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의회에는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이 비준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것들은 연내 비준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협정을 의회에 상정해 비준을 받고 싶어하지만, 한국이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야 하루라도 빨리 열쇠를 쥔 민주당 의회가 꿈쩍도 안 하는 것이다. 현재 의회는 민심의 향배에 아주 민감한 하원은 물론 좀더 신중하다는 상원조차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특히 하원의 경우 낸시 펠로시 의장을 비롯해 국제무역을 관할하는 세입세출위원회의 찰스 랭글 위원장, 샌더 레빈 무역소위원회 위원장이 반대하고 있다. 상원에서는 몬태나 주 출신으로 상원 재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맥스 바쿠스 의원이 한국 쇠고기 시장을 100% 열겠다며 총대를 멨다. 여기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마저 민주당 기반이자 자유무역 반대론자인 미국 노농총연맹 산별회(AFL-CIO)의 눈치를 보느라 협정에 반기를 든 상태다.
다만 자동차 분야 못지않게 커다란 걸림돌로 떠올랐던 쇠고기의 경우 현재 한국 측이 연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위한 8가지 단계 중 절반을 완료한 상태라 고비는 넘긴 셈이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분석가이자 한·미 기업협회의 마이런 브릴리언트는 11월 말까지 쇠고기 문제가 매듭지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미국 자동차 업계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성패를 가를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한국의 미제차 수입이 고작 5000대 미만인 데 반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입량은 70만 대에 달한다며, 이는 전적으로 한국의 외제차 세율과 규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협정에 한국 내 미제 차 시장점유율을 보장하며, 한국 차의 미국 내 수입관세 율 인하를 미제 차의 한국 내 판매량 증가와 연동하는 항목을 포함해야 한다는 따위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의회 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최대 반대파인 하원 무역소위원회 샌더 레빈 위원장은 “미국의 협상가들이 ‘경제적 철의 장막’으로 무장한 한국 시장, 특히 자동차 시장을 침투하는 데 실패했다”라며 초강경 입장이다.
사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최근 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한국보다는 미국에 더 큰 경제적 이득을 안긴다. 매년 미국의 대한국 수출은 거의 전 분야에 걸쳐 97억~109억 달러 늘어나지만 한국의 대미 수출은 64억~69억 달러 증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협정의 직·간접 영향을 받게 될 미국 내 산업이나 해당 주들은 대체로 환영하며 의회의 비준을 기대하는 눈치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업계를 대변하는 보수 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난 9월24일자에서 한·미 무역자유협정에 시큰둥한 의회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은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 신문은 국제무역위원회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 해를 끼칠 것으로 생각하는 의원들은 무지한 외고집장이다”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대표 보수 두뇌 집단인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도 “이 협정은 군사 동맹을 넘어 한·미 관계의 폭을 넓힘으로써 이 지역 내 미국의 영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기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라며 의회 비준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이처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이들의 지역구가 자동차 혹은 쇠고기 수출 문제와 직접적인 함수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이들은 지역구 주민의 여론을 도외시할 경우 낙선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협정을 직접 관할하게 될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이라 이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협정의 의회 심의조차 어렵게 돼 있다.
정통한 의회 소식통들에 따르면, 어차피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의회 비준은 올해 난망한 상황이고, 중간선거가 있는 내년에는 더욱 힘들다. 그럴 경우 결국 빨라야 차기 정권이 들어서는 2009년에 가서야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가 다시 다뤄질 것 같다는 게 이곳 워싱턴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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