 더 낯선 아열대 어종이 동해를 방문할지 모른다.
바다 밑의 ‘얌전이’ 해삼과 가리비도 온난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삼은 남해안 외해에 무리지어 서식했다. 그러나 지금은 놀랄 만큼 수가 줄었다. 그 많던 해삼은 어디로 갔을까. 연구자들은 연안 해역의 환경 오염과 남획, 지속적인 수온 상승에 의해 서식지의 환경이 변화된 것으로 본다.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 등이 제대로 자라지 않자 해삼이 ‘어족 대이동’을 했다는 말이다. 가리비도 남방 한계 서식지였던 경북 영일만에서 벗어나 동해 중부 이북으로 계속 북상 중이다.

어부들을 괴롭히는 해파리의 ‘공습’도 지구 온난화 탓일 수 있다.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서식지가 늘어나고, 천적이 사라지면서 개체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바다에는 대형 노무라입깃해파리와 보름달물해파리 등 40여 종이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망에 가끔 걸려 올라오는 폭 2m, 무게 300kg짜리 열대어 초대형 노랑가오리도 비슷한 이유로 동해까지 올라온다. 

모천 회귀 어종인 연어는 열대어와 달리 지구 온난화가 두렵기만 하다. 지난해 남대천에서 포획한 연어는 모두 3만6000마리, 1990년대 말 포획량의 7분의 1 정도였다. 왜 이런 암울한 일이 벌어졌을까. 지구 온난화 여파로 봄철 동해안의 하천과 연안 수온이 1℃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방류한 치어들이 따뜻해진 물에 적응을 못하고 도태된 것이다.

도대체 바다 온도가 얼마나 올랐기에 이상 현상이 거듭되는 것일까. 강석구 박사(한국해양연구소 환경에너지연구사업단장)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05년까지 우리나라 바다의 평균 해수면 온도는 0.90℃ 상승했다. 해역별로는 서해가 0.98℃, 남해가 0.91℃, 동해 0.82℃ 상승했다. 해수면도 높아졌다. “우리나라 동해의 최근 15년 해수면 평균 상승률은 5.4±0.3㎜/yr로 지구 평균 상승률 3.1±0.4㎜/yr보다 2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동해 남부쪽 해수면 상승이 심해 무려 6.6±0.4㎜/yr나 높아졌다”라고 강 박사는 말했다. 이대로 가면 100년 뒤에는 해수면이 66cm 높아진다는 뜻이다.

조광우 박사(한국환경정책연구원)는 해수면이 1m가량 높아지면 육지가 최대 2643㎢ 바닷물에 잠기리라 예측한다. 2643㎢는 한반도 면적의 1.2%, 여의도 면적의 300배가 넘는다. 피해를 보는 사람도 꽤 많아 남북한 인구의 2.6%에 해당하는 125만5000명이 삶의 터전을 잃을 수도 있다.

지구 온난화는 바다에서 더 많은 태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지난 9월 제주도를 강타한 ‘나리’ 같은 태풍이 곱절로 늘 수도 있다.

한현섭 박사(국립수산연구소 해양연구소)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양 피해를 줄이려면 “아열대 어종의 양식 기술과, 고온에도 잘 견디는 어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패류나 해조류의 피해 대책도 비슷하다. 따뜻한 바다에서 잘 견디는 종을 개발하고, 인공 양식 등으로 생산량을 늘려나가야 한다.

숲에서는 소나무 급격히 감소

숲에서도 심상찮은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산림식생대까지 흔들린다. 우리나라 산림식생대는 크게 난대림 지역(제주도 저지대와 남해안 일대), 온대림 지역(육지의 대부분), 아한대림 지역(높은 산지)으로 나뉜다. 현재 각 지역은 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가면서 조화롭던 균형에 금이 가고 있다. “난대림 지역은 늘어나고, 온대림 지역과 아한대림 지역이 축소되고 있다”라고 오랫동안 숲의 변화를 관찰해온 임종환 박사(국립산림과학원·산림생태과)는 말한다. 기온이 계속해서 상승하면 제주도와 남해 일부 지역에는 아예 아열대림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사IN 한향란동백나무가 북상 중인 덕에 어쩌면 30, 40년 뒤에는 동백꽃을 보러 거문도(위)까지 안 가도 될지 모른다.
‘선발대’는 난대림에 속하는 동백나무다. 동백은 느린 속도지만 북으로 계속 이동 중이다. 연평균 기온이 2℃ 정도 오르면 이동 속도는 우마차에서 택시 수준으로 빨라질 것이다. 동백나무 분포 지역도 2배 이상 늘어난다. 빨간 동백꽃을 남산이나 한강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동백나무의 이웃이라고 할 수 있는 대나무와 감나무도 동백나무의 꽁무니를 바쁘게 쫓고 있다.

