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18〉: 2005년작, 31.49×45.86cm. 캔버스 위에 유채. 최경태씨의 그림은 관람자와 평자에게 호기심과 불편함 모두를 야기시킨다.
올해 5월8일 새벽 1시쯤 보통 사람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화가의 이름이 네이버 인기 검색어 1위로 등극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 유선 방송 ‘큐채널’의 리얼 다큐 ‘천일야화’가 〈불량한 화가, 위험한 그림〉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그 반향이 온라인에 반영된 결과였다. 검색 1위의 주인공은 방송에서 단연 비중 있게 거론된 최경태였다. 어느덧 50대 초반에 들어선 최씨는 미디어로서는 뿌리치기 힘든 ‘외설적 예술’에 관한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미학적 정체성은 본의 아니게 과거사에 붙들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참담한 파국을 맞은 최씨의 일곱번째 개인전 〈여고생 전〉이 열린 2001년이 빌미가 된 과거사의 출발 지점이다. 전시 제목에서 추정되듯, 교복 판타지와 소녀애를 향한 중년 남성의 일관된 갈증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화폭에 옮긴 유화 연작이 전시장에 내걸렸다. 굵직한 남근을 천연덕스레 입에 물고 있는 여고생의 오럴 섹스 장면도 아예 클로즈업으로 재현되었으니, 윤리 지수에서는 OECD 국가 가운데 최상위권인 한국 사회에서는 도색 화보의 문법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최씨의 개인전을 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시는 일정을 전부 소화하지 못한 채 막을 내렸고, 뒤이어 수사기관의 개입과 법적 소송에 시달리다가 2003년 1월 대법원 상고 기각으로 작품 31점이 압류 소각되는 등 최악의 수난을 겪으며 음화 사건의 일단은 차츰 잊혀져 갔다. 하지만 작품이 소각된 그해 표현의 수위가 조절된 신작이 중심이 되어 8회 개인전 〈1987년부터 빨간앵두까지〉가 ‘쌈지 스페이스’에서 열리는데, 그것이 이제까지 그가 국내에서 개최한 마지막 개인전이었다. 그렇지만 최씨는 일반인의 성 윤리와 미풍양속의 기준을 한참 상회하는 섹스 판타지를 미발표 상태로 꾸준히 제작해왔다. 그 전모가 이번주에 공개된다. 사회문제로까지 부각된 전작을 압도하는 상상력과 다듬어진 세부 묘사로 파란이 예상되는 바, 전시 일정을 그때처럼 전부 소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글은 저주 내린 과거사 주문에 사로잡힌 최경태씨가 4년 만에 복귀하는 국내 개인전(인사 아트센터 10월10일부터 10월16일까지)에 대한 프리뷰다. 이번 출품작 대부분은 지난 7월5일부터 21일까지 뉴욕 첼시 소재 갤러리 ‘프로젝트 스페이스 35’에서 선보인 작품들에서 추렸다. 첫 해외 개인전에 CNN이 인터뷰 제의를 할 만큼 관심을 보였으나 ‘언더 에이지’(under age)가 문제가 되어 결국 무산되었고 비수기와 휴가철에 잡힌 전시 기간 역시 홍보와 판매에 지장을 주었다. 결국 그는 작품 한 점 못 팔고 귀국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노출 수위로 전시 철회가 거론된 적은 없었다.

정밀도 높은 최경태 에로티시즘

신작으로 귀환한 최경태 에로티시즘의 정밀도는 굉장히 깊다. 여체의 세부를 탐닉하는 드로잉은 진솔하고 탄탄해졌으며, 여자 성기에 대한 몰입은 전에 없이 투철해서 그림마다 등장하는 여성 성기와 다소 판에 박힌 포즈들이 하나같이 종교적 도상처럼 인지될 지경이다. 한국 미술사를 통틀어 이렇듯 여자 성기에 화력을 총집결한 공식적 화가로 최경태 외에 누가 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국내 화단의 완고한 비평 문화 지형도와 엄격한 국민의 도덕지수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에서 소외된 외딴 섬처럼, 그는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합류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의 적나라한 상상력은 평문으로 받아 옮길 때 기존의 고른 비평어로는 기술에 어려움을 초래한다. 필자부터가 자체 검열에 발목이 잡히고 말아서다. 관람자와 평자에게 호기심과 불편함 모두를 야기시킨다. 보고 싶고, 논하고 싶지만 마땅한 논거를 현재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찾기가 어려운 그런 작품에 그는 전념해왔다.

: 2006년작, 97×145cm. 위 이미지는 작가의 양해를 얻어 그림 일부를 모자이크 처리한 것이다.
그의 직설화법은 사법 당국으로부터는 음란물  처벌에, 평단으로부터는 남근주의라는 혹평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의 한결같이 보수화된 정서 속에서 이같은 사법적 해석과 예술 비평은 대처하기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작금의 미성년 성 윤리 지수에 사법 당국이 얼마나 무관심한지, 국내와 해외 미술을 감정하는 미술 평단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최경태를 통해 온전히 인지됨을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다.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영국관에는 트레이시 에민이 〈털북숭이 왕자지와 통통한 보지〉라는 제목의 드로잉을 내놔, 출품작 절반이 뉴욕 현대미술관에 선매되었다고 전해졌다. 작품은 제목대로 장난기 어린 드로잉으로 숱한 남녀 성기를 그린 것이다. 나는 현장에서 이 그림들을 10세 이하 미성년 자녀와 부모가 함께 낄낄대며 관람하는 걸 목격했다. 단지 노출 수위만으로 작가들 간의 품평을 하는 건 문맥을 소외시킬 소지가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세계 미술 시장의 블루칩 작가 제프 쿤스는 3개국의 명망 있는 딜러의 재정 지원 아래 1989년부터 〈메이드 인 헤븐〉 (Made In Heaven) 연작을 내놨는데, 포르노 스타였던 아내와의 성관계를 사진으로 기록한 고강도의 비주얼이었다. 당연히 포르노그래피 논쟁이 일었고, 비평과 상업성 모두에서 실패했지만 사법 처리 대상으로 지목되지는 않았으며 시중에서 작품 도판은 구매가 가능했다. 판단을 관객과 독자에게 맡긴 것이다. 2001년 최경태에게 적용된 ‘음화전시 판매, 음란문서 제조 교사 판매 반포’에 해당하는 죄목일 텐데 말이다.

이번 전시는 미성년 관람에 제한을 뒀다. 입장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성인에게 국한해 논란의 소지를 줄이려는 것인데, 사소한 노출에도 깜짝 놀라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철없는 짓은 대개 겁 많은 성인들의 몫이니 꼭 안전한 조치 같지는 않다. 이번 전시는 한 작가가 6년여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재기하는 개인사적 의미도 있지만, 세상의 변화 속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근엄주의가 6년이란 세월에 값할 만큼 유연해졌는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로, 공적 의미가 더 중하다.

작가와 관객의 기호가 충돌하는 지점까지 사법당국이 개입하는 불상사가 재연되지 않기를 바란다. 소녀애에 관한 미학적 탐닉에 일가를 이룬, 진솔한 한 중년 남성의 기행을 제발 가만히 좀 내버려둬도 될 때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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