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보다 사람이 먼저(Putting people before profit).’ 협동조합센터가 있는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알림판이다. 이는 필자가 이번 호 취재를 위해 방문한 선덜랜드 홈케어 협회(Sunderland Home Care Associates)의 사훈이기도 하다. 영국 동북부 선덜랜드 시에 있는 이 기업은 2006년 영국에서 가장 참신하고 진취적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적 기업에 수여하는 엔터프라이징 솔루션 어워즈를 받은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돌봄 서비스를 비롯한 복지사업은 국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대처 정부 등장 이후로는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고 더불어 국가의 구실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전까지 국가가 담당했던 많은 부분이 민영화되거나 민간에 위탁된 것이다. 돌봄 영역 또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투자 대비 최대 이윤을 얻으려는 시장의 속성상 서비스 질이 현격히 저하되었고, 복지 서비스에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깊어졌다.

ⓒ이태희선덜랜드 홈케어 협회의 창업자 마거릿 엘리엇 씨(맨 앞 왼쪽)가 상장을 들고 있다.

이에 1997년 등장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는 국가도 시장도 아닌, 시민사회의 구실을 강조한 ‘제3의 길’을 제시했다. 그 뒤 영국 정부의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을 포함한 제3섹터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자생력을 키우지 못하고 정부 재정지원에만 과도하게 의지하는 곳도 많았다. 그럼에도 이 중 소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둠으로써 시장경쟁력을 확보하는 한편,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것이 선덜랜드 홈케어 협회다.

“1980~1990년대 선덜랜드 경제는 정말 최악이었죠. 영화 〈빌리 엘리어트〉 보셨나요? 배경이 잉글랜드 북동부 지방이에요”라고 이곳 창업자이자 대표인 마거릿 엘리엇 씨가 말했다. 곳곳에서 파업이 벌어지고, 이 지역 주요 산업이던 탄광과 조선소는 문을 닫고 실업자가 넘쳐나 사람들이 고통받던 그 시절. 선덜랜드 홈케어 협회는 고령자·장애인 등에게 재택 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했다. 1994년 20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20년이 지난 현재 450명을 고용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연매출은 10억원에 이른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왔을까? “우리의 성공은 직원들에서 비롯됐다”라고 엘리엇 씨는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이 회사는 전 직원이 주주다. 많든 적든 주식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회사 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성과물도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책임감과 보람이 더 커지는” 듯하다.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 또한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엘리엇 씨는 말했다. 실제 임금은 별로 높지 않지만 이 회사의 이직률은 3.5%로 영국 평균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요즘 이 회사가 역점을 두는 것은 선덜랜드 시와 협력해 학습 장애인에게 지역 내 일자리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미래(Independent Futures)’ 프로그램이다. “지금껏 학습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지역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문제아 취급을 받아왔다”라고 프로그램 담당자인 캐럴 버넬 씨는 말했다. 이렇게 격리될수록 학습 장애인들의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사회 적응이 더 어려워지는 만큼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직률 3.5%로 매우 낮은 수준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습 장애인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시청에서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장을 대신 봐주거나 세차를 대신 해준다. 휴가 간 사람들의 애완동물을 대신 돌봐주기도 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 이들은 비록 많지 않은 액수나마 돈을 벌고,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조금 늦거나 서툴지만 이들이 하는 일에 지역 주민들도 적극 호응해준다.

이 과정에서 학습 장애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는 것을 보며 큰 보람을 느낀다고 버넬 씨는 말했다. 과거 NHS(영국 국민건강보험) 산하기관에서 일할 때는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다. 이곳에서 20여 년간 학습 장애인을 별도 관리하는 일을 맡아왔던 그녀가 선덜랜드 홈케어 협회로 이직한 것은 5년 전. 비록 연봉이 줄고 업무 강도는 더 세졌지만 ‘이윤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곳의 사훈에 깊이 공감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버넬 씨는 말했다.

선덜랜드 홈케어 협회의 성공 모델은 오늘날 영국 내 6개 대도시로 퍼져나가 발전하고 있다. 이는 낮은 시장경쟁력에 고전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국의 많은 사회적 기업에도 귀감이 될 법하다.

기자명 이태희 (영국 셰필드 대학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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