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파가 있다면 ‘열공파’도 있다. 김현미 민주당 의원과의 통화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이뤄졌다. 김 의원은 9월부터 16주 과정의 독일유럽연구센터(독일 정부가 지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학술교류 기관으로 중앙대가 지난 4월 유치했다) 최고위과정을 수강 중이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일정이 아무리 바빠도 이 시간만은 되도록 비워두려 한다.
왜 한국 정치는 독일에 주목할까. 손학규 고문은 메르켈 총리가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에 일단 주목한다. “사민당은 물론이고 녹색당의 이슈와 공약까지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다. 권위적이지 않으며, 미래로 가는 리더십을 보여준다”라는 것이다. 김현미 의원은 메르켈의 당선을 우파의 승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새 비전’을 실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선이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독일 총선을 자세히 뜯어보면 더 많은 시장의 자유를 강조했던 자유민주당은 의회에 입성하지도 못했다. 이변이었다.
독일은 이른바 ‘유럽식 모델’ 중에서 한국이 시도해볼 수 있는 모형이기도 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맨얼굴을 공포스럽게 드러낸 바 있다. 당시 정치권 일부에서 반성적으로 돌아본 곳이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이었다. 그러나 스웨덴·핀란드 같은 모형을 한국에 ‘수입’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 역시 치열했다.
한국 정치가 독일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인구(독일 인구는 8200만명,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를 가정하면 비슷한 인구 규모다) 면에서도 그렇고, 특별한 자원 없이 ‘사람’으로 승부를 거는 나라라는 점도 비슷하다. 분단 경험이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국가 개입을 용인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가 영미식 모델과 북유럽식 모델의 타협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크고 작은 의원 공부모임 수십 개가 굴러가는 국회에서 유독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이 바로 독일을 공부하는 모임이기도 하다.
먼저 닻을 올린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지난 4월11일 발족한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대표 남경필 의원)’은 최근 ‘시즌2’를 선언했다. 4~7월에 매주 전문가를 초청해 독일의 권력 구조, 통일 과정 등에 대해 공부했다. 9~12월에는 이를 한국에 적용해 해법을 찾아볼 계획이다. 결과물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입법 및 정책제안을 할 작정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야당 국회의원 공부모임이라는 기록을 남긴 ‘혁신과 정의의 나라(대표 원혜영 의원)’는 5월29일부터 매주 1회씩 총 10차례 독일과 관련된 강의와 토론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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