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닉 드레이크 〈Five Leaves Left〉 〈Bryter Layter〉 〈Pink Moon〉

계절은 세상을 바꾼다. 음악도 바꾼다. 가을은 감상적인 계절이 된다. 채워도 채워도 때가 되면 고파지는 센티멘털을, 수많은 뮤지션들이 노래하고 표현해왔다. 닉 드레이크는 그 원조 가운데 하나다. 닉 드레이크는 1948년에 태어나 1974년에 사망한, 이른바 ‘요절 뮤지션’이다. 사망 사유는 항우울제  과다 복용. 그가 남긴 석 장의 앨범은 발매 당시에는 지극히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평단으로부터도 무시받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재평가받더니, 199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시적인 가사, 어쿠스틱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적절히 조합한 감상적 사운드, 나긋나긋  읊조리는 목소리. ‘Way To Blue’ ‘Poor Boy’ ‘Pink Moon’ 등 대표곡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격변의 시대에 걸맞지 않은 사색적이고 음울한 분위기를 노래했다. 닉 드레이크가 없었으면 지금의 데미언 라이스나 제임스 블런트 같은 이들도 없었을지 모른다. 수입 음반이 아니고서는 구할 길 없었던 그의 앨범 석 장이 뒤늦게 정식으로 발매됐다. 미발표곡 모음집인 〈Family Tree〉에 이은 기획이다. 불우했던 한 청년이 스물한 살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 남긴, 심연으로부터의 애수가 2007년의 가을비를 타고 마음을 적신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절로 담배가 생각나는 목소리가 폐부에 꽂힌다. 

 김작가(대중음악 평론가)

전시

김원숙전예화랑10월5~25일02-542-5543

‘그림=돈’이라는 공식이 낯설지 않은 요즘이다. 씁쓸하고 서글프다. 과연 그림이란 무엇일까? 우리말 ‘그림’의 어원은 ‘그리움’과 ‘글’에서 같이 나왔다고 한다. 그리움이 글을 만나면 시(詩)가 되고, 그리움이 색(色)을 만나 그림으로 태어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재미 화가 김원숙은 30년 넘게 이런 진짜 그림만을 그려온 작가다. 그의 그림 속에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 그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그림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그가 ‘사랑’을 주제로 한 신작 60여 점을 들고 다시 고국을 찾았다. 특유의 붓질과 색채에서 풍기는 회화적 깊이는 여전하다. 그의 그림은 평자들로부터 한 편의 서정시와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데, 이번 출품작들은 문학적 서정성과 환상적 분위기가 훨씬 더하다. 시인 문정희는 “빼어난 상상력과 호기심의 광맥을 가진 김원숙의 화폭에는 아름다운 속삭임이 가득하다”라고 노래한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예화랑이 있는 신사동 가로수 길은 최근 흡사 강북의 삼청동처럼 자신만의 이미지를 갖춘 새로운 문화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가을이 오는 길목, 강남으로의 외출을 권한다.     

 이준희 (월간 미술 기자)

연극

홍동지 놀이

10월11~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붉은 알몸에 거대한 성기를 드러낸 채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홍동지는 꼭두각시놀음의 단골 주인공 중 한 명이다. 국내에서 과천 마당극 축제 등에서 인기를 모았던 레퍼토리이면서 외국에서도 장벽 없이 ‘통’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과 “똥 노, 똥 노” 같은 원색적인 대사를 통해 허위와 가식을 몇 겹씩 두르고 있는 인간들을 조롱하는 인물. 일단 꼭두각시놀음 하면 어린이 인형극부터 떠올리지만, 실은 열린 구조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훌륭한 연극 양식이다. 양식과 기본 정신에서 두루 풍자와 해학이 넘쳐난다.  〈홍동지 놀이〉에서는 실제 배우들이 인형을 움직이거나 실연을 할 때에도 인형의 몸짓을 흉내 내는 양식화된 방식을 택하는데, 이것이 연기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켜 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홍동지 놀이〉는 극단 우투리 창단 이후 우리 전통 연희의 양식화를 추구하고 있는 작가 겸 연출가 김광림이 오랜 준비 끝에 올리는 야심작으로, 특히 꼭두각시놀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주연 (객석 기자)

뮤지컬

조지 엠 코핸 투나잇9월7일 ~ 11월30일동양아트홀02-515-6510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은 겸손 이외에는 엔터테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재능을 갖춘 미국 뮤지컬의 아버지 조지 엠 코핸의 일생을 담은 모노 뮤지컬이다. 작곡가이자 작사가이며, 프로듀서이자 댄서였던 그는 현재 미국 뮤지컬의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코핸은 철저히 미국적인 가벼움과 유쾌한 유머로 대륙에서 건너온 오페레타 형식의 쇼에 연타를 날리면서 미국적 쇼를 만들어갔다. 작품은 파란만장한 그의 일생을 재미있는 입담과 현란한 탭댄스를 곁들여 풀어낸다. 조지 코핸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품 속 음악은 다소 진부하고 모노 뮤지컬 형식으로 인해 가끔 긴장을 잃지만, 무대에서 100분간 펼쳐지는 배우의 열정은 조지 엠 코엔이라는 인물의 에너지를 전해주기에 손색이 없어 흡사 위인전을 한 권 읽어낸 것 같은 감동을 준다. 탭댄스와 노래를 소화하면서 일반 연기를 이어가는 고수들의 솜씨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희 탭의 일인자인 임춘길과, 중저음이 그윽한 민영기, 어린 왕자 같은 미소를 띤 고영빈이 트리플 캐스팅되어 서로 다른 색깔의 작품을 만들어간다. 

박병성 (더 뮤지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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