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시리아에서 상상치 못한 비극이 벌어졌다. 2년6개월가량 지속되어온 시리아 내전이 민간인에게 화학무기가 사용되는 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8월21일 새벽,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의 민간인 밀집지역 구타에 화학무기가 발포되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속속 올라오는 사진들에는 잠자듯 조용히 누운 어린이 수십 구의 시신과 골목 입구에 쓰러져 있는 청년들, 구토하며 쓰러지는 시민들의 경악할 만한 모습이 담겨 있다. 현재 화학무기로 살해당한 사람은 1300여 명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지 활동가들은 1700명 이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마스쿠스에서 활동하는 시민운동가 샤히크 씨는 “혼자 집에 있다가 죽은 사람과 지하실로 대피한 사람들까지 모두 찾아내면 공식 발표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마을 인근 아르빈이라는 도시에서 작은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아무르 씨는 시신들의 상태로 볼 때 ‘화학무기에 당한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현재 시신을 다 수용할 수 없을 지경이다. 시신들은 다 잠자듯 조용한 모습이며, 총탄 자국도 없다. 사망하지 않고 우리 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토하거나 사지를 떤다. 화학무기에 노출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시리아 임시정부 관계자도 “현재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이 확실하다. 다마스쿠스에서 계속 새로운 소식이 날아오고 우리는 엄청난 비극 앞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Local Committee of Arbeen 제공〈/font〉〈/div〉다마스쿠스 인근 아르빈에서 주민들이 화학무기 공격으로 숨진 어린이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미국과 터키, 정부군 맹비난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12월, 시리아 북부에 있는 제2 도시 알레포에서 최초 증언이 나왔다. 그때부터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는가는 국제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최소한 1300여 명에 달하는 대량학살은 다들 예상치 못한 분위기다. 다마스쿠스 인근에서 전투 중인 반정부 ‘자유시리아군(FSA)’ 장교인 아비즈 씨는 “자유시리아군은 올해 들어 방독면을 구입해 쓰고 군사작전을 해왔다.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쓴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며, 우리 병사 중 몇 명이 화학무기로 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다마스쿠스 인근 마을을 취재하던 중 화학무기가 사용되는 장면을 목격한 기자도 있다. 프랑스 〈르몽드〉의 로랑 반데르 스톡트 사진기자는 4월13일 다마스쿠스 초입의 조바르 마을에서, 콜라 캔 같은 것이 땅에 떨어진 뒤 반군 대원들이 심한 기침과 함께 동공 축소로 시력을 잃는 상황을 직접 봤다. 당시 반군 대원들은 극도의 호흡곤란과 함께 구토하며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조바르 지역에서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르몽드〉는 보도했다.

1997년 체결된 국제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는 전 세계 196개국 중 188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시리아는 중동 최대의 화학무기 보유국이지만 이 협약의 회원국은 아니다. 그래서 시리아 화학무기의 양과 종류도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 시리아 화학무기 실태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는 인도의 ‘국방 및 보안 문서 보고서(IDSA)’밖에 없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는 현재 1000t가량의 화학무기를 전국 50개 지역에 분산 보관 중이다. 군 전문가들은 시리아가 현재 세린·하마·호스·라타키아·팔미라 등 5곳에 주요 화학무기 생산시설을 두고 매년 수백t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8월21일 시리아 구타에서 사용된 화학무기는 사린이다. 아주 극소량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신경가스다. 사린 가스는 호흡과 피부로 흡수되며 중앙신경계를 공격하는데, 치사율이 청산가리의 26배다. 이 가스에 노출되면 구토, 두통, 시력 상실, 근육경련, 환각, 의식 상실, 호흡 정지 등을 거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사망하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설사 살아남아도 폐·눈·신경계에 엄청난 손상을 입게 된다. 사린 가스로 인한 인류 최악의 참사는 1988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시절 ‘케미컬 알리’로 불리는 장군이 쿠르드인 거주 마을에 사린 가스를 발포해 5000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 구타 사건의 주범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반군 진영과 임시정부는 시리아 현 정부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반군 진영의 모략극이라며 설전을 벌인다. 시리아 정부는 사건이 터진 8월21일 오전 국영방송을 통해 화학무기 사용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시리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반군 측의 주장은 전부 거짓말이다. 정부가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시리아 정부가 내전 기간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의례적으로 사용해온 수사이기 때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8월20일 시리아 난민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고 있다. 화학무기 때문에 난민도 늘어날 전망이다.

큰 분수령 맞은 시리아 내전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부대변인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의혹이 나오자마자 성명을 내고 “시리아 정부군이 시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보도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며 어떤 화학무기 사용도 강력하게 비난한다”라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군이 명백하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군 관계자도 “시리아 정부군은 지난해 말부터 트럭을 이용해 화학무기를 전국으로 실어 날랐다. 군 연구시설인 시리아 과학연구센터(SSRC)가 주도적으로 화학무기 사용법을 군인들에게 가르쳐왔다”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아예 공식적으로 시리아 정부군의 짓이라고 발표했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외무장관은 민영TV인 카날24에 출연해 “누구도 시리아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이번 시리아 화학무기 사건은 인근 국가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같은 사건을 겪은 이라크인들은 치를 떨었다. 이라크 방송들은 온종일 시리아 화학무기 사건을 거론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는 레바논에도 비상이 걸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사건이 일어난 8월21일 오후 긴급회의를 소집해 이번 사태를 논의하고 사태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의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8월22일 정례 브리핑에서 “8월21일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지역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화학무기 사건은 시리아 내전 사태에 큰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직접 개입을 미뤄온 서방세계가 ‘이제는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감하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은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원을 꺼려왔다. 알아사드 정부가 독재정권인 것은 맞지만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가 자칫 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의 세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이번처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반인륜적 학살 사건이 터지면 미국 역시 결단을 압박받을 수밖에 없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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