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대통합민주신당의 국민경선은 미국식 모델을 도입한 제도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정치 붐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던 국민경선제가 올해는 왜 초라한 정치 싸움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사실상 파국에 이른 대통합민주신당의 국민경선제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지만 같은 제도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의 국민경선제를 살펴봄으로써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프라이머리’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미국의 국민경선제, 즉 예비선거제는 미국의 독창적 발명품이다.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에서 후보 선출 과정을 개방하고 평당원의 참여를 확대시키라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선거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대통령 후보를 일반 유권자, 혹은 평당원들의 투표로 결정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 1970년대 이후 오픈 프라이머리 정착

역사적으로 미국 정당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 왔다. 첫 번째는 정당의 각 분파 조직들과 그 보스들의 타협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1970년대 개혁 이전의 시기는 대체로 이 방식에 의해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었다. 이런 조직결정형 방식의 이점은 후보가 다양한 당내 이해관계를 절충하고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개자로서의 능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후보는 다양한 분파 세력들의 타협에 따라 선출되었으므로 당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연합은 본선거를 치르는 원동력이 되고, 당선된 뒤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반면 분파적 이해관계와의 타협에 따른 부담도 지게 됨은 물론이다. 후보가 평당원의 의사와 유리된 채 선출되므로 평당원들의 정당 일체감이 강하지 않을때에는 정통성 시비가 생길 여지도 있다.

두 번째 방식이 20세기 초부터 몇몇 주에서 실시하던 직접선출제다. 이 방식은 평당원들이 직접 후보를 선택하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정통성 시비가 일 염려가 없다. 하지만 정당 분파들의 이해 조정 과정이 없이 선출되므로 정당 내부의 지지를 동원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더욱이 정당 외부의 평당원과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반정당적 호소가 효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당내 뿌리가 얕은 사람이 후보로 선출될 수도 있다. 이러한 후보가 치르는 선거 운동은 정당과 유리된 채 후보 중심이나 특정 파벌 중심으로 치러지기가 쉽다. 본선거에서 당선된 뒤에도, 정치적 기반이 취약하여 통치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따라서 기존 정치권 외부의 지지를 동원하거나 대중에 직접 호소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경우이든 기존 정당조직은 타격을 받게 된다.

2004년 미국 공화당 예비 선거. 미국 정당들은 1970년대 이후 예비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다. 예비 경선은 이익집단의 정치가 발달해 있고 유권자들의 정당 일체감이 강한 미국 정치의 특수성 속에서 정착한 제도이다.
1970년대 민주당의 개혁 이후, 미국 정당들은 예비 선거를 통해 대통령 후보를 뽑고 있다. 1968년 당시 예비선거제를 실시하던 주는 17곳이었다. 하지만 1996년에 이르러서는 미국의 42개 주가 예비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발전해온 예비 선거는 미국 정당정치와 정치체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당의 민주화와 개방화를 가져왔다는 점은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다. 최소한 후보 선출에서 정강 채택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평당원에게 완전 개방되고 평당원들의 참여가 보장된 것이다. 미국의 정치 과정에서 양당의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은 본선거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에는 후보자의 선출이 실질적으로 유권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어서 유권자들이 각 당의 후보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유권자 처지에서는 사실상 두 번 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니는 셈이다.

미국 예비 선거를 작동시키는 첫 번째 요소로 강한 정당 일체감을 지니는 유권자들의 존재를 들 수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1854년 노예제를 지지하는 남부 중심의 민주당과 이를 반대하는 북부 중심의 공화당으로 기존 정당 구조가 재편되면서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같은 정당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50년이 넘는 민주·공화 양당제는 지지 기반의 변화에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정당 지지는 보통 대를 이어서 유지된다.

두 번째는 연방제라는 특성을 들 수 있다. 미국은 애초에 13개 식민지의 연합으로 출발한 국가이며 여전히 미국 헌법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동등한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미국인들의 주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히 강하다. 이런 의미에서 예비 선거는 자기가 살고 있는 주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후보들은 주의 요구를 고르게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즉 대통령 선거에서 지방의 이해가 일차적으로 반영되는 단계가 바로 예비 선거이기 때문에 핵심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주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인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세 번째, 이익집단의 활발한 활동도 예비 선거를 활기차게 만드는 요인이다. 예비선거제는 공천권을 상실한 정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킨다. 상대적으로 이익집단들의 영향력은 크게 강화된다.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이익집단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들의 선거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물론 자신들의 힘으로 예비 선거와 본 선거를 치르게 된 후보들은 자금과 조직을 특정 이익집단에 의지하게 된다. 결국 선거 당시와 선거 후 이 집단들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폐해가 빈번히 지적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여야가 비슷하게 흉내 내고 있는 예비 선거는, 정당의 내부 결속력이 취약하고 이익집단의 정치가 발달해 있고 또한 유권자들의 정당 일체감이 강한 미국 정치의 특수성 속에서 정착한 제도이다. 미국의 예비 경선을 본뜬 우리의 국민경선제는 어떻게 보면 너무도 예외적인, 매우 미국적인 제도인 셈이다. 정당의 역사성도 짧고, 국민들의 정당 일체감도 거의 없을뿐더러, 후보들의 대립으로 경선 룰을 만드는 것조차 힘든 한국 정치의 특수성은 미국식 국민경선제의 한국적 실험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제 국민경선제를 재평가하고 가능성과 한계의 대차대조표를 고민할 때이다.

기자명 정하용(경희대 국제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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