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학부모·선생님을 대상으로 책 놀이 강의를 하면서 빼놓지 않는 질문이 “요약이 뭐라고 생각하세요?”이다. 아이·어른 모두 이 물음에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할 뿐 아니라 요약의 개념과 중요성에 대해 무감각하기 일쑤다. 요약이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예 역할극을 만들어서 공유한다.

강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요약 역할극’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강의 후반부에 역할극에 대해 청중에게 설명하며 동참을 제안한다. 청중은 마음속에 연락을 자주 하는 친한 지인이나 친구 한 명을 떠올린다. 오늘 강연에 오려고 했지만 오지 못한 친구라면 더 좋다. 예컨대 ‘시연이 엄마’는 ‘미경이 엄마’를 떠올렸는데, 필자가 미경이 엄마가 되어 전화를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시연이 엄마, 어제 미용실 가서 파마하느라 책 놀이 강연 못 들었어. 근데 강연에서 어떤 얘기 나왔어?”라고 물어본다. 시연이 엄마는 마치 미경이 엄마와 통화하는 것처럼 즉석에서 강연의 내용을 들려주는 설정이다. 청중은 대개 자신이 인상적으로 들은 키워드 하나만 이야기하기 십상이다. 자신에게 각인된 한두 가지 정보만 얻고 간다는 얘기다.
 

이때까지도 참석자들은 요약이 무엇인지에 대해 감을 잘 잡지 못한다. 필자는 이때 상황을 바꿔버린다. 참석자가 부모라면 자녀가 회사 다니는 상황을, 참석자가 학생이라면 대학 졸업하고 회사 다니는 상황을 제시한다. ‘김 대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취직했다. 어느 날 김 대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사 대표가 타고 있었다. 전날에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책 놀이 세미나’가 있었는데 대표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표가 김 대리에게 묻는다. “김 대리, 어제 책 놀이 세미나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왔나?” 엘리베이터는 올라가고 벨이 울리기까지의 시간은 길어야 3초! 이 시간 안에 강연의 내용을 대표에게 브리핑해야 하는 것이 김 대리의 현실이다. 이와 같이 현실은 ‘요약 능력’의 절실함을 알려준다. 현실에서 요구되는 요약이란 ‘받아들인 정보를 종합하고 장악한 후 나의 언어로 짧게 표현하는 일련의 두뇌 활동’이다.

‘엘리베이터의 김 대리’ 이야기까지 나오면 청중은 드디어 요약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눈빛을 보낸다. ‘요약은 현실’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보는 시험 중의 하나인 논술(論述)은 논증하고 서술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실제 시험 현장에서 보는 논술은 ‘제시문에 대한 요약’이 핵심이다. 제시문이 한정하는 범위와 논제가 지시하는 방향에 맞게 답을 쓰지 못한다면 논술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없다. 수능 시험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문을 읽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문의 요지를 잡아내는 요약 능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일을 할 때 ‘일머리’를 파악하려고 애를 쓴다. 일머리는 어떻게 생기나? 반복을 통해 숙달된다. 학습이나 독서도 마찬가지다. 반복적으로 읽는 습관을 통해 어떤 책이든 개요를 잡아내는 힘이 생긴다. A라는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단지 A의 개요만 잡히는 게 아니라 추후에 읽게 되는 B, C, D의 책에도 적용된다. ‘책 놀이’는 반복 읽기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는 데 거의 모든 지면을 할애했다.

기자명 오승주 (〈책 놀이 책〉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