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가 〈라이온 킹〉을 첫 한국 진출 작품으로 결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래의 관객을 개발한다는 ‘시키적’ 마케팅 전략이었다.
10월8일 개최되는 제2회 한국 뮤지컬 페스티벌의 오프닝 무대는 일본 최대 극단 ‘시키(四界)’의 〈라이온 킹〉이 장식한다. 1년 전을 떠올리면 파격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처음 만들어진 한국 뮤지컬 페스티벌은 ‘뮤지컬계의 화합과 통합의 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지만 속내는 일본 극단 시키의 진출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내자는 것이었다. 시키의 〈라이온 킹〉은 10월28일 지난 1년간 330회에 걸친 무대를 마감한다. 겉으로만 본다면 극단 시키는 1년 만에 경계의 대상에서 포용의 대상으로 극적인 전환을 이뤄냈다. 

시키의 한국 진출은 지난해 비단 공연계뿐 아니라 문화계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복기해보자. 시키가 샤롯데 극장의 개관 공연으로 일본 작품이 아닌 디즈니의 〈라이온 킹〉을 들여오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뮤지컬 협회는 뮤지컬 전문 공연장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극장을 일본 극단에 장기 대관한다는 것, 그리고 관례를 깨고 브로드웨이 작품의 공연권을 국내 제작사가 아닌 제3국 제작사에 넘긴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이 중심이 된 뮤지컬협회는 시키의 한국 진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면서 〈라이온 킹〉 오디션에 지원하는 한국 배우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를 놓아 마니아들과 관계자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사실 롯데 그룹이 자신의 민영 극장인 샤롯데  극장을 시키에 대관하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었다. 또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국내 제작사들이 이미 일본에서 〈갬블러〉나 〈지킬 앤 하이드〉 따위 라이선스 작품으로 공연을 한 전례가 있어 시키의 진출을 반대할 명분이 약하기도 했다. 창작 뮤지컬을 주로 제작해온 단체나 마니아들은 시키의 진출이 오히려 공연계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시키는 한국에 진출하면서 세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 스타 기용이 아닌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발해 건전한 오디션 문화를 뿌리내리겠다. 둘째, 티켓 가격을 낮춰 뮤지컬 대중화에 일조하겠다. 셋째, 한국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한국 뮤지컬 배우 양성 등 저변을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재투자하겠다. 

상황은 시키의 원대한 생각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배우 층이 얇아 스타 캐스팅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티켓 가격 역시 큰 변화가 없었다. 〈라이온 킹〉은 최고 가격을 9만원으로 정해서 같은 규모의 라이선스 제작사를 긴장 하게 했다. 하지만 시장에 끼친 영향은 미미했다. 〈에비타〉 정도가 티켓 가격을 9만원대로 맞추었을 뿐 나머지 공연은 최고가 12만원선을 그대로 유지했다. 시키가 한국에서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는 한국 배우의 양성이 필수이다. 하지만 〈라이온 킹〉이 손익분기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에 그칠 것 같아 수익이 발생하면 한국에 재투자하겠다는 공약은 무의미해졌다. 

국내 뮤지컬 시장에 큰 영향 못 끼쳐

‘거대 일본 자본의 한국 뮤지컬 시장 잠식’ ‘일본 최대 극단의 문화 침략’ 따위 강경한 구호로 반대를 외친 것에 비하면 지난 1년간 시키가 공연계에 끼친 영향은 별 게 없었다. 시키가 설사 큰 수익을 올렸다고 할지라도 뮤지컬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공연 산업은 무한 복제되는 영상산업과는 다르게 하나의 브랜드가 절대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기가 힘들다. 작품 하나가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작은 것이다.

〈라이온 킹〉은 디즈니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 디즈니가 뮤지컬 산업에 뛰어든 후 〈미녀와 야수〉 다음으로 제작했으며, 만화적 상상력을 능가하는 무대 상상력으로 디즈니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1997년 초연한 이 작품은 아직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고 있다. 1998년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연출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시키의 진출을 막을 만한 명분이 부족하고, 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되었는데도 뮤지컬 제작사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구석이 있었다. 실제로 협회는 시키 진출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뮤지컬도 영화와 같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화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문화관광부를 압박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국내 뮤지컬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겠다는 정부 관계자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 관심이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지려면 공연계의 자기 성찰과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앞으로는 시키뿐 아니라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제작자가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국내 시장에서 제작에 뛰어드는 상황도 올 수 있다. 공연의 현장성과 생명력 때문에 영화나 음반에 비해 시장 진출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공연 시장 규모가 커진다면 해외 제작자들이 어려움을 감수하고 뛰어들 것이다.

이번 시키의 한국 진출로 공연 관계자들은 해외 제작사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 규제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국내 제작사나 해외 제작사가 들여오는 라이선스 뮤지컬에 맞서 국내 창작 뮤지컬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현재 뮤지컬 시장은 라이선스 뮤지컬에 의존하는 비중이 70% 이상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제든 해외 제작사들이 직접 들어올 수 있다. 국내 뮤지컬계가 라이선스 뮤지컬의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악한 뮤지컬 창작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시키의 한국 진출은 실패로 끝나고 만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라이온 킹〉은 막을 내렸지만 시키의 한국 진출 의욕이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키는 〈라이온 킹〉을 1년 동안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후 한국에서의 활동에 훨씬 나은 입지를 마련했다.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라이온 킹〉을 시키의 첫 한국 진출 작품으로 결정한 것도 미래 관객을 개발한다는 지극히 ‘시키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근본적인 대응은 ‘한국 창작 뮤지컬의 활성화’뿐이다. 그 방법을 고민할 때이다. 

기자명 박병성(〈더 뮤지컬〉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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