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이야기〉 이종탁 지음 황소자리 펴냄
편지, 우표, 집배원, 우편 산업 등 우편 전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렸다. 우편에 관한 역사 교양서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그 이상이다. 현직 언론인이 썼기 때문인지 우편 산업의 현황과 미래까지 살핀다는 게 장점이다. 먼저 책 제목에 나오는 우체통 이야기. 최근 들어 동네 우체통 찾아보기가 예전에 비해 힘들다. 그 많던 우체통은 어디로 갔을까?

전자우편 사용이 늘어서인지, 철거되는 우체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매년 철거되는 우체통은 2000개가 넘는다. 2006년 기준으로 전국의 우체통은 2만7000여 개로, 우체통이 가장 많았던 1993년 5만7000여 개보다 절반 이하로 줄었다. 우체통 설치와 철거는 지역 우체국장 재량이지만, 하루 평균 세 통 미만인 날이 석 달 이어질 때는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들어 철거한다. 단, 이와 같은 철거 기준에 든 우체통이라도, 주민이 철거를 반대하는 시골 마을에서는 계속 두는 일이 많다.

역시 전자우편이 개인 간 소식을 전달하는 주요 수단이 되다 보니, 우표 값을 아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이 책을 보고 새삼 그 값을 알게 되었다. 무게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 편지 한 통이면 우표 값은 250원이다. 이 가격의 원가보상률은 84.7%다. 편지 한 통을 취급할 때마다 우정사업 당국은 37원 정도 손해를 보는 셈. 참고로 일본은 편지 한 통의 우표 값이 625원, 프랑스는 661원, 독일은 673원이다. 우리나라 우편요금이 OECD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가장 싸다.

전자상거래 발달할수록 우편 산업도 발달

집배원이 음식을 배달하는 나라도 있다. 바로 미국이다. 물론 고객 주문을 받아 피자 같은 걸 배달하는 건 아니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음식 나누기 행사, 즉 푸드뱅크 행사에서 집배원이 맹활약한다. 5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미국 전역에서 음식 나누기 행사가 벌어진다. 이때 각 가정은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고 상하지 않은 참치 통조림이나 땅콩 버터, 칠리소스 같은 음식을 우체통에 넣어둔다. 그러면 집배원이 수거해서 푸드뱅크에 보낸다.

전자우편에 밀려 우편 산업이 쇠락하리라 예상하는 사람이 많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2007년 7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새 책이 출간됐을 때, 출판사는 각국에서 인터넷 주문을 받아 책을 우편으로 부치면서, 7월21일 이전에는 배포되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250만 권을 지구촌 각지에 배달하면서 그러한 조건을 지킬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 조건을 정확하게 지켰다. 국제 우편 조직의 위력과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 전자상거래가 발달할수록 우편 산업도 함께 발달하리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해마다 우체통이 2000개 넘게 철거된다. 현재 우체통은 2만7000여 개 있다. 1993년에는 5만7000여 개 있었다. 위는 우체통 변천사.
올해 초, 대통령직 인수위는 우정사업본부를 공사화해서 직원 3만2000여 명을 민간인으로 돌리면 역사상 최대 규모로 공무원 수가 줄어든다는 점을 내세웠다. 수년 진통한 끝에 우정 민영화에 성공한 일본 사례를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우체국장은 시험을 거치지 않고 선발해 세습까지 할 수 있는 지역 유지인 데다 정치인과 결탁하는 일도 잦다. 우체국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을 이르는 ‘우정족’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 요컨대 일본의 우정청 민영화는 기득권층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이와는 상황이 크게 다른 우리나라에서 공무원 수 줄이기라는 목표만으로 민영화에 접근하는 건 위험천만하다. 자본의 논리에서 사고하는 미국도 우정청만은 공공기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우편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혼란을 초래한다. 저자는 성급하게 민영화를 추진해 서비스 안정성을 해치기보다,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승격해 업무효율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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