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강의는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가 맡았다. 송 대표는 2008년 교직을 그만두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들었다. 입시 사교육을 부추기는 잘못된 구조와 관행을 고발하는 한편 최근에는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다. ‘행복한 진로학교’는 자녀의 진로 걱정에서 사교육 문제가 출발한다는 진단 아래 이 단체가 3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인기 교육 강좌다. 지난 강좌는 단체 홈페이지(www.noworry.kr)에서 동영상으로 열람할 수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3~4년간 진로와 관련한 교육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이 가운데 거품 정보를 추리고, 지나친 장밋빛 전망도 추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면서 아이들 미래에 필요한 정보를 고른 것이다.

먼저 짚어보자. 부모들은 왜 사교육을 시킬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이 짓밟히고, 사회가 이렇게 짓밟힌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입시 경쟁에서 1점이라도 더 앞서야 하고, 영유아 단계에서부터 아이를 사교육으로 내몰게 되는 거다. 다시 말해 사교육은 자녀의 진로 걱정 때문에 생기는 거라 할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고교 영어교사였던 송인수 대표(위)는 좋은교사운동을 거쳐 200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에 진로에 관한 정보는 넘쳐난다. 〈평생 성적, 초등학교 4학년에 결정된다〉 〈성공한 아이의 99%,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만든다〉는 식이다. 이런 말이 맞다면 여러분은 더 고민하실 필요도 없다. 이미 늦었으니까(웃음). 그런데 이게 맞는 정보일까. 아니다.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기는 쓰레기 정보일 뿐이다.

진로 교육과 관련한 다섯 가지 오해가 있다. 첫 번째가 내 자녀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키면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오해다. 이걸 따지려면 먼저 좋은 일자리의 개념부터 정리해보자. 삼성경제연구소는 좋은 일자리를 ‘명목임금 기준으로 전체 평균임금 수준을 상회하는 산업 부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라 정의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정규직이면서, 임금이 평균치보다 20% 정도 높은 일자리’라고 좀 더 쉽게 설명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30대 대기업 집단, 공기업, 금융업 종사자’라 아예 못 박고 있다. 이들 기업의 신입사원 급여를 보자. 신한은행이 연봉 5100만원, 현대중공업이 4800만원이다. 삼성전자는 3200만원으로 랭킹 30위다. 남들 정년퇴직 때 받는 연봉을 신입사원이 받는 셈이다. 이러니 사람들이 이런 일자리에 목을 맨다.

그런데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이 창출하는 고용인력이 얼마쯤 될까. 한 해 2만명가량이다. 매년 고졸자가 60만명가량 나오니까 30명 중 1명꼴로 이런 일자리를 갖게 된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한 반에 1등만 위너이고 나머지는 루저인 셈이다. 얼마나 폭력적인 기준인가. 아이들은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삶의 목적이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고귀하다. 그런데 이른바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루저 취급을 당하는 거다. 더 심각한 것은 부모들이 이런 기준을 내면화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하며 아이를 입시 경쟁으로 내몬다.

두 번째 오해는 ‘현재 유망한 일자리가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보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1960년대 인기 직업은 타이피스트였다. 1970년대는 전당포 업자, 1980년대는 운동선수, 1990년대는 외환 딜러와 인터넷 전문가 등이었다. 그러니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부모는 20~30년 뒤를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한가? 당장 1년 앞도 못 보는 판인데. 이와 관련해 부모들이 흔히 범하는 세 번째 오해가 바로 ‘미래 사회에 필요한 능력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의 생성·소멸 주기는 갈수록 빨라진다. 변화무쌍한 미래 사회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2010년 OECD 보고서는 밝혔다. △지식 활용 능력 △이질적인 혼성 집단에서 소통하는 능력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아파트 평수와 부모 경제력, 학벌 등으로 편 가르기를 하고 영어유치원, 국제중, 특목고 같은 동질 집단으로 아이들을 묶어세우는 한 이런 능력은 키우지 못한다.

네 번째 오해는, 이른바 유망 직업을 선택하면 아이가 행복할 거라는 오해다. 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직업별 스트레스 순위를 보자. 가장 스트레스 많은 직업이 투자분석가, 방송 프로듀서, 외환 딜러, 프로게이머 순이다. 의사도 힘든 직업이다. 모델에 이어 직업 만족도가 두 번째로 낮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본래 KBS 프로듀서 출신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반크를 만든 것이다. 그분 말이 “지금 하는 일도 굉장히 안정적이에요”라더라. 안정성은 이처럼 결과로 찾아오는 것이어야 한다. 이걸 조건으로 내걸게 되면 재앙이 된다.

