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음식을 아이들 앞에 차려낼 수 있어야 부모다. 아이들은 본디 음식 맛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음식을 밥상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 음식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어른인 우리가 어렸을 때도 먹었던 음식인가’다.

아이들이 산과 강과 바다와 들로 나가 자연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밥상에서 산과 강과 바다와 들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만나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자연과 멀어졌을 뿐 아니라 자연이 주는 밥상과도 헤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아이들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식품첨가물과 설탕 그리고 카페인으로 얼룩진 음식들이 아이들의 과잉 행동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아이들 교육은 밥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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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랑 먹느냐다. 유기농이냐 아니냐보다 더 중요하다. 밥 먹는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부모라는 말이다. 밥 먹을 때 자리에 없던 부모와 아이들은 커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열 살 앞뒤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의 부모가 해야 할 긴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아이들이 평생 쓸 몸을 가꾸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걸 깨닫는 일이다.

아이들은 이 10년의 시기에 몸과 마음을 만든다. 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이 크려면 잘 자고 잘 놀고 잘 먹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그런데 잘 먹는 게 무엇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 아이들은 너무 많이 먹거나 아니면 먹지 않기 때문이다. 잘 자고 잘 놀고는 맞지만 잘 먹는다는 것은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바르게’ 먹는 것으로 말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정직하고 건강하게 길러진 음식을 바르게 먹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은 지금 몸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고, 음식을 먹는 습관 또한 이 시기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스스로 바르게 먹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먹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정갈한 음식을 만나기 어렵기만 하다. 건강은 앞선 부모 세대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음식이 사람을 만들고 부모가 먹는 것이 아이들 먹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부모가 햄·소시지·달걀·고기 위주의 식습관을 가졌고 이에 대해 성찰이 없다면 아이들은 그렇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음식 광고들에 어려서부터 길드는 것은 물론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을 밥상머리에서 아이들 버릇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교육이라는 것이 정갈한 상차림에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밥상 앞에서 자연을 만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이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들이 자연을 옮겨온 정갈한 밥상을 받아들고 달게 음식을 먹을까. 하루를 마음껏 뛰논 아이다.

열 살 전 아이들한테 꼭 만나게 해줘야 할 것이 있다. 첫 번째가 배고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배고픔을 만날 수 없는 교육이라는 것은 가짜다. 그렇다면 어떤 아이가 배고픔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다. 마음껏 뛰논 아이가 배가 꺼지고 배고픔이 무엇인 줄 안다. 두 번째, 피곤함을 알아야 한다. 하루를 뛰놀며 보낸 아이는 늦은 저녁 피곤함과 만난다. 피곤해서 잠에 떨어지는 아이가 아이다. 배고픔과 피곤함이 무엇인지 당신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아이들이 배고픔과 피곤함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교육과 부모는 아이들을 영영 모른다.

기자명 편해문 (어린이놀이 운동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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