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부모가 엄히 금하기도 했고 본래 타고나기를 지독하게 내성적이어서 어려서는 남한테 욕 한마디 제대로 못했다. 그러자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친구들은 별의별 욕을 다 해대는데 고스란히 그 욕을 다 먹고만 있자니 속이 좋을 리 없었다. 또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적당히 욕하며 겁을 줘 퇴치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어쩌다 용기를 내서 욕을 입에 담아보지만 내 귀에는 남의 목소리를 듣는 듯 영 어색하게만 들렸다. 속이 상해서 혼자 거울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악을 쓰며 욕하는 연습을 한 일도 있다. 그래도 좀처럼 욕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튀어나오지를 않아 중·고등학교 때는 일부러 욕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군대에 가서도 3년간 매일처럼 욕을 배 터지게 먹었건만 제대로 돌려주지 못했다. ‘까마귀’란 별명을 가진 고참이 있었는데 그의 말은 ‘은·는·이·가’ 빼놓고는 모두 욕이었다. 그는 졸병을 연병장에 집합시켜놓고 욕을 해대곤 했다. 그의 욕은 말 그대로 예술이어서 어떤 때는 먹는 사람이 도리어 시원했다. 나중에 고참이 된 뒤에 신참을 집합시켜놓고 흉내를 내보았으나 어설프기 짝이 없어 역효과만 났다.

대학에서 먹물까지 들어 사회에 나와서도 욕을 제대로 못하는 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시장에서, 버스에서, 택시에서, 전세를 들고 나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대화보다는 욕이 앞서야 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얼굴만 벌게져 버벅거리는 내 모습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워낙 남성 위주로 굴러가는 사회이다 보니 여성이 특히 욕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산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은 아마 다짜고짜 모르는 남자에게 쌍욕을 들었던 불쾌한 기억이 한두 번은 있으리라 생각한다. 욕쟁이 중에는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친한 여성 선배 가운데는 상대가 부당하게 욕을 하면 0.1초도 안 돼 순식간에 몇 십배로 갚아주는 경탄할 능력을 가진 이가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욕질을 키워준 것은 우리 사회라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욕이란 “강한 분노의 에너지로 쓰는 짧은 시”이다.

때로는 백마디 말보다 한마디 욕이 더 나은 법이다. 상것들이 탈춤을 추며 양반에게 상소리를 퍼붓고는 낄낄댔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삼성 특검이 99일 동안 했다는 수사 결과 발표를 듣는 내내 가슴속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욕을 잘 못하면 한이 된다.

기자명 문정우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mjw2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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