반면 온대림 지역에 서식하는 소나무들은 ‘적과의 동침’이 싫다. 설 자리가 점점 비좁아지는 탓이다. 2005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소나무 분포 지역을 조사한 결과, 1985년에 비해 무려 41%(104만ha)나 감소해 있었다. 2005년 현재 분포 지역은 148만ha. 줄어든 104만ha는 남산의 3068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북부 온대림에 속하는 잣나무·신갈나무·굴참나무도 처지가 비슷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대형 산불과 집중호우, 열대성 수목 병해충의 최대 피해자도 소나무다. 정영진 팀장(국립산림과학원·재선충팀)에 따르면, 소나무를 고사시키는 재선충의 매개체 솔수염하늘소는 남방계 곤충이다. 그 때문에 주로 따뜻한 남쪽에서만 서식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한반도가 따뜻해지면서 중부로 북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라고 정 팀장은 말한다.

연평균 기온이 2℃ 상승하면 고산식물 꽃쥐손이·누른종덩굴·자주종덩굴은 아예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그 자리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차지할 테고, 조금 더 따뜻해지면 졸참나무나 서어나무 등이 다시 그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숲에서는 자리바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꽃과 잎이 피고 지는 시기도 빨라진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10년(1996~2005)간 강원도 계방산과 경기도 광릉, 남해 금산 지역의 산괴불나무와 야광나무 등 32종의 개엽 시기를 관찰한 결과, 과거보다 최고 36일에서 최하 2일 정도 잎이 빨리 움텄다.

숲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곤충들의 생태에도 변화가 보인다.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는 시베리아 원산의 북방계 곤충. 현재 춘천과 오대산, 경기도 광릉 일대에 소수가 날아다닌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가면 장수하늘소는 한반도에서 ‘멸종 곤충’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농업에 방해가 되는 병해충은 더 자주 출몰하고 있고, 기온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농민들을 괴롭힐 전망이다.

한라봉, 이미 남해안 상륙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다. 그러나 남해 지역에서는 그 말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제주의 귤이 해수를 건너 북쪽으로 와서 금귤이 됐다.’ 사연은 간단하다. 제주에서만 재배되던 한라봉이 전남 고흥과 경남 거제의 농가에 목돈을 벌어다 주고 있는 것이다. 감귤도 남해안 ‘상륙 작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북상하는 과일이나 채소가 어디 한라봉뿐인가. 참다래(키위)도 이미 경남 고성·사천·통영 등지에 뿌리를 내렸고, 겨울 감자는 남부 지역이 비좁다는 듯 전북 김제까지 진출했다. 기상학자들의 예상대로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이 2~3℃ 상승하면 더 놀라운 변화가 예상된다. 어쩌면 사과 재배지로 유명한 대구는 참다래와 한라봉의 재배지가 될지도 모른다.

사과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서형호 박사(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과수과)는 벌써 몇 년째 사과 재배지의 변동 상황을 뒤쫓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과는 연평균 기온이 13.5℃ 이하인 곳에서 알맞게 익는다. 14℃가 넘어서면 부적지로 판정한다. 그런데 최근 부적지가 점점 늘고 있다. “1981년부터 2003년까지의 재배 면적과 연평균 기온을 분석한 결과, 기온이 상승할수록 재배 면적이 줄었다”라고 서 박사는 말한다.

그가 내놓은 전망은 더욱 어둡다. 현재보다 연평균 기온이 2℃ 올라가면 현재의 사과 주산지들은 거의 다 사과나무를 뽑아내야 한다. 비교적 북쪽에 있는 수원조차 불안하다. 현재 수원의 연평균 기온은 12.8℃로, 2℃가 오르면 14.8℃가 된다. 즉 사과 재배의 부적합 지역으로 전락하고 만다. 기온이 3℃ 오르면 상황은 더 심각해 전라북도·경상북도 고지대와 강원도 산간 지역 외에서는 사과 따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다. 반면 포도·배·복숭아·단감은 지구 온난화가 반갑다. 따뜻한 날씨 덕에 ‘거주지’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병충해도 신이 난 듯 극성스럽다. 솔나방이 대표적이다. 30~40년 전에 이 곤충은 1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최소한 1년에 두 번 정도 출현해 농부들을 곱절 괴롭힌다. 쌀 생산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벼멸구도 과거보다 발생 횟수가 부쩍 늘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대벌레류의 출몰 횟수도 점점 잦아지고 있다.

기온이 평년(왼쪽)보다 2℃ 오르면(오른쪽) 사과 재배지가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감귤나무가 들어설 수도 있다.
기온이 더 오르면 병원균도 기승을 부릴 위험이 크다. 지금까지 콜레라나 패혈증 비브리오, 장염 비브리오 등은 주로 여름에 나타났다. 겨울에 월동이 어려워 살아남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기와 바다의 기온이 올라가면 달라진다. 겨울에도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3~5월에 문제가 되는 마비성 패독류도 연중 산발적으로 출몰해,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긴장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생태 변화는 어디가 끝인지 모른다. 그만큼 다양하고 심각하다. 과학자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고민만 깊어가지 않을까.
기자명 오윤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nom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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