다섯 번째 오해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일 것’이라는 오해다. 최근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시험 양상이 바뀌고 있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올해 서울대 출신 500명이 원서를 냈는데 그중 400명을 떨어뜨렸다”라고 얘기한 일이 있다. 요즘 기업이 중시하는 것은 학벌보다 전공이라는 것이다. 공기업 또한 지방대 출신의 채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인(in)서울만 고집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미래 사회에는 전혀 다른 일자리가 펼쳐질 것이고, 그에 필요한 실제 능력을 아이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나아가 진로를 선택할 때는 △재능과 적성에 맞아야 하고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야 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이라고 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사람은 노동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 시간이 기쁜 시간이 되려면 스스로 하는 일을 위대한 노동이라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재능과 적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시했다가는 불행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건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농구의 신이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은 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직후 은퇴를 결심했다. 죽음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좀 더 가치 있는 일, 스스로 좋아하던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던에게는 그것이 야구였다. 그래서 마이너리그 야구선수가 되는 파격적 선택을 했다. 그 결과는 아시는 대로다. 마이너리그에서 헤매던 조던은 결국 농구로 복귀했다. 이걸 보고 “사람은 역시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라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그 생각에 반대한다. 조던은 비록 잘할 수는 없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봤기에 바닥을 치고 다시 잘하는 일로 기쁘게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사IN 이명익송인수 대표는 학부모가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위는 선행교육금지법 촉구 캠페인.

나도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이 녀석이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이 좋다는데 난 좀 미심쩍었다. 나도 문과이고 아내도 문과인데 아이 적성이 정말 이과일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 입학해 성적표를 받아왔는데 수학 성적이 꽝이었다. 나머지 과목 성적도 바닥을 기었다. 갈수록 아이 패션은 날라리표가 되어가고, 언제부턴가는 성적표도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 그런데 중3이 된 어느 날, 아이가 컴퓨터를 조립해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집에 있던 컴퓨터가 망가진 참이었다. 반신반의하면서 조립품을 주문했다. 그날 밤, 잠이 깨어 마루로 나와보니 아이가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아빠, 조립이 끝났는데 부품이 남아” 하면서. ‘그러면 그렇지’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컴퓨터에 문외한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아이가 득의만면한 표정이었다. 밤을 새워 조립을 모두 마치고 성취감에 차 있었던 것이다. 아마 아이 생애 최초의 경험이었을 거다.

그날 이후 아들은 바뀌었다. 인터넷 고등학교에 가겠다며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세우더니 자기 방에 기말고사 목표 점수를 놓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인터넷고 진학에는 실패했다. 대신 과학 중점고에 입학했다. 진짜 반전은 그 다음이다. 고등학교를 1년 다니더니 이 녀석이 이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내가 문과였나 봐요” 하는데 정말이지 ‘야 인마, 그러게 내가 뭐랬어’ 소리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웃음).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밀어준 걸 후회하지 않는다. 미덥지 않다는 이유로 윽박지르거나 폄하하면 아이는 모든 의욕을 내려놓기 쉽다. 그러나 과정 하나하나를 본인이 직접 결정하면 아이 마음에 상처가 없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철이 든다.

그런데 우리 부모들은 아이가 스스로 철들 때까지 기다려주지를 않는다. 보통 부모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이에게 진로 체험 활동을 다양하게 시킨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 성적표를 받아드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내신부터 관리하자’ 모드로 돌아선다. 객관적 옵션을 넓히는 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더 필요한 일은 주관적 선택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가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자동차 쪽 관련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치자. 그때부터 아이는 자동차를 만들려면 외국 자료를 보기 위해 영어도 해야 하고, 엔진을 알려면 과학 공부도 해야겠다는 식으로 객관적 옵션을 스스로 채워나간다. 그런데 부모들이 이걸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이다. 성적을 관리 못하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크다. 부모가 특목고·자사고에 연연할수록 아이가 자신의 삶에 몰입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기 바란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 부모의 허물로 인해 아이가 인생을 살면서 실패하고 고통을 겪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아이 인생이 좌절하고 굴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둘, 모든 존재가 그렇듯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런 에너지가 있기에 아이들은 부모의 그늘마저 품어가며 자신의 길을 설계해 나간다. 곧 내가 부족해도 아이는 잘 살아간다. 그러니 나 자신도 관용하고 아이도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직선은 없다. 강은 구불구불 흐르며 바다로 간다. 장애물을 만나면 옆으로 흐른다. 이처럼 곡선으로 흐르기에 강물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실패하며 철들도록 기다려라

부모들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 정글 같은 세상에서 미친 경쟁을 강요하고 불안을 부추기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보행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화살표로 알려주는 교통 신호등이 있다. 이 신호등을 만든 사람이 누굴까. 푸른 신호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길을 건너다 즉사한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내 아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생업도 팽개친 채 이런 신호등을 개발한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결국 누가 나서서 바꾸느냐의 문제다.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한 해 100명, 200명씩 되는 아이들이 죽어나가는데도 이것이 바뀌지 않는 것은 부모들이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을’의 위치에 놓았기 때문이다. 이걸 바꾸려면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스스로를 ‘을’이 아닌 ‘갑’의 위치에 놓고 세상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잘못된 대학 서열체제를 바꾸고, 채용 시 공정한 기회를 달라고. 이런 잘못을 바로잡는 4대 입법도 관철시켜야 한다. 학력·학벌차별금지법, 특정대학 공직점유 상한제, 지방인재 채용할당제, 고졸채용 확대지원제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메뚜기라 생각하는 코끼리다. 우리가 코끼리임을 자각하는 순간 세상은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정리·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기자명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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